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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Oct 17. 2023

프리랜서도 회식이 필요하다

랜선미식회 2시즌

사진 출처: pinterest


프리랜서가 되고 잃은 것은, 바로 회식.


연주

은성, 돌이켜보니 올해가 제가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되는 해였어요. 새삼 어떻게 10년이나 살아남았지? 싶은 생각이 들긴 하는데, 뭐 그건 앞으로도 대체 내가 어떻게 살아남고 있지? 같은 생각으로 이어지겠죠. 


프리랜서 10년차가 되었다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어요.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는데, 수퍼 대문자 I인 저로서는 혼자 사무실에서 일하는 이 환경이 매우 만족스러워서 잃은 것 중에 아쉬운 것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아주 가끔 '그러고보니..' 하는 잃은 것이 있는데, 바로 회식이예요. 


혼자 일하기 시작하고 수 년이 지났을 때, 갑자기 깨닫고 보니 프리랜서가 된 이후로는 삼겹살을 밖에서 구워먹은 적이 거의 없는 거예요. 회식을 하지 않으니까요! 프리랜서라도 사람마다 일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저는 회식을 하거나 회식이 있더라도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종류의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퇴사하는 순간 회식에서 해방된 것이죠. 


회식을 좋아하는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것 같아요. 강제로 업무 이외의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좋아하지 않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중이라면, 프로젝트가 힘들더라도, 중간중간 혹은 마무리로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며 허심탄회하게 힘들었던 것도 좋았던 것도 털어놓고 의기투합하게 되는 분위기는 좋은 것 같아요. 아마 강제 회식을 한지 너무 오래되어서 아주 좋았던 잠깐의 순간만 선택적으로 기억하기 때문이겠죠? 


우리가 랜선미식회를 하고 글파민으로 함께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한 달에 한 번은 모여 맛있는 것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이것이 말하자면 프리랜서의 점심 회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회식에 대해 그리워했던 모든 것이 여기 들어있지 않나? 어쩌면 서로 다른 일을 하는 프리랜서끼리 가끔 회식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회포를 푸는 자리를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시작한다면 역시 오소독스하게 삼겹살 회식을 하고 싶네요. 그것도 회식이라는 이름의 자리가 되면 다들 싫어하려나요? 


사진: 글파민의 지난 회식


우리는 매달 한 번 특별한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각자 프리랜서로 살면서 느낀 일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데요, 그게 제가 정말 좋아하는 회식을 만든 거죠!

은성

글파민 회식에 대해 말하려니 즐겁고 흥분됩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회식을 만든 거죠! 뿌듯합니다. 우리는 매달 한번 특별한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각자 프리랜서로 살면서 느낀 일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는데요. 그 시간이 저에겐 아주 큰 동력이 됐다는 것을 깨달아요. 일에 대한 코칭을 받고, 일 회고록을 쓰고, 일에 대한 커피챗도 해봤네요. 프리랜서에게 어떤 일은 ‘나비효과’를 일으키잖아요? 제게는 저희의 프리랜서 회식이 그랬네요. (그것 하나만의 결과는 아니지만!) 


회식의 의미가 뭘까요? 사실 직장생활을 할 때 회식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던 기억은 아쉽게도 없는 것 같아요 (지난 세월의 제 상사분들 죄송합니다)우리 팀과 제 일에 대한 제 진짜 속얘기를 투명하게 할 수가 없었어요! 상사의 이야기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참치회나 소고기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먹을까를 고심했던 기억, 집에 오는 길에 홀로 벤치에서 캔맥주를 따며 릴렉스하던 기억 뿐입니다. 하지만 모여서 맛있는 걸 먹으러 간다는 것 자체는 좋았기 때문에, 회식에서 제일 많이 먹고 마시고 떠들긴 했어요! 


돌아보니, 저는 프리랜서 체질 같아요. 일이든 회식이든 제 자유와 자율성이 가장 중요해요! 내 회식에서 내 메뉴이고 내 이야기 주제여야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아쉽게도 회식 비용도 다 내가 내야 하지만…그렇습니다.


참, 저는 뭔가 굽는 행위를 엄청 좋아해요. 삼겹살 회식이라? 두손 들고 찬성이죠! 



일과 일상의 밸런스를 잘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회식은 그 균형을 깨는 일일까요? 맞추는 일일까요?

연주

그러네요. 생각해보면 제가 회식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프리랜서가 하는 일 중에서도 나 자신의 코어에 가까운 일을 할 때, 그 일 자체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 일이 나에게 갖는 의미라던가? 이 일에서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볼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이 일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들과’ 깊게 나누고 싶다, 맛있는 걸 먹으면서 살짝 무장해제된 상태로 이 일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런 감각인 것 같아요. 


어쩌면 한없이 ‘일사랑’인 상태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은성이 한 말처럼 저도 제 자유와 자율성이 확보된 상태의 일에 대해서만 그런 의욕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냥 성실하게 잘 하기만 하면 되는 일? 그런 일이야 열심히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를 갈아 넣어서 개선점을 논하고 열정적으로 파고들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어차피 그래봤자 클라이언트는 변하지 않는다는 경험을 너무 많이 해서일까요? 감각이 닳아버렸구만, 싶고요. 


일과 일상의 밸런스를 잘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회식은 그 균형을 깨는 일인 걸까요? 맞추는 일일까요? 저도 지금은 회사라면 회식 시간도 근무 시간으로 쳐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음,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하는 프리랜서끼리, 그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회식이 가장 이상적인 것 같아요. 아니, 그러면 그냥 만나서 노는 거랑 뭐가 다르지! 근데 회식이라고 노는 것처럼 즐겁지 않으라는 법은 없잖아요? 우리한테는 일 이야기가 가장 즐거울 수도 있지! 


회사를 다닐 때 학습한 탓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뭐든지 쓸모없는 일은 없지 않나 싶어요. 그러니까 회식이라는,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일에 대한 회포를 푸는 시간’이 다시 말끔한 기분으로 일에 복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인게 아닐까요? 맛있는 음식이라는 건 그런 의미에서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법카’로 평소보다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그리고 정말 그렇게 허심탄회할 수 있는 회식은 회사에서는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면 우리야말로 진정하게 긍정적인 의미에서 회식을 즐길 수 있는(법카 제외) 상태이기는 하겠네요! 점심의 떡볶이 뷔페에서 소주 없는 곱창까지, 다양한 메뉴를 섭렵하면서 잔뜩 풀어져서 신나게 다음 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 


근데 왜 뭔가 아쉽죠. 역시 저녁에 ‘회식다운 메뉴’를 먹고 해가 진 후에 집에 터덜터덜 들어오는, 그날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고 마무리하는 과정까지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이상적인 회식 메뉴라는 것도 있는 걸까요? 



내가 바라는 프리랜서 회식이란 뭘까. 일단 한달간의 노고를 축하하고 싶어요. 내가 한 프로젝트를 마음껏 축하하기!


은성

회식이 팀원들과의 더 긴밀한 소통, 단합, 앞으로의 프로젝트에 대한 대화 등을 목적으로 한다면, 프리랜서는 1인 회식을 해야 하는 게 맞는 거죠? 하하. 


연주 말대로 어떤 프로젝트가 나에게 가지는 의미에 대해 자기 자신과의 깊은 대화를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해요. 그리고 그런 대화는 맛있는 음식, 맛있는 음료를 두고 ‘무장해제’되면 더 잘 나오고요! 글이 아니라 말의 형태로 할 때 더 유연하고 풍요롭게 나온다는 점도 중요하고요!


저는 <혼자 회의>라는 이름의 책을 읽고 ‘좋아하는 장소에 노트와 펜을 들고 가서 자기 자신과 일에 대해 깊은 대화=혼자 회의를 하라’는 메세지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그 책을 십여년 전에 읽은 이후, 그렇게 혼자 해 본 적이 없어요.


 왜냐? 일을 마친다-> 피곤하다-> 혼자 카페나 공원에 나가고 싶지는 않다-> 다 귀찮고 쨍한 맥주 한잔으로 스트레스를 씻어내고 싶다-> 혼자 파자마 차림으로 맥주를 마신다-> 일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 오만잡다한 수다만 떨고 싶다, 요렇게 되거든요! 


그래서 이 프리랜서 회식도 최소2인 이상, 그것도 코드가 맞는 사람과 하고 싶게 되는 거예요. 모르는 프리랜서들과 다같이 만난다? 제겐 그것도 ‘일’이라고 느껴지기에…회식이란 이름으로 하기는 어렵더라고요. 


‘내 자유나 재미와 관계없이 나의 테크닉과 성실함으로 해내는 일’이 프리랜서를 먹여살려주죠. 그러한 종류의 일은 ‘나는 프리랜서 로봇’이란 마음으로 해내는 것 같아요, 그쵸? 


하지만 나의 감정을 직면하는 에세이를 써야 할 때는, 그 로봇으로서의 일로 도피하기도 합니다. 감정없이 할 수 있는 테크니컬 라이팅이 너무 재밌게 느껴지더라고요! 균형이 중요하구나, 생각을 하게 됐더랬죠. 


회식시간=근무시간, 아닌가요? 아무리 흥미로워도 일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글쓰기, 글쓰기 코칭, 각종 워크숍 모두 너무 재밌으니까 난 안 쉴래’ 하니까 테라피스트인 친구가 몇번이고 묻더라고요. 


손에서 모든 것을 놓고 쉬는 시간이 필요해요. 즐거워도 일은 일입니다.” 라고요. 


저도 일사랑이 깊은 사람이고, 일사랑이 얕다면 ……절대 프리랜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도 직업인 버튼을 완전히 끄고, 온전한 내가 되는 시간이 제겐 필수더라고요. 이건 제게 특히 강한 성향 같기는 해요. 


아무튼, 회식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내가 바라는 프리랜서 회식이란 뭘까. 일단 한달간의 노고를 축하하고 싶어요. 내가 한 프로젝트를 마음껏 축하하기! 조직 안에서의 1:1 미팅이나 상사와의 커피타임, 인센티브, 상여금 등을 대신하는 프리랜서들의 여러가지 활동을 써보고 싶어져요. 일에 쪼갗기다 보면 이런 것을 다 생략하고 매일 모니터만 마주하고 있게 되는 게 프리랜서이므로!


이야기가 갑자기 ‘축하’로 갔네요 하하!


사진: (연주) 지난 한강 피크닉. 아침부터 크림치즈 참치 샌드위치를 싸고 채소 스틱을 만들어 한나절의 휴식을 즐겼다.


연주

엥? 헉? 아니, 갑자기 ‘축하’ 이야기가 나온 것이 아니라, 그게 회식의 긍정적인 본질인게 맞는 것 같아요! 저 단어를 보는 순간 ‘아, 나 우쭈쭈 받고 싶었구나!’하는 깨달음이 오네요. 두루뭉술하게 이 일에서 다음 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프로젝트를 끝내면 그걸 충분히 축하하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해주고, 한 단계 발전한 상태로 다음 일을 시작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하, 나란 사람은 몇 살까지 둥기둥기가 필요한 것인지. 회사의 회식이 의무로 느껴지는 것도 결국 거기서도 감정 노동을 해야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냥 정말 순수하게 다들 수고했고, 이런저런 점이 아쉬웠다 하더라도 이런저런 긍정적인 점이 있었고, 우리 팀은 참 잘 해주고 있고, 그런 분위기가 베이스라면 싫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아니, 그래도 싫을 수 있지만. 


그냥 밥 한 끼 먹고 술 한 잔 나누고 형식적으로 마무리하자, 이런 느낌이니까 회식이면 그렇게 삼겹살만 먹었던 것 같기도 해요. 뭐, 제가 회사를 처음 다니던 시절에는 외식 메뉴가 많이 다양하지도 않았지만요. 삼겹살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음식을 입에 넣기 전까지 모두가 집중할 다른 것이 있잖아요. 누가 고기를 구울 것인가, 이 고기는 다 익은 것인가, 된장찌개에는 청양고추를 썰어 넣을 것인가. 그게 아니라 다 조리한 음식이 나오는 곳을 가면 먹기 전까지 멀뚱멀뚱 아무 말이나 주워섬기는 어색한 시간이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런 거라면 일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치는 프리랜서끼리의 ‘회식이라는 이름의 담합’은 삼겹살이 아니어도 되긴 하겠어요. 특히나 항상 먹고 싶은 것이 있는, 아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는 이야기를 주구장창 듣고 살았던 사람이라면? 그렇게 제약이 없어진다면 온갖 메뉴로 회식을 해볼 수 있겠는데요. 한강에서 즉석 라면 하나 끓여서 돗자리 깔고 앉아 회식을 해보는 건 어때요? 그것도 회식 같을지 시험 삼아? 


*사진: (은성)내가 사는 프랑스 소도시에는 아쉽게도 내가 좋아하는 식당이 없다. 그래서 나 스스로 하는 축하 파티나 회식은, 가족에게 특별한 음식 만들어 달라고 하기나 인근 대도시로 베트남 쌀국수 먹으러 가기가 된다. 이민 첫해에는 내 단행본 출간 기념으로 씨푸드 피자를 구워 샴페인, 포트와인을 곁들여 파티를 했다. 가족이 초코 케이크를 구워줘서 프로젝트 종료를 축하한 적도. 


은성

가을날의 한강 돗자리 회식이라니!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겠어요. 내 돈으로 내가 하는 회식이니까, 어디에서 무엇을 먹든 다 내 자유! 이것이 프리랜서의 진미가 아닌가! 


다음 우리 글파민 회식 모토는 <축하>로 합시다. 내가 얼마나 잘했고, 축하받을 만한지 마음껏 이야기하는 것으로요. 전에 프랑스에서 제 단행본이 나왔을 때, 축하파티가 없어서 당황했던 적이 있어요. 작가 동료들과 같이 있지 않으니 발간 파티를 안 한 거죠? 당장 샴페인과 해산물을 준비하라고 파트너에게 요청…하지는 않았고, 제가 종일 뿔이 나 있으니…파트너가 샴페인, 새우, 치즈 등을 사와서 한 상 차려준 적이 기억 나요. 


그러고 보니 이것도 나름의 <회식>이었군요. 


아무튼 그 한상을 받고보니, 


아니, 당장 기분이 좋더라고요? 


작가들도 책 내고 나면 진심으로 축하를 찐하게 할 여력 없이…바로 홍보 일정에 투입되잖아요? 북토크 등 책 홍보를 위한 일, 일, 일….


노노노노….그래선 안돼. 옳지 않아. 그르다. 글러………


일단 축하하고 재미를 좀 봐야 하지 않겠나요?


다 재밌자고 하는 일인데! 


작가소개 
프랑스 알비의 은성 작가와 한국 서울의 연주 작가, 이들의 공통점은 글쓰기로 최대 출력의 도파민을 얻는다는 것! 쓰는 사람만큼 보는 사람도 즐거운, 도파민 힐링을 선사하는 작가 듀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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