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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n 20. 2018

새벽동이 틀 때까지 너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지

안전하고 보호받는 느낌이 들 때, 사람은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사랑이란 상대의 어떤 말에 걸려넘어져서 풍덩 빠져버리는 거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나 소설 속 멋진 사랑 고백들이 그랬으니까.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존재라거나, 샌드위치 하나 주문하는데도 한 시간이나 걸리는 너를 사랑한다거나. 그런 아련하고 달콤한 말들.


독서실 책상에 웅크려서 만화책 속 대사에 줄을 긋던 고딩 시절. 일기장에는 이렇게 썼다.

'섬세하고 낭만적인 말을 해주는 사람이 생기면 반해버려야지' 또는

'달기만 한 말에 속아 헛된 연애를 시작하지는 말아야지' 결론적으로 두 가지 다 불필요한 생각이었다. 내가 나를 잘 몰랐었던 때의 착각 리스트 중 하나.


연애라는 걸 시작해 보니, 상대를 고르는 패턴이 그려졌다. 연애가 두 명이 하는 거고, 그 둘 중 보다 더 말하는 쪽과 보다 더 듣는 쪽이 있다면 단연코 나는 말하는 쪽이었다. 연애의 시작도 그랬다.

나는 내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는 상대에게 정말이지 취약했다. 녹아버렸다. 빠져버렸다. 그 속에서 헤엄치고 싶어졌다.




어떤 말 때문에 사랑에 빠져버렸더라. O와의 연애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짚어볼 때마다 나는 망연해진다. '어라, 아무 것도 특별할 게 없었어?' 이럴수가. 나는 O를 정말 많이 좋아했다. 사랑도 했지만 좋아도 했다. 두 가지는 종류가 다른 감정이다. 아무튼, 누가 그를 왜 사귀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막힘없이 대답했었다. 손가락이 길고 나물을 잘 무치고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고 책도 많이 읽고...가지가지 이유를 엑셀파일처럼 차르륵 대답하곤 했지만. 아니야.


나는 그가 손가락이 짧아도 아이고 귀여워, 했을 것이며, 책을 안 읽고 미드만 보는 인간이어도 그러니까 니가 영어를 잘하지 아이고 사랑스러워,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시절, 그의 특징을 나열하며 그 특징 때문에 내가 그를 좋아한다고 말할 적마다 뭔가 석연치 않았다. 이제는 안다. 모든 건, 완전하게 끝을 낸 후에야 알게 되니까.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또 헤어졌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첫 순간은 또렷하다. 술을 매일 마시던 시절, 새벽이 깊어지면 어느새 술자리 인원은 몇 배로 늘어있었다. 그 금요일에도 두명이 여섯 명이 되는 기적이 벌어졌다. 그 중에 그도 있었다.


당시의 나는 (다시 말하지만) 술을 아주 아주 많이 마셨기 때문에, 술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블랙아웃이 일상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조그맣고 캄캄한 술집에서 데킬라를 마시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아니, 빌리 홀리데이를 무찌르고 있었다. 빌리 홀리데이의 엄청난 보컬을 무시하며 떠벌거리는 나.  


어쩐지 사막여우를 똑닮은 얼굴로, 웃지도 않으며 열심히 듣고 있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재미있나? 재미없나? 혼곤한 정신으로 의아해했던 것 같다. 그 시절, 만난 남자들은 두 가지였으니까. 내 말에 폭소를 터뜨리거나(이런 경우, 시시해서 만나기 싫어진다) 내 말을 자르고 삿된 조언을 하거나(이 경우, 짜증나서 집에 가고 싶어진다) 그런데 눈 앞의 사람은 둘 다 아니었다. "뭐지, 이건?" 사랑에 빠져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뭐지 이건?은 꽤 위험하다. '뭐지, 이건'을 조심하세요 부-디.


부연하자면, 당시의 나는 마개가 터져버린 탄산이었다. 대한민국 초등학생의 미래엔 아무 관심도 없는데 밤 11시까지 구디단에 있는 문제집 회사에서 보기와 해설을 만들다가, 보기를 몇 개 더 만들다가는 우울에 고꾸라질 것 같아서 돌연 (은퇴선언도 아니고) 퇴사를 해버린 다음 날이었다. 형광등 불빛이 눈을 찌르는 사무실에서는 내 마음에 대해 말할 수가 없었으니까. 감정의 파편 같은 게 잔뜩 부서지고 쌓여져 있었다. 오랜만에 말이 하고 싶어 술을 더 시켰을지도.


연거푸 들이킨 술은 새벽이 깊도록 깨지도 않았다. 혀가 꼬여서는 뭐라뭐라 조잘거렸는데 다 받아주었다. 주정뱅이들이 그렇듯 이야기는 시시하고 두서없었다.


나는 친구도 매일은 못 만나는 성격인데 주말까지 회사 인간들을 만났어, 인생 진짜 비극 아니냐?


한국 진짜 미쳤어, 어떻게 하루에 네시간 자고 일하지? 그런데 다들 애도 키워. 초능력자들이야.

우리 옆팀 직원은 갑상선암 걸려 퇴사했어 뒷팀 직원은 야근하다 유산했어. 진짜 진짜 한국 미쳤어.


아.....뭐 하고 살고 싶은지 모르겠어, 꽂히는 것도 없고 꿈도 없어. 정말 시시한 인간이 나야, 너도 나 재미없지 않냐?


근데 나는 솔직히 프라이팬에 녹은 인절미처럼 가만히 누워 있을 때가 젤로 행복하다

회사 다닐 때도 옥상 꽃밭에 누워 페퍼톤스 노래 부르고 그랬다? 좀 귀엽지?


야! (갑자기 화냄) 말해봐 너도 동의하지? 행복은 루프탑이야. 행복은 밖에 있어. 둥둥 떠다녀. 그러니까 바닥에 누워야 잘 보여! 내 말 다 맞지?



나는 어떤 말에 사랑에 빠져버렸나. 또렷히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그게 다 별건 아닌 말들이라서였다.


회사 가기 정말 싫었겠네

속상했겠네. 마음이 아팠겠다

눕는 거 좋아하는구나, 전생에 나무늘보였나 보다, 나도 그래

맞아, 행복은 둥둥 떠다녀 그래서 손에 잘 안 잡혀


기발한 답변도 아니고 속시원한 조언도 아니고 깊은 통찰도 아니었는데, 그와 이야기하는 게 너무 너무 좋아서 거짓말을 했다. "우리 집 가는 첫 차 오려면 멀었어."




돌이켜보니, 내가 좋아한 사람들은 모두 그랬다. 듣는 힘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유치원 다녀온 아이에게 그날 배운 것에 대해 묻고, 아이가 말을 더듬든 내러티브가 꼬이든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이야기처럼 들어주는 엄마 같았다.


상대가 내 말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느껴지면,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인생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적어도 나는 지금, 이 한 사람의 세상에선 가장 중요한 사람이야'

갑자기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공주 대접은 무슨. 여왕 대접은 무슨. 비싼 반지 사주는 것보다 경청 하나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그런 가운데 잘 들어주는 사람은 정말, 귀했다. 그들을 나는 아낌없이 사랑했다.


그런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 같은 말을 쉽게 하지도 않았다. 누가 내 감정을 안다고 하면 “아니! 전혀! 알리가 없지.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거든!" 발끈하던 시절이었다. 술자리에서 연신 맥줏잔을 부딪치며 “알지, 알지, 그 맘 알지.” 같은 말을 나누고 돌아오면 꼭 집앞 수퍼에 들렀다. '말을 많이 하면 속이 허한가' 하며 벤치에 앉아 캔맥주 하나를 비우고서야 집에 들어갔다. 눈앞이 뿌얘질 정도로 취해서야 지쳐 잠들곤 했다. 어쩐지 세상 모든 것에 화가 치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의 맑은 물같은 대답들에 나는 안전하고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 주정을 어떻게 그리도 곱게 보듬어주었을까. 취미를 가져보라거나 어떤 책을 읽어보라거나 하는 충고도 없었다. 1차, 2차, 3차. 오뎅을 먹고 아몬드를 먹고 소주를 마시고 데킬라를 마시고 맥도날드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차곡차곡 믿음이 쌓였다.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연애를 하는 내내 우리는 싸우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정말 잘 들어주었기 때문일 거다. 내가 쓰고 싶은 글, 나를 힘들게 하는 클라이언트, 내가 가고 싶은 나라, 내가, 내가, 내가, 나는, 나는, 나는. 내가 뭐라 떠들던 그는 위로하고 응원해주고 믿어주었다. 돌이켜보니 많이 미안하다.




그때는 소통에 더 서툴렀다. 의심도 불안도 많은 성격인데, 아주 가끔은 숨겨둔 진심을 굳이 꺼내 보여주고픈 사람을 만나고는 했다. 그럴 땐 왈칵, 울음을 터뜨리듯, 내가 뭐가 어렵고 힘들고 스스로에 대해 이상하게 느끼는지 쏟아냈다.

그런데 만일 상대가 나를 돕고자 말을 열심히 하면, 희한하게도 마음은 닫기곤 했다. 조언은 필요없었다.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필요한 것뿐이었으니까.


나만 그럴까. 사람들은 의외로 초식동물같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상대에게만 진짜 속 마음을 보여준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용기다. 못나고 부족하고 찌질할지도 모르는 내 진짜 마음을 보여줘도 평가하지 않을 사람에게만 열어보이는 게 당연하다. 어떤 마음을 보여줘도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고 쉽게 결론내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안전하게 느낀다. 그런 상대에게만 진짜 이야기를 나누어 준다. 가만히 들어주기만 해도 믿음은 생겨난다.


많은 사람들이 대화 중에 진짜 마음을 은폐한다. 나도 그렇다. 특히 마음이 아주 연약할 때는 더. 나를 오해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에게는 ‘뻔한 말’만 이어가는 게 안전하다고 느낀다. “진짜 대단하세요.” “사는 게 다 그렇죠.” “열심히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네요.” “아, 뭐. 그럭저럭 괜찮아요.” 이런 말은 순식간에 수백개쯤 자동생성해낼 수 있다. 이런 대화를 하고 돌아오는 밤엔 그야말로 술이 땡긴다. 시간을 낭비한 것 같아서 괴롭다. 하고 싶은 말은 그대로 고여있다.진짜 마음은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발걸음이 무거운 이유다.      



글을 쓰다 떠올랐다. 한동안 나는 순대국의 순대를 나눠주는 다정한 남자라서 그에게 반했다고 말하곤 했다. 두번째 만난 날, 내 밥공기 위에 소중한 피순대를 두 개나 얹어주는 것에 놀랐지. 다정도 다정이지만 그건 관찰력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너의 순대국 그릇을 부럽게 쳐다봤겠지. (나는 콩나물 해장국을 시켰다)


순대국 이야기는 약간 농담이지만. 좋은 대화를 위해서는 관찰력이 좋아야 된다. 마음은 말 뿐만 아니라 다른 통로로도 전해지니까. 눈빛과 손짓, 한숨의 세기, 앉은자세의 기울기, 목소리의 미묘한 떨림 같은 것들. 그 속에 숨은 진심을 발견해낼 수 있어야 대화는 물흐르듯 이어진다. 그는 그런 걸 정말 잘했다.


마지막으로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유럽을 일년 넘게 여행 중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친구를 사귀고. 여행길에 O와 친구가 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네. “당신 지금 엄청난 행운을 가진 거 알아요?”

언젠가 운이 좋아 다시 한번 만나게 된다면 그땐 내가 네 이야기를 동이 틀 때까지 들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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