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참한 세계 속의 유일한 기적이다
사랑하는 A. 첫 문장을 내내 망설이다가 바보처럼 쓴다. 사랑하는 A라고. 사랑하는 너 때문에 나는 울고 있다고. 이런 말을 하면 또 언제나의 너처럼 “네가 왜 울어? 나는 이제 괜찮아.”하며 너 특유의 맑고 깨끗한 물같은 얼굴을 할까. 사소한 것에 자주 일렁이는 나는 또, 아주 조금 마음을 구기면서 말하겠지. 이 재미없고 무덤덤한 여자야, 하면서.
어제는...아이였을 때 네게 찾아 온 사고에 대해 쓴 글을 읽었어. 네가 보여줬잖아. “글로 써놓은 게 있어. 읽어 봐.” 하고 노트북 화면을 내게 돌렸지.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몰라 가장 익숙한 표정을 고르곤 한다. 무뚝뚝한 건지 화난 건지 모를 딱딱한 표정을 지어, 턱이 아프도록.
아마 말을 뗄 적부터 연습해 온 표정. 아...걷고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나의 엄마는 울고 있었거든. 매일밤 혼자 울고 있었어. 나는...나마저 동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 세상의 딸들은 철들 때부터 그런 말을 외우잖아. ‘나는 엄마의 용기가 될 거야’ 태어나자마자 맞닥뜨린 불행에 대해 당황하지 않기 위해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연습해. 화난 여자의 표정을.
“글 참 잘 쓴다.” 아마 그렇게 천치 같은 말을 했을 거야, 내가. 견디기 어려운 고통에 대해 읽을 때 활자는 자주 무력하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야만 기능한다. 우리가 앉았던 테이블에서 나는 그 문장들을 채 다 읽지 못했어. 서둘러 읽고 너를 위로해 줘야 한다고 느꼈을까. 위로란 것이 가능하다고 여겼을까. 마치 방금 전에 일어난 사고처럼 느껴져서 내 앞에 앉은 예쁜 소녀를 따뜻하게 안아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모르겠다. 상관없는 이야기를 주워섬기다 집에 돌아왔지.
집에 다다랐을 때, 빌딩 앞 어두운 곳에 홀로 주저앉아 스마트폰으로 그 포스팅을 다시 열었어. 오래도록 삼켜 온 울음이 터져버렸다. 때로 감정은 서둘러 가라앉았다가 예상치 못한 시간에 다시 솟구치곤 하잔아.
어쩐 일인지, 강간인지 사랑인지 아리송했던 첫 경험이 떠올랐다. 스커트 안에 손을 넣은 노숙자에 대해 덤덤하게 이야기했을 때 나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가 놀라서 안아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때 엄마도 당황해서 딱딱한 표정만 했겠지. 내 얘기를 듣자마자 그 치마가 짧았는지 길었는지 물었던 옛 연인도 떠올랐다. 캄캄한 골목에서 내 가슴을 움켜쥐고는 무섭냐며 비실비실 웃던 고등학생도 떠올랐다.
어제 어두운 길에서 키가 아주 큰 남자가 왁, 하고 소리치고는 내가 어깨를 움츠리자 흥이 나서 하하하하, 아주 길게 웃던 것을 떠올렸다. 나는 또 욕을 했었지. 야 이 개씨발새끼야. 사실은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 저 남자가 만약 화가 나서 내 얼굴을 시멘트 벽에 짓뭉개면 행여 죽더라도 사과는 절대로 안 할 거야,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상상을 했다. 매일 매일 매일, 여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내는 세계란 뭘까. 바깥 세계는 너무 평화로워.
기억도 희미한 여러 번의 성희롱과 성추행을, 그리고 그런 경험을 말해봤자 “뭐 그 정도를 가지고 그래.”라고 말할 사람들을 떠올려 고개를 휘저어 잊어버렸던 때를 떠올렸다. 아니다. 잊어버리지는 못했어. 여자들은 유령이 되어도 또렷히 기억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더 선명해진다.
글을 여러 번 읽고도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나는 길 잃은 아이의 기분으로 되돌아갔어. 초등학생처럼 백팩을 멘 채 건물 앞에 주저앉아 훌쩍였어. 아...엄마는 왜 나를 찾으러 오지 않을까. 내가 길을 잃으면 엄마는 또 슬피 울 텐데. 영원히 집에 돌아가지 못하면 엄마의 인생도 무너질텐데. 그래서 나는 꼭 살아서 돌아가야 돼.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나쁜 일을 당하더라도 살아만 있으면 돼. 열한살 때 장대비가 내리던 날, 동네에서 길을 잃었을 때 어떤 착한 오빠가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손도 잡아주고 길을 찾아주겠다고 함께 걷다가 우리 가족을 맞닥뜨리자 도망가 버렸을 때, 어쩌면 나는 불행을 용케 피했던 것일까.
세상의 불행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어떤 여자에게 도달하지 않으면 그건 다른 여자를 찾아가는 걸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내내 앉아 있었어. 어린 너를 떠올렸다. 네가 울면서 집에 걸어가던 때, 집에 가면 엄마가 안아주겠지, 생각하던 순간에 찾아가 안아주고 싶었어. 부드럽고 따뜻한 무언가를 만들어주고 베갯잇을 반듯하게 펴고 뉘인 후 순진한 동화를 읽어주고 싶었어.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너는 또 “또 무슨 엉뚱한 소리야.”하며 웃겠지만.
한 여자가 집에 돌아오면 대신에 다른 여자가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것일까. 내 몰카가 돌지 않으면 너의 몰카가 돌겠지. 나는 버스 터미널 화장실에 들를 때마다 “그래. 이 개씨발새끼들아. 실컷 찍어. 마음껏 봐라.” 이 악물고 속으로 외칠 때의 어이없는 용기를 떠올렸다. 야근 후 기진맥진해서 돌아왔을 때, 현관문을 열 때마다 숨을 훅, 멈추고 ‘집안에 누가 숨어있다면 강간은 당해도 살해당하지는 말자’ 생각하는 습관을 떠올렸다. 일 년에 365일 그렇게 한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매일매일 똑같은 생각을 한다.
컴컴한 길목에 앉아 오래 울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한 여성의 고통은 지구 위 모든 여성의 고통과 투명한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한 명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어코 휘저어지는 영원한 기억들이 있다. 우리가 그 모든 고통에 대해 낱낱이 들으면서 숨쉬고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 같을지도 모르겠어.
네가 말했잖아. “그 고통이 나를 휘젓도록 내버려 두면 안 돼.” 그래서 너는 기회가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그 사고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고 했다. 상대의 반응이 어떻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조그만 아이가 소녀로, 어른으로 성장하며 홀로 겨루어 왔을 고통을 떠올렸다. 아, 그 고통에 대해 내가 글로 쓰는 건 주제 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손가락은 자판 위에서 자꾸만 길을 잃어버린다. 활자란 언제나 무력하다.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야 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니까 고통을 열심히 극복했다고 너는 말했어. “과거가 현재의 나를 훼방놓도록 하면 안 되잖아.” 아, 너의 말은 어쩌면 그렇게 단단할까.
그래서 너는 말하기를 선택했다고 했어. “너는 고작 상처야. 과거야. 그건 내가 아니야. 그건 타인이 내게 준 고통이야. 그건 내가 아니야.” 그렇게.
악몽 같았던 일을 입 밖으로 소리낼 수 있게 되면서 너는 단단해졌다고 했다. 1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그 끔찍한 일이 너의 탓이 아니란 걸 깨닫는데 긴 시간이 걸렸다고. 수 만번 자문했다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고통이 닥쳤을까. 누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알지, 세상은 이토록 개씨발같다. 내가 잘 하지도 못하는 욕을 내뱉으면 너는 또 어이없다는 듯 웃겠지만.
How beautiful you are. 미처 너에게 보내지 못한 메시지야. 글을 어떻게 마쳐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사랑한다고, 너는 너무 아름답다고. 마치 서투른 번역체 같은 문장만 내내 타이핑하고 있다. 너무 멋진 너에게 나는 너무 소심하고 어색해진다.
“완벽한 문장은 영원히 쓸 수 없을 거야. 나는 알아버렸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해질 수가 없다는 걸. 구김살 없이 맑은 사람이 부럽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다는 걸. 그래서 선택했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되돌아보지 않기로. 있는 힘껏 행복해지기로.”
네가 이렇게 말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태어나서 가장 마무리 짓기 어려운 글을 마칠 수가 있다.
할 수 있는 만큼 행복해지자. 망설이지 않고 울지도 않는 너는, 어디로든 갈 거야. 너는 산을 오르고 헤엄을 치고 호감이 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기어코 친구가 되고, 네 주변의 세계를 너만큼 아름답게 변모시켜 나간다. 그래, 너는 어디로든 간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용기가 된다.
한 여자의 고백이 다른 여자의 고통의 기억을 휘저어 놓는 것처럼. 한 여자의 용기가 많은 여자의 용기가 된다. 그게, 이 개씨발스러운 세상에서도 우리가 농담을 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만든 기적이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거야) : 성폭력피해자 연대 단체인 용기당의 메인 슬로건입니다.
김은성
purplewat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