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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n 21. 2018

사랑한다는 말 대신 따뜻한 빵을 사 왔지-1

내가 프랑스식 아침식사를 좋아하는 이유

제일 먼저 잠이 깬 누군가는 홍차를 티폿 가득 끓여놓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드러운 차 향기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도록. 사랑의 모양이 있다면,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좀 당황했다. 당황은 두 가지.

“어떻게 매일 빵으로 아침을?”

“어떻게 이렇게 여유롭게 먹지, 이 분주한 시간에?”

하나는 무지였고 하나는 오해였다. 우선 잼 버터 초콜릿 견과류 스프레드 같은 바를 것의 종류가 몹시 다채로우니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바게트, 식빵, 시골빵, 크로아상. 보통 이런데, 이것도 카테고리가 여럿으로 나뉘니까. 호두 식빵, 호밀 식빵, 초콜릿 크로아상, 아몬드 크로아상...식으로 천갈래 만갈래가 될 수 있다. 빵 고르는 재미만 익히면 아침은 재미있어졌다.      


여기에 찬장 몇 칸을 가득 채운 차 종류를 기분에 맞게 더하면 식탁은 풍요롭다. 우리는 눈을 뜨면 신문보다 먼저 서로의 안색을 살핀다. “오늘은 무슨 차?” 피곤해 보이면 특별한 허브 차를 권하기도 한다. 아침엔 커피보다는 차다. 프랑스(라기보다는 B의 집에는)에는 모닝커피 맛을 가리는 사람이 한국보다 드문 느낌이다. 머신에 내려서 좀 묽고 식은 커피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과일잼은 계절의 도락이다. 시골집 겨울 아침식사는 지난 계절에 거둬 만들어둔 과일잼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한번은 식탁 위에 잼이 무려 여섯 종류가 놓인 적도 있다. 이쯤되면 잼 뷔페. 정원에서 거둔 푸른 토마토로 만든 잼이라니. 태어나 처음 보는 샛노란 레몬잼도. 가능만 하다면 그들은 수박도 잼으로 만들리라, 생각했다. 남편도 자식들도 잼 만드는 걸 좋아해서 각자 잘 만드는 잼이 있었다. 어느 집이나 그런 건 아니겠으나.      


오해는, 프랑스 사람이라고 모두 아침식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건 아니라는 점. 그의 누나는 아침엔 거의 물 종류만 먹는다. 옅게 내린 홍차를 여러 잔 마신 후 마무리로 커피도 한잔,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기 위해선 긴숨이 필요하니까 테라스로 나가 담배를 한 대 길게 태운다. 한숨을 한번 쉰 후 핸드백을 챙긴다. 그게 다다.      


누나 남편은 잼 바른 빵을 입에 물고 운전대를 잡는다. 맛있는 것은 좋아하지만 요리에 열광하지는 않는 타입이랄까. “기엠은 도시 출신이라서 그래.” B는 그의 피자나 버거처럼 쉽고 빠르고 기름진 주문 음식을 즐기는 기엠의 건강을 염려하지만, 종종 나는 그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급히 아침을 때우고 찬 바람 맞으면서 일하러 가는 기분도 되게 괜찮아.     



그런가하면, B는 아침을 정말 근사하게 먹는다. 약간 과장하자면 거의 수도사처럼 보인다. 아침식사를 마치 작은 기도처럼 한다. 우선 순수한 홍찻잎에 뜨거운 물을 조르륵 내리며 아침을 연다. 토스터에 구운 뜨겁고 바삭한 바게트 조각에 버터와 꿀을 두껍게 바르고 한 입 베어문다. 그러는 동안 적당히 식은 차를 한 모금.

자극적이니까 커피는 안 된다. 차가 너무 뜨거워도 안 되지.

“아침은 은근하게 열려야 해”

그에겐 나름의 아침 식사 철학이 있다. 싸구려 티백을 끓는 물에 첨벙 담가 검고 쓰기만한 홍차를 보면, 그는 너무 슬퍼한다.


나는 프랑스식 아침이 좋았다. 누군가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지 않아도 식탁은 풍성하다는 것. 5분 정도면 상대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간단하고 간편한 사랑. 나처럼 게으른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의 아침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서.


가끔 그의 안색이 좋지 않을 땐, 집 근처 베이커리에 갓 구운 바게트를 사러 갔다. 급한 맘에 잘 때 입던 바지를 그대로 입고서. 눈이 커다래지는 B에게 거짓말을 했다.

“모든 한국인은 수면바지를 입고도 밖에 나갈 수 있어.”

사랑에 미친 크레이지 걸프렌드처럼 꺄아아아 웃으며 달려나가 빵을 안고 달려왔다. 숨이 좀 차고 4000원 정도를 쓴 것만으로, 누군가를 불현듯 행복해지게 만들 수 있다니, 이게 기쁨이 아니면 뭐란 말이야.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만료될 즈음 나를 만나 한국에 머물게 된 B. 프랑스에서 편집 디자이너로 일했기 때문에, 한국에선 경력을 살려 일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도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나는 긴 휴가에 빠져 버렸어. 매일 휴가라서 조금 슬퍼요."

어느날 담담하게 그가 말했을 때. 나는 서둘러 작은 방으로 달려갔다. 눈물이 흐를까봐 눈에 힘을 꽉 주고. 넷플릭스를 크게 틀어놓고 흑흑 한참을 울었다.


어쩌면 덫에 걸린 느낌이 들었을 텐데도, 누구도 해치지 않는 고운 말로 심정을 말하는 그가 고마워서. 안쓰러워서.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가 없어서. 너의 불행의 원인이 바로 나인데, 내가 어떤 단어로 어떤 문장으로 위로를 할 수 있겠느냔 말이야.


나와 한집에 살게 된 첫 해. B는 가끔은 종일 침대에 누워 있기도 했다. 종일 눈이 돌아가게 일한 후 멍한 정신으로 귀가했을 때, 아침에 누워있던 자세 그대로 있는 그를 보면 마음이 무너졌다. 무너져 내렸다.


B는 때로 다섯살 어린이가 그대로 어른이 된 것 같다. 그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을 절대로 숨기지 못한다. 오랜만에 제비다방에 가서 우리가 좋아하는 머그잔 생맥주를 마신 밤. 나와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추었다. 길가에 앉아 피자를 먹으면 쉴새없이 농담을 했다. "진짜로, 너무  아름다운 밤이야." 맥주 한 컵과 피자 한 조각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구성한다고 믿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으면 언제나 행복해요." 엉성한 노래같은 말을 한국어로 말한다.


오븐에서 뜨거운 파이를 꺼낼 땐 꼭 콧노래를 부른다. "맛있고 향긋한 사과파이는 즐거움이니까 즐거운 노래를 불러야지!" 그는 노래를 못한다. 못해도 개의치 않는다. 노래를 부르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요리를 하는 건 즐거우니까.


길을 걷다가 벽 틈에 솟아난 작고 샛노란 꽃을 보고 한참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 도시의 틈바구니에 피어난 생명이 어여뻐서, 사진을 찍는 대신 눈에 담는 사람. 일년이 지난 뒤 "그때 그 벽의 꽃 말이야." 하면서 응, '그 꽃이 대체 뭐야?' 어리둥절 기억 못하는 나를 섭섭해 하는 사람.


그런데 어느날 문득, 표정이 사라져 버렸다. 웃지도 울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슬픔과 무기력을 나에게 숨기려고, 어떤 말로도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 동네 로아 베이커리로 달려갔다. 로아 베이커리 빵은 정말 맛있으니까, 맛있는 건 그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으니까. 혹시 바게트가 다 떨어졌으면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스프린터처럼 달려서 키다리 아저씨로 갔다. 바게트를 하나 집고 혹시 몰라서 초코 크로아상도 하나 고르고 혹시 또 몰라서 호두가 박힌 식빵도 샀다. 오늘 말고 내일도 모레도 네가 우울할지 몰라서 자꾸 자꾸 빵을 샀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B가 눈을 떴을 때, '오늘은 행복하다'고 느껴주길 바라며 빵을 아주 많이 골랐다. 생각이 자꾸 이어지니 자꾸 또 겁이 났다. 어젯밤에 그가 악몽을 꿨으면 어쩌지. 아침부터 죽고 싶으면 어쩌지. 가족이 보고 싶으면 어쩌지. 눈을 떴을 때 진짜 프랑스의 아침이 그리워 울고 싶으면....나는 어쩌지. 너는 어쩌지.


식빵이 뜨거워서 품이 너무 더운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 바보같이.


내 마음을 한국어로 모두 세세히 전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바보야. 알아? 나는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이란 말이야. 글로 밥을 버는 사람이란 말이야. 우리가 천국에서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나는 프랑스어를, 너는 한국어를 정말 잘하는 사람이 되어서 1밀리미터의 마음까지도 모두 전할 수 있길.


그때는 빵으로 사랑을 전하지 않아도 되길, 그렇게 바랬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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