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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n 21. 2018

사랑한다는 말대신 따뜻한 빵을 사왔지-2

엄마에게 아침밥 노동의 고단함을 잊게 해 주고 싶었다. 

개화기 사람처럼 마음이 급했다. '서양 아침밥'을 나의 가족에게 알리고 싶었다. 길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말이 많은지 알겠네. 아니, 이 귀한 말씀을 왜 모른단 말이야.


 “엄마, 아침밥은 되게 되게 행복한 거야. 그럴 수도 있는 거였어."

 ‘아침밥’이란 말을 들으면 스트레스부터 받으며 살아왔을 엄마에게, 평화와 고요, 달콤함을 전하고 싶었다.


 “커다란 트레이에 빵이랑 버터, 잼을 미리 담아 둬. 먹을 땐 트레이째 식탁에 올려도 돼. 3분이면 준비가 돼. 밥하는 사람이 따로 없어, 유치원 아이도 스스로 꺼낼 수 있다니까!” 


말을 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내가 진짜로 전하고 싶었던 건, 유럽식 아침의 낭만 같은 게 아니었다. 프랑스 아침의 아름다움 따위가 아니었다. 유럽이든 미국이든 주방에 있는 고정 역할을 여자다. 그래도 아침만큼은 좀 늦게 일어나도 된다고. 아침부터 가스불 앞에 서 있지 않아도 된다고. 지지고 볶고 끓이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 아침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아침밥 노동의 고단한 기억을 좀 잊게 해주고 싶었다. 







마음이 급하면 자꾸만 말이 길어진다.

“접시도 꺼내지마 빵가루는 다 먹고 나서 한번에 쓸어버리고, 컵은 물로 헹궈도 돼. 

샐러드? 먹지마. 먹지마. 먹지마 샐러드. 설거지 생기잖아.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색으로 티폿과 티컵을 사서 선물했다. 엄마는 원두 커피를 자주 마시지 않으니까, 좀 고민하다 중국집에서 자주 마셔 익숙할 자스민 티도 샀다. (실패. 누가 아침에 자스민 티를 마시냐)


그래도 조바심이 나서,  엄마 생일에는 더 비싼 분홍색 도기컵을 샀다. 나는 조바심이 날 때마다 네이버 페이를 자꾸 쌓는다. 뭘 사다 보면 액수만큼 행복이 쌓일 것 같아서, 자꾸 뭘 산다. 

"무슨 컵이 이렇게 비싸?" 

역시나 이래야 우리 엄마지. 엄마 취향에 칸토 머그컵은 너무 밋밋하고 단순하고 투박했다. 아뿔싸. 취향이 달랐다. 엄마는 아직도 그 컵을 안 쓴다. 새 집에 이사가면 쓰려고 박스째 보관하고 있다. 


엄마 집 근처 유기농 베이커리도 검색해 알려주려다, 결코 사지 않을 것 같아 관두었다. 



하지만 의외로 엄마의 학습속도는 놀라웠다. 신바람이 난 개화기 여학생 같았다. 이런, 신여성! 나는 개화기 사람이라 자꾸 가르치려 했는데, 엄마는 자기에게 맞는 아침을 잘 찾았다. 누구 엄마라 그런지 역시 똑똑했다. 엄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샐러드 조리법 책을 여러 권 사서, 공부했다. 잎채소 약간에 많은 걸 뿌렸다. 달디단 콘 통조림도 뿌리고, 몸에 좋다는 견과류도 넘칠 듯 뿌리고, 마요네즈 베이스 드레싱도 듬뿍 뿌렸다.


잔소릴 좀 하려다 관뒀다. 

엄마가 행복하다면 뿌려뿌려 엄마 막 뿌려

언제 그렇게 엄마 식성대로 뿌려봤겠어 

늘 아빠와 우리 식성만 맞췄지. 


괜찮아 괜찮아

행복하면 제로칼로리야



아침 빵 잘 먹고 있냐고 물으니 답장이 왔다. 

“나는 빵 별로 안 좋아해. 너, 아직 날 잘 모른다?”

 메롱 이모티콘과 함께 엄마는 샐러드 접시, 둥글레 차, 에세이 한 권으로 차려진 식탁 사진을 보내왔다. 60대의 인스타그래머 같았다. 약간, 허세 아침밥. 


귀여워서, 사랑스러워서. 무언가 사랑스러우면 나는 꼭 운다.

우는 아이 이모티콘을 보냈다. 엄마는 답장으로 물음표 열 개를 한번에 보냈다. 

“이뿐 우리 딸, 왜 왜 왜 울어???????????????”      


매일 아침 뜨거운 밥과 국을 먹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스스로의 아침을 챙겨먹은 적이 없었다. 

아침을 차리는 의무가 사라지자 엄마는 무기력해졌다.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없어서, 계속 침대에 누워있었다. 


내가 스물 한 살 적,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잠결에 돌아가셨고, 그건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겨우 이년 후의 일이었다. 5명이던 가족이 순식간에 3명이 되었다. 엄마는 1년 동안 배터리가 나간 사람처럼 살았다. 당연했다. 평생 시집살이를 시키고 며느리를 질투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우리는 잠깐 단란했다. 사는 내내,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홀어머니의 털끝 하나 건드릴까 노심초사하던, 자신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티를 내면 어머니의 심경을 거스르는 일이라 여기던 아버지는, 달라지려고 노력을 했다. 


그 추억들은 모두 이마트에 있다. 우리는 넷이서 신나게 이마트에 갔다. 커다란 카트를 밀면 그 속도만큼 행복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남동생과 나는 이미 대학생이었는데도 초딩처럼 굴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과자나 빵 같은 걸 엄마가 모르게 카트 안에 몰래몰래 넣었다. 계산대에서 30만원이 넘는 액수가 찍혀도 아버지는 개의치 않았다. 아버지도 스니커즈나 코카콜라처럼 엄마가 사지 말라는 것을 잔뜩 사고 행복해했다. 그때 아버지는 처음으로 철없는 아이가 된 것 같았을까. 집에 와서는 에어컨을 세게 켜고 넷이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상추쌈을 우걱우걱 먹다가, 문득 우리가 주말 드라마 속 행복한 가족같다고 느껴졌다. 난생 처음이었다. 

그 장보기와 식사는, 자신이 만든 가족을 평생 낯설어하던 아버지 나름의 노력이었을까. 


우리가 조금 행복해고자 했을 때, 그래서 함께 자주 밥을 먹었을 때. 어느 밤, 아버지는 고요히 돌아가셨다. 사는 동안 극도로 말이 없었던 남자는 떠날 때도 소리가 없이 갔다. 나는 제삿상에 스니커즈와 콜라를 놓으며 늘 외로운 아이같던 아버지를 그렸다. 


상대가 좋아하는 걸 주는 게 사랑이라 믿으니까, 그 달고 몸에 나쁜 것들을 제삿날마다 잔뜩 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참동안 엄마의 밥을 염려했다. 밥은 먹었을지 혹시 또 티비만 멍하니 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쌓여, 오전 강의가 끝나자마자 광역버스를 타고 집으로 달려왔다. 그때 921 버스에 앉아 창밖을 보며 여러가지 계획을 세웠던 기억이 난다. 문화센터도 등록해주고 생일엔 아빠 대신 꽃을 배달해두고 저녁마다 함께 기도도 해야지,대학수첩에 꼭꼭 눌러적었다. 집에 도착해 수첩을 펴기도 전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밥은 먹었어?

.....

왜 대답을 안해!


두어번 묻다가 못참고 또 욱해서 물으면 엄마는 마지못해 말했다. "문 닫고 나가라." 목소리에는 아무런 음정이 없었다. 모래같고 회색 같았다. 어떻게 사람 목소리가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정리 안 된 주방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화를 냈다. 



그때로부터 십몇년이 흘렀다. 불행이 온몸에 달린 주머니 같아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을 것 같아도.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서 누구도 만날 수 없을 것 같아도. 괜찮다. 그럼 누워있으면 되지. 잠시 숨어있으면 되지. 우울해 죽을 것 같아도 살아만 있으면 해결이 된다. 내가 아둥바둥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시간이 흘러서 나아지는 일이 세상에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이십대 때는 이딴 말 안 믿었다)


엄마는 요즘 자주 카톡으로 아침 샐러드 사진을 보낸다. 프랑스 사위가 한국땅에서 키운 유기농 채소로 먹는 아침이다. 엄마는 규칙적으로 건강한 아침을 먹고 B는 흙냄새를 맡으며 노래를 부른다. 어느새 우리는 지금, 조금 행복해지려 한다. 


행복하면 늘 불행을 염려하는 쫄보답게, 

또 엄마가 무기력해질까봐 B의 표정이 사라질까봐 걱정이 되지만 

괜찮아, 그럼 또 빵을 사러 달려가면 돼. 그러면 된다. 

나는 행복을 향해 스프린터처럼 달릴 거니까. 







ps 

왜일까. 프랑스 이야기를 하려던 글은 종종 엄마, 큰이모, 작은 이모, 나의 사랑하는 나이든 여자들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빵을 사랑을 여행을 아름다운 관계를 여유를 아름다움을 떠올리면 그녀들이 떠오른다. 관능적인 연애를 경험해 본 적 없이 남자의 아이를 낳고, 여유로운 아침을 즐겨본 적 없이 관절이 다 망가지도록 일하며 살아온 그녀들에게 삶의 기쁨을 보여주고 싶어서일지. 


어쩌면 그 점 때문에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오래 생각할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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