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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l 02. 2021

첫 관심 사원(하)

‘일을 왜 때려치고 싶은가’를 알아내야 했다. 그렇담, 퇴사를 갈망하게 된 시점은 언제부터더라… 생각해보니, 본격적으로 퇴사를 품에 안은 것은 2년 차부터였던 것 같다. 1년 차 때는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이라는 이미지에 취해있었고 2년 차가 다가오자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직장인은 알 것이다. 하루의 시작을 피곤으로 시작해 더 많은 피곤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음 날 아침엔 더 많은 피곤과 함께 출근을 한다는 것을, 그렇게 주말이 다가오면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을 안고 주어진 이틀의 자유를 마음껏 휘두르고 싶지만 정작 몸은 피곤에 휩싸여 침대에 착~, 떨어질 줄 모르는 신세가 된다는 것을. 그렇게 일요일 저녁쯤이면 넋 놓고 지나간 주말을 회상하며 게으른 자신을 다시 자책하고 나면 더 많은 무력감과 퇴사 욕에 휩싸인 채 헬요일 아침을 맞이하기 십상이라는 것을. 


일반적인 이유를 제쳐두고 그럼에도 남들보다 더 빨리 무기력증이 찾아온 건 어쩌면 ‘틈’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학교에서는 첫 학기부터 학점이 낮았다. 학점의 구멍을 계절학기로 정신없이 메웠다. 졸업 전에는 휴학을 할까도 고민했지만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휴학 대신 대학원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나도 이끌리듯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발을 들였다. 그곳에 뜻이 없음을 아는데도 나는 길 잃은 강아지가 되기 싫어 야망이 있는 척 그곳을 향했다. 그렇게 나는 쉴 ‘틈’ 없이 쳇바퀴를 굴려 회사 생활이라는 굴레까지 단번에 들어왔다. 어떤 사람들의 시선엔 취준생의 비운을 느껴보지 못한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나는 정말로 매번 운이 좋아서 대학교부터 오늘까지 9년 동안 쉴 새 없이 달릴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달리는 기회가 간절해진 현대사회에서 나는 계속해서 달려지고 있으니까..


나는 가끔 심란할 때 핸드폰의 달리기 어플을 재생해 집 주변을 달린다. 이어폰에서는 이런 말이 들린다. “달리기 전 5분 걷기를 시작합니다.” 또 한참을 달리고 나면 이런 말이 나온다. “마무리 걷기를 시작합니다.” 다음에도 오늘의 몸과 마음으로 달릴 수 있게. 지치지 않게. 그렇게 계속 유연한 태도로 달릴 수 있도록. 한차례 걷기에서도 시작과 마무리 단계가 있었다. 집 근처 산책로에서 마무리 걷기를 걸으며, 지금까지의 날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한 차례 마라톤을 끝내고 다시 새로운 마라톤을 뛰기 시작하는 나의 모습이. 휴식 지점은 없는 고강도 인생 트레이닝에 푹 절여진 나의 모습이. 휘청거리며 이제는 멈추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레이스를 멈추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쉴 ‘틈’의 부재가 이렇게나 고통스럽다는 것을 서른이 다가온 스물아홉 인생이 돼서야 알게 됐다.


악착같이 살아온 내가 미련한 것 같지만 사실은 너무 순수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엄마는 습관처럼 말했다. “대학교에 가면 너 마음대로 해.” 나는 그 말을 감쪽 같이 믿을 만큼 순수했다. 그땐 “너 마음대로 할 수 있어.”라는 말 넘어 나의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안았다. 나보다 더 오랜 세월을 거친 어른의 말은 어딘가 주름이 깊고 낡아 보여 더 믿음이 갔다. 대학생이 되어서 깨달았다. 엄마가 말하던 달콤한 세상은 펼쳐지지 않는다고.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았고, 해야 하는 것이 많았고,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 마음대로 하려 치면 이런 말들이 들렸다. “그렇게 하면 취업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게. 나 어떻게 돈을 벌지.’ 다시금 까마득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학점을 관리하고 대외활동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바라보며 ‘취업을 하면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어정쩡한 모습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나와 달리 다들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서 확신과 자신감이 어우러진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명절에 내려가면 어른들은 말했다. “취업 준비는 잘 되고 있어? 지금부터 잘 준비해야 돼. 그래야 회사 가.” 나는 다시 한번 달콤한 어른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런데 저번에는 진짜가 아니었는데……. 나는 또 속는 기분이었지만, 그렇다고 별 다른 묘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취업을 하기 위해 나도 무언가 알고 있는 사람에 뒤섞였다. 나에게서 확신과 자신감이 어우러진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어른들의 말대로 나는 취업에 성공했다. 이제 내 삶이 펼쳐진 때였다. 이 업무만 끝내면 내 삶이 펼쳐진다. 그런 마음으로 3년이 지났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 거지? 내 삶은 언제 펼쳐지는 걸까? 나는 매번 순수하게 어른들의 말을 믿었는데, 어째서 희생양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매일이 울상이 되어가는 데, 엄마와 아빠는 행복해 보였다. 나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 거지.


아직 내게 떨어지지 않은 사표 한 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내가 원해서 이 길을 선택한 것이 맞던가. 그런데 막상 퇴사하면 어떤 길로 가야 하는 거지. 서점에서도 인터넷에서도 퇴사 후 성공 스토리로 시끌시끌한데, 어쩐지 그들처럼 잘 살 자신이 없었다. 나는 또 길을 잃은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몰랐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던 내가 어쩌다 퇴사까지 선언하게 된 것일까. 문득 “잘하고 있어요. 같은 동기들이랑 비교했을 때 일이 뒤쳐진다고 생각해요?”라고 물어보는 선배의 질문에 답 비스무리한 것을 얻었다. 나는 내가 매번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난 충분히 나의 몫을 해내고 있었나 보다. 

나 자신에게 더를 외쳤던 사람이었다. 더 잘할 것, 더 공부할 것, 더 많은 일을 할 것, 더 빨리 할 것. 스스로가 부족한 것만 같아서, 누군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매번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졌다. 그리고 그 부담감 뒤에는 뿌듯함이나 만족이라는 것 대신 더 많은 부담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만큼 했으니까, 다음은 더 많이, 더 빨리,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달콤한 말을 했던 그들의 빈자리에 내가 있었다. 채찍을 쥐고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아니었다. 


“코로나로 일자리 구하는 게 쉽지 않은데 그때까지 다니며 좀 더 생각을 해보는 건 어때요?” 팀장님의 말을 되새기며 생각했다. 어쩌면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할 시간, 일을 마치고 쉴 시간. 그런 것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그 뒤로도 나는 아직도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여전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준비하는 중이고, 누구의 삶을 사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들 때도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나의 손에 채찍이 사라졌다는 것. 잘하려는 욕심을 포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퇴사 선언은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언제든 힘들면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을. 내게는 자유라는 선택지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힘들면 잠시 그늘 아래 짐을 내려놓고 앉아서 땀을 닦고 바람을 느낄 수 있듯이. 힘들면 언제든지 하던 일을 내려놓으면 된다는 것을.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닌 참된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주변인들에게는 힘들면 기대도 된다고, 언제든 불러달라고 했음에도 정작 나는 기대는 것에 능숙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저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별 거 아니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일은 괜찮으세요?” 그날 이후 난 팀장님의 관심 사원이 된 것을 느낀다. 근데 어쩐지 그 관심이 싫지 않다. 누군가 나의 안녕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아서.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는 일은 인류애가 희미해진 현대 사회에서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는 인류애 다운 인류애가 아닐까.


소중한 사람들에게 ‘힘들면 언제든 기대.’라는 말을 아직도 자주 한다. 이제는 하루의 끝이 오면 이불에 들어서며 물어본다. 오늘은 어땠는지, 많이 힘들지는 않았는지. 어느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말이다. 

무거운 어깨를 지고 힘들다 말하지 못한 채 서있는 이들에게 힘들면 말해도 된다고 언제든 나의 어깨에 기대어 쉬어도 된다고.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대신해 글을 몇 자 적어본다. 소리 없는 이 말이 초여름 바람을 타고 당신의 발아래 작은 그늘을 만들어주기를. 그렇게 닿은 그 말에 잠시 기대어 쉬었다 가기를 바라며. 



by 로운

말보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에세이를 씁니다. 덜 부끄러운 존재가 되고 싶고, 오롯이 나로 살고 싶어 매일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나만의 것들로 다가오는 세월을 채우는 중입니다. 요즘은 매일 아침 일어나 오늘은 어떠한 나로 하루를 채워갈지 생각합니다. 오늘의 불완전한 나를 하루에 하나씩 만들다 보면 언젠가 온전함이 깃들어 있기를 기대하면서. 덜 웃기면서 덜 진지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로운의 브런치 https://brunch.co.kr/@peace-f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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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글워크숍 중에 초고를 쓴 뒤 발전시켜 완성한, 수강생들의 원고를 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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