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
2025년 2월부터 한국에 머물다가 12월에 프랑스로 돌아왔다. 이곳에는 ‘우리 집’이 있다. 내가 만든 나의 ‘가족’이 있다. 올해, 이 격변의 1년을 보내며, 이전의 나는 그리고 현재의 나는 무엇으로 정의되는지 돌아보려 한다.
두 곳을 오가며 이름들을 줍고 버린다. 프랑스에서 누군가의 아내로 존재하다가 한국으로 건너가면 누군가의 딸이 된다. 그런데 그 두 가지 이름 모두 나에게 그다지 큰 의미가 아니라는 걸 이 글을 쓰며 느끼고 있다. 역할의 의무감을 가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떠나는 사람’이다 보니, 누구도 나에게 큰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무책임한 것인지 고민한 시절도 있었지만 운좋게도 나의 가족들은 오직 나의 행복을 빌어준다. 어쩌면 이 ‘역할 버림’이 내 지난 5-6년 간의 성취였을지도 모르겠다. 자의적인 ‘탈락’이다.
누군가의 딸이기를 누군가의 아내이기를 내 생에 한번도 소망해 본 적은 없다. 그저 그렇게 된 일이다. 사랑이 큰 탓인지 장녀로서의 책임감인지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로 성장했다. 어머니의 모든 슬픔을 위로하는 딸로, 대신하여 화를 내는 딸로, 그 대신에 나의 욕망은 모른 채 하는 이십대가 되어버렸고 때문에 오래 방황했다. 여러 격랑을 지나 나는 나라를 떠났다.
이윽고 어머니는 나 없이 잘 살아가는 방법들을 수집하고 실행하기 시작했다. “점집에서 하는 말이, 너와 내가 멀리 있을수록 네 운이 편대. 너무 가까우면 안 좋다네.” 어머니는 복지관에서 심리상담을 받고 민화를 그린다. 여러 복지관의 역사, 언어, 한방 수업 등을 듣는다. 자신에게 맞는 배움들을 매년 열심히 찾아 즐거움을 얻는 어머니가 자랑스럽다. 그래서 이제 나는 ‘딸’이라는 이름을 나 스스로 다시 주웠다. 그러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내 어머니와 시시콜콜 대화하는 것이 어떤 거슬림 없이 몹시 즐겁다. 시간이 해준 일이다.
나는 ‘아내’ 일까? 파트너는 나를 어떠한 아내로 여기지는 않는 것 같다. 어떤 아내상을 그려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사람. 이 집에 머물다가 떠났다가 다시 머물다 떠나는 나를 지지하고 격려하며, 그는 어느덧 혼자 저녁을 보내는 습관들을 하나둘 만들어갔다.
“일 끝나면 종종 00바에 가서 맥주 한 잔 놓고 하루를 정리하곤 해.”
00바는 내가 이 곳의 생활이 고단할 적마다 가서 맥주를 마시던, 나의 약간 비밀스러운 장소였다.
“그 바가 맥주가 제일 싸고 맛있어. 우리 동네에서. 그리고 바텐더들이 다들 무지 친절하다고. 기분이 좋아지지.” 이게 그리 놀랄 일인가마는, 극 내향형인 내 파트너에게 이 변화는 충분히 놀라운 일이다. 시간이 가면 많은 게 변화한다는 것을 믿어보려 한다. (이제는 내가 어쩐지 ‘집이 제일 좋다’ 파가 되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끝나면 어른이 되는 걸까, 노인이 되는 걸까. (프랑스로 돌아온지 사흘째라 장소 이동으로 인한 일시적인 허니문 효과인지 모르지만) 오늘의 나는 내가 어떤 작가인지 어떤 선생님인지 어떤 딸인지 어떤 아내인지, 전혀 고민이 되지 않는다.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없는 존재함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