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 좀 적으라고 하지 마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모닝페이지를 쓰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어. 펜을 든 손을 절대 멈추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하기 어려운 마음을 토해내 버린다. 매일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는 점에는 무시무시한 점이 있다. 기어이 은폐하고 싶던 자신을 바라볼 수 밖에 없게 한다는 점이야. 내가 만든 습관에 의해 발견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성취감과 기쁨을 가지고 그 무시무시한 괴물을 기꺼이 응시한다. 네 안에 대체 뭐가 들었니?
나는 모순의 화산이야. 고양이를 한국의 애묘인들이 사랑하는 만큼은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개의 열렬한 팬이야. 그 무구한 어리석음이 나를 위안한다.
그럼에도 내 고양이의 몸에 해외 이동용 칩을 심는다. 비행용 케이지를 주문해 그를 기어이 유럽으로 데려간다.
부모에 대한 넘치는 사랑과 넘치는 환멸을 동시에 지녔다. 거대한 수트케이스같은 부담을 평생 끌고 다닌다. 바퀴가 한쪽 달아나고 사방을 기운 그것을. 눈을 뜨자마자 이번 주말 엄마집에서 밥을 먹기 싫다고 생각하며, 엄마를 위해 1인용 글쓰기 수업을 준비한다.
누구보다 말을 조리있게 하고 싶지만 동시에 약간 어눌한 듯 타인의 말을 경청하기만 할 뿐 자기 의견을 내기 수줍어하는 사람의 옆모습을 오래 바라본다. 안전하게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네가 되고 싶다.
한국이 싫어서, 기어코 달아나려는 몸을 견인해 외국인을 만나게 하고 외국어 시험장에 데려다 놓고 대사관에 데려다 놓고 한국의 일과 관계와 물건을 정리하게 만들어놓으면서, 동시에 매연을 마셔서 걸걸한 목소리를 지닌 한국인 할머니로 장수하는 상상을 한다. 함께 소맥을 마시며 투덜댈 사람들이 있다면야 괜찮잖아? "그냥 여기에서 평생 살면 어때?"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릴 때마다, 눈을 감고 묻는다. 별 일 없이 살던대로 살 것 같다.
모순을 마주할 때마다 솔로몬의 지혜를 빌어 몸을 두 동강내고 싶다. 하나는 여기에 하나는 저기에 살으렴. 하교길 꽃밭에 쪼그려 앉아 나비를 바라보던 여덞살 때부터 매일 등에 메고 살아온 상념이다. 햐, 적어도 이것은 온전히 내 것이네? 누구를 따라한 것도 사회가 주입한 것도 아닌, 내가 씨앗부터 발아해 키운 순도 높은 나의 욕망이네. 웃으려면 둘은 있어야 해서, 나는 둘을 만들어 키웠다.
집에서 만난 사람이 밖에서의 나를 보고 놀라는 것처럼, 밖에서 만난 사람이 나의 일기를 보고 놀라는 것처럼, 나도 나의 내면과 외면의 일치를 위해 오래 노력해 왔다. 무시무시해서 가끔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도망가지 않으면.
알람이 울린다. 오늘은 여기까지.
심연을 오래 바라보는 데는 에너지가 드니까 내일 바라보도록 하자.
알게 되면 더이상은 슬프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