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이 부모님 집에서 잡곡밥을 받아 왔다. 찹쌀, 수수쌀, 흑미, 귀리, 강낭콩 등이 들어있었다. 저녁으로 그 밥을 먹는데, 뭔가 떫고 씁쓸한 것이 씹혔다. 오물오물 씹어 봐도 혼자 입안에서 맴돌아 퉤 하고 뱉어내니, 껍질이었다.
밥을 뒤적이니 콩보다 큰 것이 껍질째 있다. ‘아니 이게 뭐야?’
쪼개보니 밤이다. 충격.
노란 색의 달달한 밤만 먹어봤지 이렇게 속껍질이 붙은 밤이라니?
“애기야, 이거 봐 봐. 밤이 덜까졌어!” 놀라 소리쳤다.
“응, 그거 율피야. 왜?”
웬 호들갑인가 하고 나를 쳐다본다.
“왜라니? 어머니가 밤을 까다 마셨잖아?”
밤을 집어 들며 보여줬다.
“율피에 영양소 많다고 밥에 넣을 땐 그렇게 넣어.” 순간 대봉이 머릿속을 스쳤다.
예전에 짝꿍 집에 초대받아 식사 후 대봉을 먹은 적이 있다. 잘 익은 대봉을 하나씩 들고 나는 껍질이 딸려 올라 살살 긁어가며 먹었는데, 다들 아무렇지 않게 껍질도 함께 드셨다. ‘나는 손님이다’를 되뇌며 먹진 않았다. 집에 가는 길에 물어보니 껍질에 영양이 더 많으니 먹을 수 있는 건 먹는단다.
“껍질 맛있어?”
“아니, 맛없지.”
“근데 왜 먹어?”
“엄마가 먹으라고 하니까?”
홍시 껍질도 드시나? 궁금했지만 예의에 어긋나는 질문이라 물어보진 않았다. 짝꿍 집 식문화를 존중해줘야지. 하지만 우리 집 문화는 아니니까 “난 대봉 껍질 안 먹을 거야.”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집은 사과도 깎아서 먹는데, 대봉 껍질을 먹다니. 처음 봤다. 그날 이후로 과일 먹는 걸 지켜봤다. 배도 깎아 먹었고, 귤도 까서 먹고, 사과는 껍질째 먹지만 그렇게 먹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특별히 이상한 건 없었다. 대봉만 다르게 먹나보다 했다.
그런데 세상에나. 율피라니? 나는 율피째 먹는 밤은 평생 처음이었다. 밥에 넣어도 다 까서 넣는다. 밥이랑 밤은 같이 씹으면 달달하니 좋은데! 오 어머니! 왜 굳이 씁쓸한 맛이 나는 껍질까지 드시나요. 밤을 건져서 짝꿍 그릇으로 옮겼다.
“그렇게 이상해?”
“응, 잘 안 넘어가. 미안해.”
어휴 다행이다. 우리 집이라서.
“난 괜찮은데.”
우리 둘 뿐이니 너도 맛없으면 먹지 말라고 하려다 어머님이 생각나서 말았다.
나는 알맹이만 먹고 싶다. 이왕 먹는 거 맛있는 부분만 먹고 싶다. 그 작은 밤에 붙은 속껍질이, 영양이 많으면 얼마나 많다고. 이렇게 가려 먹어도 우리 두 사람의 몸은 이미 영양 초과이니, 그 부분만 먹어도 충분 할 텐데. 대봉도 그렇다. 단 둘이 대봉을 먹을 때도, 짝꿍은 껍질이 먹기 싫으니 아예 먹지를 않는다. 껍질 안 먹어도 된다고, 속만 먹으라고 해도 그러질 않았다. 내가 한 두 숟가락 떠서 줘야 ‘맛있네.’ 하며 받아먹을 뿐이다. 어머님이 보지 않아도 평생 그렇게 먹어온 규칙을 어긴다는 것이 짝꿍에겐 힘들었나보다.
지금도 이렇게 텁텁한 속껍질이 붙은 밤을 먹는 거보니. “그래도 푹 쪄져서 부드러워.”
아무리 부드러워 봤자 나에겐 껍질일 뿐이다. 나였다면 엄마가 보지 않을 땐 먹지 않을 것이다. 절대. 어머님의 착한 자식으로 살아온 짝꿍은 혼자 있어도 자유롭지 않았다. 언제쯤이면 어머니라는 껍질을 완전히 벗고 나올 수 있을까. 그래도 유일하게 어머님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나’라는 것이 고맙다. 나도 노력할게. 너와 어머님을 강제로 분리하지 않도록. 너의 모든 점을 사랑하려고 노력할게.
밥을 다 먹으면 짝꿍과 진지하게 껍질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야겠다. 짝꿍 집에 갔을 때 놀라지 않게 대비를 해야겠어. 나의 놀람에 기분이 상하시지 않도록.
껍질째 먹는 게 또 뭐가 있나.
율피보다 더 충격적인 게 남아 있을까.
글쓴이_미나리
사랑하는 짝꿍과 느긋하게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