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 단짠단짠이라서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기가 어렵다
“저 등을 발로 차고 싶어.” 속으로 한 내 말에 내가 놀랐다. 돌아가신 아빠와 할머니의 산소를 찾은 명절 아침. 엄마와 남동생이 사과와 황태포를 놓고 맑은 술을 따르고 돗자리를 반듯하게 폈다. 그런데 문득 엄마의 등을 발로 힘껏 차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버린 거였다.
돌이켜 보면 한두 번도 아니었다. 산소를 찾을 때마다 가족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딘가 모르게 안정감이 없었달까. 멍하니 있다가 별것도 아닌 일에 버럭하다가. 세상 모든 일에 화를 내는 사춘기 소년처럼 굴었다. 예컨대 이런 대화였다.
“돗자리에 붙은 풀 좀 떼라. 차례날인데 깔끔하게 해야지.”
“뭘 깔끔하게 해? 이 정도면 됐지. 정리 대회 나가?”
“가만 좀 있어. 얘가 왜 이래?”
“뭘 가만 있어? 내가 맨날 가만 있지. 한 번이라도 난리친 적 있어?
내가 가만있었으니까 우리 집 이 정도지.”
“그러지 좀 마. 얘가 갑자기 왜 그렇게 엄마를 힘들게 해.”
“내가 뭘 어쨌다고 갑자기 비극적인 척 해. 우리 집 없는 적이 없었던 게 분란인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기죽거리기. 스물 일곱이 아니라 열 일곱이래도 믿을 유치한 말투.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자꾸만 속에서 뜨거운 게 치민다는 것만 알았다.
독한말 자판기 같던 나. “다 큰 어른이 쉬는 날 나온 게 그렇게 짜증나? 할 도리는 하고 살아야지.”라는 엄마의 말에 그냥 납득해 버렸다. 내 안에 애 같은 부분이 있나보다, 나는 좀 이상한 애다....그렇게 감정을 ‘퉁쳤다’.
그날의 공격성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깨달은 건 그로부터 몇 년 후였다. 어느 밤, 엄마와 맥줏잔을 기울이다가 내뱉은 말에 내가 놀랐다.
“둘 다 없으니 이렇게 좋네. 행복하다. 우리가 팔자 편해졌네.”
아아. 너무 재미있었다. 술이 달았다. 기분이 고조되었다. 짜릿짜릿짜릿. 마음 속에 큰 길이 시원스럽게 뚫리는데, 그게 말 덕분인지 맥주의 탄산 덕분인지 아무튼 좋았다. 취기가 오른 척 하며 더 더 질러버렸다. 스탠딩 코미디야, 그래, 난 위악적 농담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코메디언이지! 한잔을 더 들이켰다.
“난 솔직히 할머니 돌아가셔서 너무 좋았어.(이런 말을 하다니. 나는 지옥 갈 거야) 고3지옥과 함께 할머니 지옥도 쫑. 더블 해피니스지!(미쳤어. 누가 제발 내 입 좀 막아줘요)"
“우리 아부지 참 안 됐고. 그립기도 하고. 안쓰러운 사람이지만, 지금 살아있었으면 퇴직하고 나서 세끼 뜨신 밥 해달라고 엄마를 들들 볶았을 거야. 엄마 나이에 남편 없고 돌볼 손주 없으면 더블 럭키, 더블 럭키!"
“친척들이 엄마 보고 ‘그 노인네가 아들이 끔찍이 이뻐서 2년을 못 참고 데려갔네’ 그랬지? 무례하고 잔인한 족속들. 난 그거 엄마 위로하는 말이라고 안 봐. 팝콘 먹으며 남의 고통 시청하는 것들이지.”
내 말의 비트를 따라 맥주 거품처럼 감정이 흘러내렸다.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냐며 꾸중할 줄 알았던 엄마가 폭소를 터뜨렸기 때문에. 나는 좀 무대체질이다. 관객이 잘한다 잘한다 해야 더 잘하는 타입이에요. 끝을 좀 몰라서 문젠데, 이날은 끝을 몰랐던 게 아주 잘한 일이었다.
“그리고 말야...엄마는 바보야? 뭐가 예쁘다고 제사상을 차려 줘?”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아, 그랬던 거구나.' 논리 없이도 스르륵 깨달았다. 무성한 잡초를 정리하며 ‘자주 못 찾아와서 미안해요 어머니’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를 보며 느꼈던 감정. 그건 뭐였는지 손에 잡힐 듯 했다.
술이 깨고 나서 ‘진짜 감정’이라는 이름의 리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검열하지 않고 손이 가는대로 써 내려갔다. 누가 볼 것도 아니니까, 내 감정을 누가 비윤리적이거나 패륜적이라고 욕할까봐 염려하지 않았다.
1 “뭐야. 가족 드라마 코스프레 하나. 엄마도 산소 오기 싫을 거면서?” 라는 생각을 했다.
2 과일과 포를 차리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하루 세끼 새 국을 끓이던 모습이 연상됐었지. 손가락이 다 찢어지도록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오던 엄마, 말도 못하고 정신도 없었던 할머니를 위해 유동식을 종류별로 만들던 엄마가 떠올라. 고개를 젓고 싶었지.
3 다 잊고 싶었는데 산소에만 오면 기억이 소환되니까. 너무 싫다. 엄마가 그때 말했잖아요.
“그때 도망 갔으면 너희를 보지 못하고 살았을 거야. 그래서 그냥 살았어.”
감정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니 묘하게 차분해졌다. 감정에 이름표를 붙여보았다. 왜 전에는 내 진짜 마음이 뭔지 파악하는 게 어려웠을까. 문제는 감정이 단독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란 사실이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나는 엄마가 가여우면서 미웠다. 그녀에게 몹시 미안하면서도 한편 원망스러웠다.(대한민국 장녀라면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나와 남동생 때문에 불행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한 엄마에 대한 미안함. 그럼에도 우리를 때문에 자기 삶을 불행해지도록 둔(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에 대한 답답함. 그렇다. 양가 감정이었다.
감정은 원래 그렇다. 무리지어 움직인다. 감정도 단짠단짠이다. 우리는 이 단짠감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축하를 하고 싶으면서도 샘이 난다.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럽고. 설레면서도 두렵다. 기대되면서도 부담스럽다. 게다가 이 감정들이 촘촘하게 엮여있어 낱낱이 풀어내기도 쉽지가 않다. 실은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더 그렇다. (다음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