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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에 마침표 찍는 것
잊지 말라고 전해줘

서울일기: 20190926

by 소은성

맑은 얼굴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불금에 맵고 뜨거운 곱창을 먹는 게 지난 1주간의 유일한 삶의 목표였으나, 당연하게도 실패다....언제나 그랬듯, 책 쓰기는 계량과 계획으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아, 왜 자꾸 목차가 늘어납니까!


주 초에 완벽하게 마치려던 플랜이 깨졌다!



책은 강의와는 달라서,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서 만만치는 않다. 특히 '얇아서 술술 넘어가서 선물하기도 좋다'는 다른 책 리뷰를 읽으면, 아아 나 뭐하고 있지? 요새 누가 책 읽어? 점점 두꺼워지는데, 이미 남이 다 한 이야기면 어떡해? 하는 망상이 모기처럼 찾아든다 왜애애애앵애앵앵 오른쪽 귀 옆에서 왼쪽 귀 옆에서.


쉽게 쓰는 방법이 뭔지는 알고 있는데....그러면 책 나온 후에 쓰라리게 후회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하지는 않고 있다.


이름을 알릴 책을 낸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야 그렇게 하겠지만, 부끄러울 것 같다 스스로에게.


쓰다가 외로울 적에, 나 그리고 수강생들이 틈틈이 들춰보며 참고하고 응원받을 것을 만들어내고 싶어서. 편집장님은 '책상 앞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책'이면 된다고 했지만, 달려가서, 달려간 힘으로 쓰다가 멈칫거리게 될 때, 그리고 나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질 때 '아, 책이 있었지' 하며 유용한 글쓰기 팁을 찾게 만들고 싶어서다.


오늘 내일 모레 글피까지는 다 쓸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냥 목차 확 줄여버려?

그래, 살면서 '여기까지 해야 돼?' 하고 한 것 중에 후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반년만에 쓰려던 책이 일년 반이 넘었는데 (중간에 완전히 쉰 기간이 많아서) 지각 마감의 긍정적인 면을 떠올려 보면, 강의를 이어오면서 강의안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연구가 많이 됐다. 영미권 글쓰기 워크숍 (대학, 기관)에서 쓰는 책들을 여러 권 찾아 읽었고, 작가들의 창작노트들을 들춰 보며 이론이 쌓였다. 완전히 새로운 이론은 아니지만, 직관으로 해왔던 일들의 정확한 근거와 자료를 쌓아가는 일은 굉장히 짜릿하고 뿌듯한 과정이었다. 책으로 이뤄진 나만의 대학원을 다닌 기분이랄까.


세계의 글쓰기 강사들을 종이로 만나 대화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세요? 싸우쓰 코리아 서울 마포구에서 아시안 여성이 당신들의 책을 탑처럼 쌓고 즐거워 한답니다.


잠재력을 발견하며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수강생들을 보면서, 아마도 맨 처음엔 작은 불꽃 같았을 어렴풋한 느낌이 확신이 되어가기도 했다.


안이 무심코 그랬다. "모든 사람이 작가예요." 내면에서 혼자 계속 외쳤던 말이 친구의 입에서 단단한 것이 되어 나올 때. 모든 사람이 작가다, 라는 말을 글쓰기 봇이 하면 뻔한 말이지만, 매일 그 사실을 체감하는 사람이 하면 당연히 다른 말이 된다.




로항이 B에게 "은성에게 문장에 마침표 찍는 것 잊지 말라고 전해줘"라고 했다던데.

빨리 끝내란 뜻이야, 하고 물었더니

아니 그냥 싱거운 농담이지, 자기전에 양치질 잊지 마, 물 많이 마시는 것 잊지마, 일하다 산책 잊지마 같은 거야, 랬다.


그 말을 떠올리면 마음이 어쩐지 편안해.





일요일까지, 덤덤덤덤 걸어가자. 다음주에 홍옥 사과 씹어먹으며 미드 달릴 것이야 쿠쿠쿠쿠쿠쿠쿠쿠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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