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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n 29. 2020

희망적인 이야기로 불행의 도미노 게임을 끝내기 위하여

하루 중 한 번은 ‘글쓰기 질문’ 이라는 책에 실린 질문 한 줄로 내키는대로 글을 쓰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여성 글쓰기 작업실 동료들과의 공동 프로젝트로, 내면의 검열관을 극복하기 위한 트레이닝으로 시작했다.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는 글쓰기 습관을 고쳐가는 데에 효과적이다. 어제는  “당신의 책상은 밤에 무슨 생각을 할까?”란 주제로 짧은 글을 썼다. 


‘나는 내 앞에 앉았던 여자 작가들의 마음을 들여다 봐. 그들이 종이로 만든 책과 나무로 만든 책상이 소중하지 않은 척 하는 게 아주 화가 나. 허영과 허세. 그들이 그런 것을 가져 본 적도 없이, 마치 그런 게 존재했는데 남몰래 부끄러워하다 버린 것처럼 구는 게 가엾고 슬펐어. 오랜 세월 동안. 사라지는 그 존재들이. 존재가 비가시화되는 것이. 


천정까지 빼곡한 서가, 고급 마호가니 책상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그들이 말할 때, 나는 어디에서건 쓸 수 있고 책이 없어도 살 수 있다고 말할 때. 저는 유모차를 한손으로 밀며 카페에서 소설을 쓸 수 있었어요 그래야 했어요, 나는 키친 테이블에서 가족들이 잠든 밤마다 소설을 썼어요, 라고 말할 때 화가 나. 왜 여자들에겐 그 흔한 허세도 허영도 사치로 여겨지는 걸까. 연필을 깎으며 글을 쓰는 각오를 다진다는 늙은 남자 작가처럼 말하는 여자 작가를 본 적 있어? 아이를 업고도 읽었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면서 글감을 떠올렸다고 말하는 여자작가들이 나는 늘 안타까웠어. 


그들에게 내가, 가장 묵직하고 화려해서,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는, 아이가 하나 늘어난다고 해서 그 아이의 책상으로 쓰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어. 내 등에서 아이가 숙제를 한다면 나는 그 공책을 다 뜯어놓을 거야. 연필심을 부러뜨려 보이겠어. 

입술과 혀가 있다면 여자들에게 고함치고 싶었어. 보아라, 너의 직업은 여기에 있다. 한 편을 써도 너는 작가라고 말해 주고 싶었어. 저 같은 게 무슨 작가인가요, 라고 말하는 그들의 뺨을 쳐서 정신을 차리게 해주고 싶었어. 저기, 남자들의 허세와 허영을 보라고! 너에게 필요한 건 겸손이 아니라 허영이다.’ 




나는 이 네 가지가 곁에 없을 때 초조해 한다. 책을 수북히 쌓고도 종이를 또 여러 장 올려둘 수 있도록 긴 책상이 필요하다. 오래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프지 않은 의자가 있어야 한다. 좋은 글을 크게 보고 더 좋은 글은 종이로 인쇄해 줄을 치며 볼 수 있는 모니터와 프린터가 있어야 한다. 이것들을 나는 ‘자기만의 방’이라 부른다. 


지적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달려 있다고, 여성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여행하고 빈둥거리고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라고, 그리하여 리얼리티에 직면해 활기 넘치는 삶을 살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떠올린다.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자기만의 방’이라면,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여행과 이동의 자유일 수도 있겠다. 태어난 나라를 떠나 평생 유랑하며 살겠다고 마음먹자, 아이러니하게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간절함이 생긴 것이다. 


한국에 거주할 때는 매일 출근하는 씀씀작업실과 신여성작업실에 그것들이 완비돼 있었으므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여름 코로나 시국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로 이주하게 되면서 이 글에 일렁이는 불안이 배어나온 모양이다. 이동금지령이 시행되고 모든 배송시스템은 정지됐다. 얻어둔 집에는 허리까지 오는 책장 밖에 없었다. “수트 케이스에 앉아서 책장 위에 컴퓨터를 올리면 되지.” 쾌활하게 소리쳤다. 나는 겁이 나면 더 쾌활하게 웃는다. 항공권이 두 번 취소된 터였다. 가족과 친구들이 틈날 때마다 모아준 마스크가 서른 장이 넘었다. 


시내를 종일 돌아다녀도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만날 수 없고 내가 말을 멈추면 나의 언어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 작은 도시로 향하는 마음. 언니, 선배, 작가, 선생님 같은 이름들을 모두 한국에 두고 나의 직업과 성취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떠나는 마음. 그 마음들은 책상에 대한 집요함으로 드러났다. 파트너의 가족들이 마스크를 쓰고 여름 휴가용 탁자를 가져다 주었다. 바둑판만큼 작은 나무 탁자에 팔을 괴 고 주문을 외웠다. 작은 내 몸에 잘 맞아, 작은 글을 쓰면 된다. 식사를 마치고 빵가루가 부서져 내린 탁자를 볼 때면 두려워졌다.


목재상에게 소나무 패널을 샀다. 우연히도 내 키와 정확히 같은 길이였다. 서늘한 책상에 길게 누워 낮잠을 자도 좋겠네. 손수 만든 책상이라니! 환상적인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는 은은하게 소나무 향이 풍겼다. 하루 종일 일을 했다. 사포로 문질러 거친 면을 매끄럽게 하고, 카페라떼 색의 우드스테인을 바르고, 세 시간 동안 바람에 말리고, 습기와 오염으로부터 지켜주는 바니시를 바른 뒤, 밤 동안 바람에 말렸다. 보채는 아이를 다정하게 달래듯 강박은 사라졌다. 그날 밤엔 프랑스에 온지 3주 만에 한 장이 넘는 글을 쓸 수 있었다. 


안정이 되자 궁금해졌다. 종이에 펜으로 쓰는 시절도 아니고 책상이 없다고 글을 못 쓰는 건 아닌데. 대체 나는 왜 존재가 소멸하고 있다고 느낀 걸까.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강박이었다.  




심리상담을 받았던 기억을 되살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어지러운 속내를 정확한 문장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읽고 쓰고 생각하지 않는 존재,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될까 봐 두려워요.”  


내가 나의 상담사라면 뭐라고 대답할까.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글로 쓰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예요.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 




예전의 나는 나의 이전 세대 여자들과 나를 구별지으려 했다. 70년대에는 그런 여자들이 있었다. 여배우가 되거나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해 보라는 소리를 인사처럼 듣고, 동네 사진관에 증명사진이 걸리고, ‘그 예쁜 애’라고 지칭되는 여자들. 하지만 정말로 배우가 될 야망을 품지는 않고, 운 나쁘게 마을의 스캔들이 되면 더욱 더 존재감을 없애버리는 여자들. 그런 여자들은 납치혼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납치나 스토킹은 구애로 포장됐고 결혼으로 성사되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나의 외가 쪽 여자들은 눈에 띄는 외모를 지녔는데 영악하지 못하고 유순한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 여자’ 들이 되었다. 나의 이모는 아름다움과 유머, 대담함을 모두 지닌 사람이었지만, 발에 있는 조그만 살점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했다. “나는 저 사람의 수준에 맞지 않아. 주제를 알자.” 밤낮으로 그녀를 쫒아다닌 남자에게 납치돼 하룻밤 집에 못 돌아왔고 그와 결혼했다. 측은하다는 이유였다. 


원하는 대로 인생을 개척하지 못한 울분은 깊은 우울이 되었다. 자식에게 사랑의 보답을 갈구하는 어머니가 되었다. 그들은 딸들에게 두가지의 상반되는 이야기를 했다.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라, 공부를 해서 원하는 것을 모두 이뤄라. 하지만 습관처럼 이런 이야기도 자주 했다. 여자가 너무 자기 주장이 강하면, 똑똑한 티를 내면, 원하는 대로 살려고 들면 남편과 시가에서 싫어한다. 




나의 인생 이야기는 오랫동안 여러 여자들에게서 전해 내려온 이야기의 변주일까. 결국 그렇게 될까.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다른 존재에게 스스로의 주권을 성실히 내어준 다음, 자신의 자궁으로부터 나온 존재에게 그제야 자신을 되찾으려 안간힘 쓰는 어머니가 되어버리는 이야기’가 될까. 어린 시절 내내 내 등에서 떼려고 안간힘을 쓴 질문이었다. 여자들의 불행한 이야기가 자아내는 끈끈함을 손가락으로 꼼꼼히 떼어냈다. 컵바닥에 붙은 스티커 자국을 철수세미로 문질러 떼듯이 열심히 마음에서 떼어냈다. “진짜 사랑을 해야 한다. 측은함을 사랑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측은한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게 되면 나도 상대도 사라지는 게 낫다.” 나는 그들과는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다들 나를 무시하는데 너마저 나를 우습게 보느냐고 악을 쓰는 여자들을 볼 때면, 학습된 무기력으로 불행이 자신을 집어삼키도록 두고보는 여자들을 볼 때면 공포와 탈주 욕구를 동시에 느꼈다. 지식이 없으면 가부장제의 올가미에 걸릴 수도 있어. 알면 살아남을 수 있어. 성취를 이루면 도망갈 수 있을 거야. 모든 것을 다 알게 되면 이길 수 있을 거야. 그게 맞았을까. 정말 그럴까. 그런데 그것 뿐일까.


책상에 대한 강박도 그런 이야기가 나를 덮어 씌워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혼란스러울 때면 솔닛을 읽는다. 리베카 솔닛은 <멀고도 가까운>은 딸이 어떻게 어머니를 사랑하고 증오하고 넘어서고 이해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평생 딸의 재능과 아름다움을 못마땅해하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솔닛은 여러 이야기들을 통과하며 어머니와,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자신과 화해한다. 


“우리는 우리가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사랑하라고, 미워하라고, 두 눈으로 보라고 혹은 눈을 감으라고, 종종, 아니 매우 자주, 이야기가 우리를 올라탄다. 그렇게 올라타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채찍질을 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면,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그걸 따른다. 자유로운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이야기에 질문을 던지고, 잠시 멈추고, 침묵에 귀 기울이고, 이야기에 이름을 지어주고, 그런 다음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나는 좀 달라지고 싶었다. 더 이상은 두려움을 에너지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책상 따위 없어도 겁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물론 생명 같은 일이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고 젖을 먹이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말리고 개는 활동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보다 못한 것이라고 비밀리에 생각하는 것을 그만 두고 싶었다. 엄마와 이모를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들처럼 될까봐 진저리를 치는 건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싶었다. 그 속에 은근한 멸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형태의 삶을 사는 존재들은 존중하지 못한다면 만권의 독서와 만편의 글이 무슨 소용일까. 


몇 달 전부터 엄마와 글쓰기 수업을 한다. 오기 전에 아이패드와 애플펜슬 사서 이별 선물로 엄마에게 안겼다. 프랑스에 와서는 화상 수업을 하는데 의외로 어떤 어려움도 없다. 살림 외의 것에 도전할 때마다 버릇처럼 엄마는 말해왔다. “난 못하는데. 난 이거 못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이야기의 힘으로 그 말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확신이 내게는 있었다. 수강생들과의 빛나는 시간들과 그때의 대화들, 그들이 보여준 놀라운 변화, 그리고 이 책을 써내려간 시간 동안 쌓인 건강하고 단단한 힘이 생겼다. 


내 책장에서 엄마가 좋아할 법한 책을 꼼꼼히 골라냈다. 박완서와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 사노 요코와 록산 게이, 은유와 이진송의 에세이를 꺼내 엄마의 삶이나 성격, 문제의식과 유사한 부분을 발췌해서 강의안을 만들었다. 나는 솔닛의 이 문장을 내 뜻대로 적용했다. 


“자유로운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이야기에 질문을 던지고, 잠시 멈추고, 침묵에 귀 기울이고, 이야기에 이름을 지어주고, 그런 다음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엄마와 이모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겁에 질리던 여자아이이기를 그만두기.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적절한 질문을 던져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도록 돕기. 그들이 인생의 무게에 눌려 침묵할 때 조용히 기다리기. 그리고  그들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이야기에 이름을 붙여보자고 설득하기. 그 과정을 시작했다. 


세대를 건너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희망적인 이야기로 불행의 도미노 게임을 끝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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