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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Oct 31. 2023

풋내와 비린내와 누린내

랜선미식회 2시즌

출처 : 핀터레스트


사람은 고기파와 생선파, 풀파로 나눌 수 있다


연주

요리 학교를 다니던 지난 시절에 알게 된 것이 있어요. 사람은 고기파와 생선파로 나눌 수 있다는 것? 둘 중에 하나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미식이라면 고기지!'와 '미식이라면 생선이지!' 파로 나뉜다고 할까요? 남의 돈으로 뭐든 먹을 수 있다면 뭘 먹겠어요? 할 때 스테이크나 삼겹살을 먹으러 가겠다는 사람과 횟집으로 가겠다는 사람이 구분된다고 할까요? 


저는 부산에서 자랐지만 생선보다는 고기파거든요. 노량진 수산시장에 저를 데려다놓으면, 뭐 시장의 식재료를 구경하는 건 정말 좋아하니까 기분이 좋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되게 흥분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마장 축산물 시장에 촬영용 특수부위를 구입하러 갔을 때는 굉장히 신나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나는 빼도박도 못하는 고기파구나. 


이렇게 사람마다 좀 꺼리는 음식과 좋아하는 음식이 있는데, 그런 음식에는 각각 특유의 냄새가 있죠. 생선은 비린내, 고기는 누린내. 각각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냄새를 꺼리지 않고, 각각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 냄새에 민감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누린내도 비린내도 크게 꺼리지 않는데, 굉장히 민감한 냄새가 하나 있어요.


바로 풋내예요! 날채소에서 나는 풀냄새. 어릴 때보다는 둔감해졌지만 몸이 안좋거나 하면 더욱 민감해져서 저는 샐러드나 질긴 생채소를 잘 못 먹고, 익지 않은 김치를 먹으면 속이 안 좋아져요. 모두가 사랑하는 김장날의 김치 소를 돌돌 만 배추 줄기는 저를 정말 괴롭게 해요. 저도 맛있게 먹고 싶거든요! 그런데 풋내가 정말 빈속을 뒤집히게 해요... 저의 트리거는 풋내인 것이죠. 은성은 고기파인가요, 생선파인가요? 그리고 저 셋 중에 가장 꺼리는 냄새는 무엇인가요?


출처 : 핀터레스트


은성

흥미롭다! 고기파, 생선파를 나누는 기준이요! 저는 확실히 고기파네요. 둘다 무척 좋아하지만, 죽기 전에 하나만 먹는다면 코리안 바베큐 파티를 할 건데요. 소갈비살이나 오겹살을 숯불에 구워 먹고 싶은데, 그건 ‘불’ 때문인 듯 해요. 불을 피우고 주위가 따뜻해지고 숯불향이 나면 너무나 릴렉스 되고 흥이 돋거든요? 제 가족은 주말마다 생선회를 먹으며 “일주일 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어.” 라고 하는데, 그는 생선파였네요! 


저는 싱싱한 해산물을 먹으며 행복할 때마다 왜 우리 부모는 부산 사람이 아닌가! 포효하곤 했는데요. 정작 부산 사람이 수산시장의 ‘향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프랑스 마르세유 출신이 부야베스 끓이는 냄새에 괴롭다면! 그것도 참 난감하겠구나 싶은, 


어떤 특정한 것으로 유명하지는 않은 서울이 고향인 사람의 걱정입니다.


냄새라….저는 평소에 누린내, 비린내, 풋내 라는 단어를 떠올리지조차 않고 식사를 하곤 해서요. 이 단어들을 정말 오랜만에 발음해 봅니다. 장을 볼 때도 이게 누린내, 비린내, 풋내가 날지 걱정하지 않고 막 삽니다. 돌이켜 보니 그 덕에 프랑스 식생활을 신나게 즐긴 것도 같아요. 샤퀴트리의 찐한 고기향이나 생채소를 아주 많이 먹는 프랑스 가정식을 그냥 ‘오, 맛나네…’ 하고만 나…..조금 덜 즐기는 거라면, 


멧돼지 파테.


그건 누가 옆에서 먹기만 해도 진저리를 치는 한국 친구가 떠올라요. 언니, 멧돼지 파테 드실 수 있나요, 묻길래 “배고프면 먹지.” 대답했더니, 친구가 코를 감싸쥐며 파트너를 째려 보더라고요. “저기 멀리 가서 먹으면 안 되겠습니까.” 하고요. 그러고 보니!


프랑스 닭은 향이 매우 진하거든요? 그걸 먹다가 한국에서 닭고기를 먹으면 ‘맹맛’ ‘무맛’으로 느껴져요. 원래 닭은 냄새가 없어서 빈 캔버스 같은 거라는 글을 음식 에세이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프랑스 닭은 색이 칠해진 캔버스예요. 그 닭냄새가 힘들어서 프랑스에선 닭 먹기 괴롭다는 한국 친구들도 봤는데…저는 그저 쩝쩝박사일 뿐…다 맛있어…음식 냄새 다 좋아….비려서 좋아 고기향 좋아 풋풋해서 좋아….



연주

와, 프랑스 닭은 색이 칠해진 캔버스라는 말이 너무 좋아요. 한참 드로잉에 빠져 있을 때 스케치북을 알아봤는데, 블랙 스케치북에 오일 파스텔로 스케치한 그림이 너무 예뻐서 잠깐 고민했던 기억이 나요. 우리나라 영계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음식이 되는 거겠죠. 토종닭이랑 비슷한 느낌일까요? 하긴 공장식 축산이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지는 미국에서도 닭고기는 무맛이다, 유럽에 가면 그렇지 않다는 말이 자주 들려오는 걸 보면 역시 그 생산 과정 자체의 차이일 것 같으네요. 


저는 풋내에 약하다는 걸 정확하게 인지하기 전까지는 뭐든 남 앞에서는 참고 먹는 편이었는데, 한 번 인지하고 나니까 뱃속에서부터 빠르게 거부하는 느낌이예요. 특히 풋내+강한 양념이 되면? 뭐, 그래도 밥처럼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을 곁들이면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않게 적당히 먹을 수는 있어요. 


그런데 제 주변에는 특히 어떤 ‘냄새’에 민감한 친구들이 있거든요. 제 배우자는 똑같이 바닷가에서 자랐는데, 이 사람은 매우 신선한 해산물만 먹고 자라서 비린내에 매우 예민해요. 생선회도 좋아하고 잘 구운 생선구이도 좋아하지만, 특히 경상도식 생선조림이나 오징어순대(강원도 출신이면서!)처럼 수분이 가미된 방식으로 조리한 해산물은 손도 못대요! 근처에도 못가요! 그걸 먹은 사람과는 컵도 공유하지 못해요! 


상대적으로 비린내에 둔감한 저는 이 사람 덕분에 ‘어떤 조리 방식이 해산물의 비린내를 극대화시키는가’를 경험적으로 터득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제 어떤 특정한 음식을 먼저 맛본 다음 같이 먹게 되었을 때 말해줄 수 있죠. ‘이거 자기 못 먹어’ 하고요. 


또 다른 친구는 염소 치즈를 내놨더니 근처에도 못 오더라고요. 양 냄새가 너무 싫대요…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지? 싶었는데 그 말을 듣고 찬찬히 냄새를 음미(?)해보니 과연 살짝 누린내가 나긴 하더라고요. 정작 저는 ‘이 냄새가 맛에 일조하는 거 아닌가?’ 싶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 그 친구를 초대할 때는 염소 치즈나 양고기는 피하고 있죠. 어떤 의미로 푸드 에디터에게 꼭 필요한 자질을 주변 사람이 선물해준 것 같다고 생각해요. 대체로 음식 냄새에 덤덤한 사람에게 ‘이렇게 민감한 사람도 있다’라는 경험을 선사한다고 할까요? 


출처 : 핀터레스트


냄새에 대한 호불호는 의지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은성

아마 제가 주로 정육점이나 주말에 열리는 시장에서 고기를 사서 더 향이 진한 고기를 접했을 거예요.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된 고기는 확실히 향과 맛이 약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시장에 가서 직접 농장주에게 고기를 사는 것을 즐기는 편이에요. 농장주와 소나 닭을 키우는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요. 


음식들의 어떤 냄새에 민감한 이야기 재밌어요. 프랑스에는 비린내에 약한 사람이 무척 많은데요. 제 친구는 횟집 근처만 가도 괴로워해요. 보통 가족이 해산물이나 생선을 안 좋아하면 온가족이 그런 경우가 많고요. 떡볶이에 오뎅을 넣는 건 오뎅 자체의 맛 외에도, 국물맛을 만드는 거잖아요? 싸고 얇은 시장 오뎅에 밴 소스 맛이 떡볶이 소스의 찐이다, 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오뎅 넣은 떡볶이만 끓여도 문 밖에서부터 집에 오길 괴로워하는 프랑스인 파트너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재밌죠. 냄새에 대한 호불호는 의지로 어쩔 수가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궁금해요. 연주는 꼬르동 블루에서 공부할 정도로 요리를 좋아하고 오래했잖아요? 별별 냄새가 다 났을 텐데, 어떻게 …..힘들지 않았나요? 


요리란 게…..민감한 사람이 잘 한다는 확신이 있어요. 민감하면, 냄새들에 더 예민할 텐데…요리인은 그 재료들을 모두 다루어야 하고…



예민한 사람의 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어요


연주

아 오뎅! 제 배우자는 어묵탕을 좋아하는데, 반드시 저렴한 어묵을 사서 끓이기를 고집해요. 고급일수록, 말하자면 ‘어육 함량이 높아질수록’ 어묵탕을 끓이면 비려서 본인이 먹지 못하게 된대요. 저는 솔직히 이쯤되면 재미있어서 테스트를 해보고 싶어져요. 이 정도는 먹을 수 있어? 이건 어때? 요건 괜찮나? 


저는 솔직히 풋내 말고는 크게 가리지 않거든요? 비린내도 ‘난다’는건 인식하지만 싫지 않고, 누린내는 솔직히 강할수록 좋아하는 편이예요. 풋내는… 좀 까다로운데, 프랑스 요리는 재료를 깔끔하게 손질해서 적합한 양념을 하는 것이 포인트인데, 그렇게 알맞게 조리하기만 하면 솔직히 풋내가 나지 않아요. 그래서 예민한 줄도 몰랐어요! 고수를 못 먹긴 했지만 학교에서 주는 대로 먹었더니 이제는 고수 없이 못 살고요. 극도로 발달한 프랑스 요리는 개인의 호불호를 어느 정도 뛰어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역시 예민한 사람의 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건 재미있어요. 그래서 자주 물어보죠! 구운 파인애플은 좋아하나요? 건포도는 좋아하나요? 오이는? 싫어한다면 왜 싫은가요? 이렇게 조리해도 싫은가요? …이렇게 물어보는 저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가끔은 본인의 호불호를 아주 섬세하게 설명하는 걸 즐기는 사람도 만나곤 해요. 그럼 진짜 쿵짝이 잘 맞는 거죠! 왜 싫은지, 왜 좋은지를 생각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더 친해진다고 생각해요. 


프랑스에서는 손님 초대가 굉장히 자연스럽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각자의 음식 성향과 호불호를 더 잘 파악하고 있을 것 같고, 그것은 제가 생각하는 누군가와 친해지는 방식과 맞닿아 있을 거라고 혼자 생각해요. 


출처 : 핀터레스트


은성

손님 초대라고 하니….상대의 취향 뿐 아니라 못 먹는 걸 묻는 게 일상적이고…그러네요. 나는 뭘 먹고 뭘 못 먹어, 하는 대화를 아주 많이 해요. 중국, 베트남, 우크라이나, 아르헨티나 등에서 온 이민자 친구들끼리 모여서 “너는 프랑스 치즈 먹어? 그 냄새 괜찮아?” 이런 대화도 많이 했어요. 저는 치즈, 파테, 푸아그라 등을 모두 먹어서….너는 프랑스인이다! 란 소리를 듣고는 했어요 하하하. 한번은 잡채를 해가는데, 작은 난리가 난 적이 있어요. 글루텐을 못 먹는 분이 있다고 했는데 아니! 간장은 글루텐이더라고요! 그때 등허리에 식은땀이 흐른 기억이 나요. 그래도 한식은 재료를 넣고 빼는 게 자유로운지라 뭐든 멤버 구성에 맞춰 조리할 수 있어서 재밌었습니다. 예컨대 잡채, 비빔밥 같은 건 비건 푸드로 충분히 맛있을 수 있고요. 


저도 사람들이 뭘 못 먹고 힘들어하는지 듣는 걸 아주 좋아해요. 비린내를 괴로워하는 친구를 초대하면서 그 전에 생선 요리를 하지 않고 집을 청정하게 만드는 것도 우정의 프로세스고요. 하지만 큰 생선이 그려진 횟집 앞을 지나며 “알리스! 다음번 네 생일파티 장소 발견했어!” 하고 그녀가 기대에 가득차서 식당으로 눈을 돌리고 으윽, 하는 표정을 짓는 찰나를 두근거리며 기대하죠. 


사랑은, 우정은

상대에게 내가 좋아하는 걸 마구 퍼주는 게 아니라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묻고 그것을 주는 것, 

나아가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주지 않거나,

혹은

상대가 없을 때 혼자 몰래 하고 먹고 즐기고 나서 좋은 기분이 되어

상대와 더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아닐까요?


모두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작가소개
프랑스 알비의 은성 작가와 한국 서울의 연주 작가, 이들의 공통점은 글쓰기로 최대 출력의 도파민을 얻는다는 것! 쓰는 사람만큼 보는 사람도 즐거운, 도파민 힐링을 선사하는 작가 듀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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