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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Oct 26. 2023

당신의 아침식사는 기능성인가요, 기분내기인가요?

랜선미식회 2시즌


연주

은성, 오늘 아침에는 무엇을 먹었어요? 저는 요새 환절기 때문인지 과로 때문인지 체력이 떨어져서, 스피닝을 가기 전에 동력을 얻기 위해 아주 살살 녹고 달콤하도록 구운 군고구마 작은 것을 하나 꺼내서 먹었어요. 차갑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군고구마! 물론 맛있었지만 그보다도 먹은 목적은 '운동을 무사히 수행할 당분을 얻는다' 였거든요. 그래서 생각이 났어요. 


저는 온앤오프가 너무 뚜렷한 사람인 거예요. 일하는 주중은 철저히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스케줄로 생활하고, 일하지 않는 주말(가끔 일을 하기도 하니까)이면 정말 한없이 늘어져서 아무것도 안해요. 애플워치가 당황할 정도로요. 저기... 님? 좀 일어나시죠? 하고 알람이 오면 그냥 워치를 풀어버려요. 난 오늘 오프다…


이런 쉬는 날의 가장 큰 특징은 아침식사를 먹는다는 거예요. 물론 오늘 군고구마를 먹긴 했지만 그건 '에너지 투입'이지 아침식사인 것 같지 않아요. 안 먹어도 운동할 수 있는 날이면 그냥 안 먹고 넘어가거든요. 철저히 필요해서 먹는 거죠. 


하지만 주말의 아침식사는 달라요! 이건 저를 기분 좋게 만드는 요소가 되거든요. 천천히 구운 폭신한 프렌치토스트, 오소독스하게 달걀프라이와 베이컨에 토스트, 시장 앞의 수제 왕만두, 캠핑장에서 끓인 오뚜기 크림수프와 그릴 치즈 샌드위치. 주말의 아침식사는 메뉴를 고르는 것도 두근거리고, 먹는 것 자체가 기대되고 행복해져요. 주중엔 그 시간에 배가 고프지도 않는데 말이죠. 저에게 아침식사란 여유가 있는 날에만 즐기는 특별한 식사인 것 같아요. 은성을 기분 좋게 만드는 아침식사는 무엇인가요? 


은성

두꺼운 식빵을 노릇하게 구워서 이즈니 버터를 한 겹, 꿀을 한 겹 바른 것을 한 입 베어 물고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제 이상적인 아침식사는 이것입니다. 저는 빵순이가 아닌데, 이 빵만은 정말 좋아해요. 꿀과 버터와 커피는 환상의 조화라서, 온갖 걱정으로 잠이 안 온다 싶으면 이 만트라를 외우며 잠듭니다. <꿀 버터 빵 꿀 버터 빵 내일 아침에 꿀 버터 빵 내일 일정은 걱정 안해 나는 그저 내일 꿀 버터 빵 먹으러 잠든다> 빙빙빙 중얼거리다 보면, 호랑이 여러 마리가 빙빙빙 돌다가 녹아서 버터가 되어 꼬마 삼보가 그 호랑이 버터로 팬케이크를 구워 먹었다는 동화가 떠오르고, 잠이 듭니다.


꿀버터 토스트의 참맛은 오 년 전쯤 알게 되었어요. 오리지널은 바게트, 꿀, 버터인데요. 프랑스인인 파트너가 아침에 눈뜨자마자 이걸 만들기 시작하는 걸 보고요. 


기상-> 냉장고에서 버터를 꺼내 상온에 둔다. 찬 기운을 없애기, 나이프로 긁기 좋을 정도로 말랑하게 하기를 진행시킴-> 바게트를 길게 한 조각 잘라 토스터에 끼운다-> 노릇한 갈색으로 구워진 바게트 조각을 꺼낸 후 바로 한 조각을 굽기 시작한다-> 바게트 위에 버터를 한 겹 꿀을 한 겹 발라 먹는다-> 한 조각을 다 먹을 즈음 다음 조각이 토스터에서 뾱! 하고 튀어오른다의 루틴이요. 


이건 에너지 투입이라기보다는 행복한 아침식사에 가까워요. 프랑스에 처음 갔을 때는 주말에 갓 구운 바게트를 사러 다리를 건너 빵집에 다녀오기도 했거든요. 빵 한 조각을 최고로 맛있게 먹기 위해 거의 40분을 쓰는 사치니까. 산책을 했으니 식욕이 돌아서 당연히 최고로 맛있게 느껴지죠. 그러고보면 연주의 군고구마처럼 아침식사는 확실히 달고 부드러운 게 좋은 것 같아요. 



연주

꿀버터 토스트는 굉장히 맛있을 것 같아요! 저도 주중에는 주말에 캠핑에 가면 아침식사로 무엇을 해먹을 것인가, 달콤한 빵을 먹을까 베이컨에 땅콩버터 토스트를 곁들일까 같은 생각만 계속 하거든요. 약간 현실도피처럼 지금 눈앞에 놓인 일이 많고 막막할수록 ‘아 주말에 캠핑 가면 토스트에 땅콩버터 이따만큼 발라가지고 바나나 얹어서 먹을거야’ 라고 생각하는 거죠. 


근데 말하다보니 은성의 아침식사 만트라와는 무언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일은 일정이 걱정되는 날이지만, 그걸 걱정하다보면 잠을 자기 어려우니까 아침에 맛있는 꿀버터 토스트를 먹을 생각을 하면서 잠에 들겠다, 라는 것이잖아요, 그쵸. 저는 다음 날 긴장할만한 일정이 있는 날에는 아침식사를 잘 넣지 않는 것 같아요.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라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요? 맛있는 아침식사는 너무나 기분 좋은 것인데 그런 날 아침에 넣고 싶지 않달가요. 긴장되는 일이 있으면 그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사소한 거라도 즐기는 일을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이다, 그럼 내가 맛있는 프렌치토스트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렇게 통통하게 달걀물을 머금도록 만들어서 구우려면 얼마나 오래 걸리는데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면 아깝잖아,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주말이나 휴가인 날에만 나에게 주는 포상? 그 외의 날은 그저 움직일 동력을 얻기 위한 프로틴바나 쉐이크, 바나나 같은 걸 먹는 거랑 다를바 없는 음식물을 섭취하곤 하네요. 음, 그냥 적당히 긴장하고 적당히 중간중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좀 많이 들어요. 


근데 뭐, 어쩌겠어요. 어차피 주중에 몰아서 일하는 거, 주말 되고 휴가 가면 고삐 풀린 듯이 만들고 먹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휴가지의 조식 뷔페는 진짜 좋아해요! 아침잠을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할만큼! ‘아침식사’에 어울리는 온갖 단것과 자극적인 짠것과 현지의 독특한 아침메뉴 등이 뒤섞여있잖아요. 아, 조식 뷔페에 가서 라떼 두 잔에 케첩 뿌린 스크램블드 에그 두 접시랑 뺑오레쟁을 세 개 정도 먹고 싶다… 아침 일찍 좋아하는 음식으로 배를 가득 채우면서 오늘은 휴가라는 사실을 만끽하고 싶다… 


은성

저도 비슷해요. 꿀버터 토스트! 하고 일어나서는, 오늘 해야 할 일에 대한 초조함에 추격당하면…그냥 대충 뜨아나 아아를 잔뜩 채운 텀블러를 들고 출근길에 나서게 돼요. 


저에게 꿀버터 토스트 로망은, 불안에 대처하는 느긋함의 상징이랄까요. 실제로는 자주 안 먹습니다. 저것을 같이 느긋하게 먹어줄 사람이 없으면 자꾸만 생략하게 되는.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라는 기분 때문에 아침식사를 에너지 섭취 기능만 고려해 빠르게 때우는 거죠. 검은콩 두유 한 팩 쪽 빨면서, 오늘 할 일 적기 시작하는 아침. 아침이 그저 기능의 시간이 된다는 건, 한국에선 당연하고 프랑스에선 안 당연해져요. 지금의 저에게는요. 


확실히 프랑스에서는 덜 쫓깁니다. 아침을 먹지 않아도 소파에 좀 늘어져서 천천히 잠을 깨운달까요. 창밖으로 새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한국과 시차가 다르기 때문에 노동경찰이 덜 쫒아온달까요, 하하. 

프렌치 토스트 정말 맛있죠. 아침에 프렌치 토스트나 팬케이크를 굽는 건 휴가 때에만 좀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빵을 계란물에 충분히 담가야 맛있어지고, 그 뜨겁고 부드러운 것은 호호 불어 천천히 음미해야 하니까요. 그런 음미의 아침은 집을 떠났을 때 가능해지긴 해요.


우리는 느긋하게 아침을 먹으러 여행과 캠핑을 가는 것이죠.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가면, 아침일찍 눈이 떠져서 산책을 나가 그 동네 빵집을 알아보는 걸 좋아해요. 그러고 보니 캐나다 퀘백에 갔을 때 이 동네는 아침에 무얼 먹나, 하고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물어보니 온갖 종류의 베이글을 주로 먹는다는 거예요. 종아리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나가 호밀베이글과 참깨베이글을 사다가 크림치즈를 발라 먹었던 재미난 기억. 태국에서 아침에 그 더위에 노상에서 뜨거운 쌀국수를 먹던 기억. 새벽녘 공항에서 발권을 마치고 설레고 가뿐한 마음으로 크로아상, 뺑오레장, 뺑오쇼콜라와 카페라테를 먹던 기억…


연주

맞아요. 느긋하게 아침을 먹으려고 떠나는 것 같아요. 집에서도 쉬는 날이면 아침을 먹지만, 그리고 물론 주중에 비해서는 즐겁지만, 두근거림과 특별한 기분은 아주 조금 덜하죠. 말하자면 집에서는 밀린 잠보충이 시급하다면 포기할 수 있는 정도? 밥은 무슨 밥이야, 잠은 올 때 자야 해, 이게 보약이다, 처럼요. 


하지만 놀러가서는 달라요. 아침을 챙겨 먹으면 하루가 길어지죠. 졸리면 낮잠을 자면 됩니다. 정 피곤하면 밤잠이라도 빨리 자게 될 거고요. 주중의 일하는 날과 달리 여행과 캠핑에서는 햇볕을 마음껏 쬐고 비타민D를 풀보충하는 하루를 보내니까요. 그러니까 일찍 일어날수록 이득이예요. 주변을 한바퀴 뛰어보고, 빵을 사고. 혹은 캠핑카에서 대충 고양이세수를 하고 내려와서 캠핑 전용 토스터를 꺼내고, 고작 두어 달에 한두 번 사용하면서 역시 사길 잘했어, 하고 뿌듯해하고. 


말하면 말할수록 생각보다 아침식사라는 끼니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그렇다고 주중에 매일매일 서운하지는 않거든요? 그때는 그때답게 일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딱딱 하고 좋아 오늘도 잘 처리했어! (뭘?) 하고 뿌듯해하는데, 하지만 역시 아침 바람을 맞으면서 드립백으로 내린 커피를 마시며 이게 사는 거지, 하는 순간이 우리의 수명을 늘려주는 거다 싶네요. ‘아침식사의 나라’에 간다면 그곳은 매일이 휴가여야 성립 가능한 나라겠어요. 내가 이렇게 놀고잽이인줄 모르고 무슨 생각으로 일을 이렇게 벌였을까요? 현타! 


갑자기 조금 우울해지기 시작했으므로, 이번 주말에 먹을 아침 식사 메뉴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어요. 아침은 이제 제법 추워지기 시작했으니까 치즈랑 감자를 넣은 크림 수프! 그리고 가능하면 늙은호박을 박박 갈아서 샛노랗고 달콤한 호박전! …안 어울리려나? 내가 먹고 싶은 조합이니까 상관없겠죠? 미래의 아침식사 계획을 짜는 건 이번 주말도 이상적인 아침식사로 그 포문을 열고야 말겠다, 그래서 완벽하게 스트레스를 풀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노는 날을 보내겠다, 그런 놀고잽이의 다짐입니다.


은성

연주는 요리를 정말 좋아하네요. 늙은 호박을 갈아 아침 호박전이라니! 전 누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을 생각만 하는데요.


지금의 저는 지금 한국에 워킹 홀리데이를 왔다는 생각으로 어머니 집에 살고 있으므로, 아침을 거하게 요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기분이 나기 어려워요. 아침식사는 모름지기 <기분 내기>니까요. 

그래도 완벽한 가을날씨가 아까워져서 요즘은 아침에 이 유튜브를 보면서 아침 기분을 좀 내보려 하고 있는데요. (https://www.youtube.com/watch?v=xpvjPsme8_k&t=2706s) 디제잉을 하면서 팬케이크를 굽고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 영상이에요. 


이 영상의 칠한 바이브를 빌려 지난밤에 만들어둔 사과 콩포트를 토스트 위에 올려 먹은 엊그제 아침에는 <으아, 너무 행복하다>를 외치게 되었어요. 참, 저는 일 모드의 주중에도 꼭 낭만을 넣어주어야만 굴러가는 인간이거든요. 주말로 모든 낭만을 몰빵하면 주중에 <인간, 왜 …사는가…허무…> 모드가 되고 맙니다. 연주는 주말 캠핑으로 주중 노 아침의 보상을 준다면, 저는 매일 매일 보상을 넣어줘야 하는, 그러한 우리의 다름이 있네요! 


그러고보니, 지난 늦봄 서울에 와서 저는 아침에 무려 아녜스 바르다 영화를 틀고 드립커피를 내리고 토스트를 구워 잼을 바르는 아침을 즐겼던 일이 있군요! 전생처럼 기억났다! 글을 쓰면서, <아침의 로망이 저녁의 허무를 예방하는 나>를 기억해 냈어요!


오늘 퇴근길에는 질 좋은 버터를 사 갈 겁니다. 어머니 집에는 마가린은 있지만 버터는 없거든요. 내일 아침에는 흔들흔들하면서, 꿀버터 토스트를 먹을랍니다. 그러고보니, 저는 지금도 여행 중이니까요. 매일 여행의 아침을 먹을 거예요! 


작가소개
프랑스 알비의 은성 작가와 한국 서울의 연주 작가, 이들의 공통점은 글쓰기로 최대 출력의 도파민을 얻는다는 것! 쓰는 사람만큼 보는 사람도 즐거운, 도파민 힐링을 선사하는 작가 듀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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