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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Sep 15. 2020

내가 바위가 아니라 흔하고 사소한 모래알이라는 것을

이민자 일기


소심한 외향인. 달리다가 내가 나에게 붙일 닉네임이 떠올랐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는 바깥에서 온다. 관객과 이웃과 동료의 자극에 의해 에너지를 얻는다. 인간들과 지지고 볶고 다투고 시달려도, 그런 식으로 어떤 형태로는 에너지를 유지한다. (고독하게 책과 다투어야 하는 공무원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관둔 것에도 이런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소심하다. “나랑 평생의 친구를 하자.” 앤과 다이애나의 우정을 볼 때 얼마나 부러웠던가. 나는 평생 못 해볼 말인 것이다. 눙치고 뭉개고 은근히 욕망할 뿐.


어제는 포기와 체념, 이 두 단어의 긍정성을 곱씹었다. 여름 내 활기차던 나의 몸과 마음은 유럽의 가을에 크게 당황했다. 기가 막히게 우울했다. 유럽 남부에 여행 온 이의 무드의 전원이 뚝, 꺼지는 느낌. 길바닥의 죽은 쥐나 새를 보고도 유머로 삼을 정도로 흥겹던 마음이 무너졌다. 무너졌다. 푹, 꺾여버렸다.


어제는 ‘내가 우울하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무진장 자존심이 상했다. 취약한 인간이라는 보고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괜찮다는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괜찮아지고 있다는 보고를 해보려 한다. 뭘 했나. 생각을 그만 두고 ‘부탁’과 ‘요청’을 했다. “저 소도시에 혼자 살아요. 너무 외로워요. 한국인과의 대화가 그리워요. 제 인스타 팔로우 해주세요.” 정말 쑥스러웠다. “인스타로 소통해요.” 라고 서슴없이 남기는 사람들을 따라서 했다.


이게 뭐 힘든 일인가 싶지만,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인스타를 팔로우한 사람이 프랑스 생활에 몹시 유용하고 프랑스인도 모르는 어플을 알려주었다. “시민교육 가기 전에 이 앱으로 예습하면 돼요.” 그래, 우리는 어떤 사람들은 필기용 펜도 안 가져오는 이민자용 시민 교육을 두달 전부터 어플로 공부하는 나라에서 왔지. 비슷한 사람을 만나 기쁜 건지, 소통을 요청해 성취를 얻었다는 사실이 기쁜 건지, 아무튼 그게 뭐라고 폴찍 뛸a 만큼 기뻤다.


나는 사람을 좋아해. 사람이 없으면 우울해. 그걸 인정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몬도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는 소셜형이라 그래요." 아니, 인간에 소셜형과 안티소셜형이 있나. 뭐 그런 말은 아니겠지만, 비율의 문제인 것 같다. 뒤의 말은 내가 알아서 붙였다. "소셜형은 사람들과 계속 떠들어야 에너지 생겨요." "소셜형은 먼저 인사 건네야 힘나요." "소셜형은 힘들 때 사람들에게 고백해야 돼요." "소셜형은 대화에서 에너지를 얻어요." 이런 함축이 있다고 멋대로 생각했다. 몬도야, 나도 소셜형 할래. 그거 멋있어보여.

나는 소셜형이다. 수퍼에서 물건 사고 미소만 나누어도 에너지가 난다. 아무도 만나지 않은 날엔 자꾸 날짜를 잊어버린다. 나도 곧 프랑스 사회에 섞이고 싶다는 욕망을 인정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렸다. 이게 무어라고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는지 모르겠다.

구대륙, 그러니까 독일이나 프랑스, 스위스 이런 곳은 미국이나 캐나다와는 좀 다르다. 영원히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민자가 많고, 아시안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나처럼 프랑스 회사나 학교도 다니지 않으면, 사회와 커뮤니티에 나의 존재감이 없는 것이다. 아니오, 안되지. 인간은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이곳에 나의 장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의 결론이 무엇이냐. 되게 웃기지만, 요가와 수영, 자전거 학교에 출석하는 것이다. 이민자 카페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언어를 몰라도 그냥 뭐든 배우러 가서 (강사를 좀 힘들게 하지만 본인은 즐거운) 유형, 현지어로 진행하는 건 무서워서 안 가고 버티는 유형. 나는 유형1을 닮으려고 한다. 한국에서 나는 먼저 요청하고 들이대고,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유형은 절대 아니었다. 뜸을 들이고 들이고 들이다, 안 되면 '원래 원하지 않았어!' 하고 마는 유형이었다. 그러면 이민자는 (속어 죄송합니다) 뒈.집.니.다.


성탄에 도서관에서 각국 언어로 어린이들에게 동화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적극적으로 묻기를 또 해봤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한다. (후...절대 요청하지 않는 인간형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욕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여름 동안, 한국과의 접점을 버리기 싫어 안달했다. 한국 친구들, 한국에서 얻은 것들을 고스란히 가져가면서도 프랑스에 잘 적응하고 싶었다. 세상에, 선생님. 다른 이민자들은 바보라서 그거 못하고 삽니까? 대체 왜 나만은 안 외롭고 나만은 한국-프랑스 오가며 균형감 있게 살고, 나만은 한국 친구와 영원한 우정을 이어갈 거라고 생각했는지 알 수가 없다. 욕망이 너무 크면 인지가 왜곡된다. 어제 아시안 없는 소도시의 이민자로서의 고독을 쓴 글을 읽은 한인 분이 댓글을 여러 개 달아주었다.


“베프와의 통화 후에 파도처럼 밀려드는 허탈감 잘 알죠. 우리는 언제든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베프도 함께사는 파트너도 이민자의 고독을 몰라준다는 것. 저는 체념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저도 욕심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이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 사람이 뭐랄까. 안으로 썩어가더라고요. 썩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깊이 썩으면 그게 바깥으로도 보이게 되죠. 오래 걸렸지만 이제는 괜찮아요. 자의든 타의든 선택이든 상황에 떠밀림이건,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해요. 이곳에서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은성씨, 화이팅해요. 하나하나 해 나가다보면 친구도 생기고, 여기 오길 잘했다, 할 날이 올 거예요.”


그분의 말이 가장 길었지만, 그외에도 열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 감정을 공유하며 화이팅을 외쳐 주었다. 화이팅, 이란 뻔한 말이 이렇게 예쁜 것이었나. 화, 이, 팅. 화이팅은 좀 유치하다고 생각해왔는데, ‘내가 지금 유치한 거 아닌 거 가릴 때가 아니고, 있는 힘 다합쳐 적응하고 봐야 한다’는 절박함이 몹시 상쾌했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데에는 언제나, 씨앗을 싹을 내려고 돌덩이를 머리로 미는 정도의 에너지가 든다. (대체 왜 이러냐 싶은데, 그냥 이렇게 태어났다) 힘들어요, 우울해요, 말할 때마다 자존심1 자존심2 버튼이 꽉꽉 눌린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대화를 나누게 된다. 내가 힘든 게 내 성격이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해결책이 보인다. 우선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만 그만 둬도 에너지가 솟는다. 네가 힘든 건 자연스러운 거야, 약해빠져서 그런 게 아니야, 이민1년이 얼마나 힘든대! 나는 처음에 병뚜껑이 안 열려서 당황했어, 미국 병뚜껑은 한국 거보다 왜 그렇게 무겁고 안 열리니? 비닐장갑 하나도 못 사는 내가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나는 애기가 아닌데. 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보내주었다. 역시 이민자 마음은 이민자가 안다. 너무 고마웠다.


미국에 사는 에이는 자기도 지치면 영어 뇌의 버튼이 꺼져서 ‘엥’ ‘잉’ 이런 말만 하고 외국인 남편에게 “그냥 니가 알아서 들어. 나 지금 말 못함” 이런다고 한다. 나만 그러는 줄 알고 안 그러려고 ‘노오력’ 했는데, 고만 노력 하자. 독일 사는 비는 “저는 가끔 숨이 안 쉬어졌어요. 이민자 스트레스죠.” 라고 했다. 아, 내가 몸이 굳고 말이 안 나오는 게 뇌졸중 전조 증상이 아니었구나, 하고 겁이 없어졌다. 프랑스 사는 씨는 “그래도 자전거 배우러 가셨다니 대단해요. 저는 겁나서 불어로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안 가요. 그 에너지로 막 막 가보세요. 할 수 있어요.” 말해주었다. 아니, 뭐 이런 걸 칭찬을 해주고 그래. 기분 좋게.


이런 생각이 들자, 그래 긍정일기와 감사일기를 쓰자고 마음 먹게 된다. 나 자신의 좋은 점을 칭찬일기로 쓰자고 생각했다. “집앞에 의자 놓고 앉아있는 할아버지에게 인사하는 예의바른 사람은 우리 길에서 나 하나야. 역시 나야.” “한식도 잘 만들어. 역시 손맛 좋은 집안의 딸이야.” “프랑스 사람들이 나보고 영어 잘한대. 세상에......역시 사람은 장소를 잘 골라야 해. 사년전엔 비행기에서 와인 플리즈도 떨려서 못했는데, 장하나 나놈아.”


이런 것도 한때는 좀 유치하다 생각했다. 아니 유치가 어딨냐 생존에. 그래 이민자는 생존이 문제야, 행복이 아니고. 나는 수많은 이민자라는 모래사장의 모래알 하나야, 그들과 비슷할 것이다.


내가 바위가 아니라 모래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렸다.

어쩔 때는 그 인정이 에너지를 솟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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