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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l 03. 2018

대화의 빈자리는 허튼소리로 채워진다-1

할 말이 없으면 술이나 마시자, 이상한 소리 하지를 말고

“앞으로 몇 년생이냐고 물을 때마다 5천 원씩 내세요. 계좌이체? 안 되고요. 현금으로 제 손에 다섯 장 얹으세요.”


오른손 바닥을 불가사리처럼 펴서 그의 눈앞에 흔들었다. 그러고도 짜증이 풀리지 않아 차가운 맥주 한 컵을 단번에 비웠다. 빈 컵을 친구 앞에 탁탁 치면서, 그를 향한 시선은 멈추지 않았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말썽을 부릴 것 같아서.      

“어? 또, 또, 또 나이 물어보려고 입술 움직거리시네? 저도 맘 편히 놀아야 하는데. 방심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럼, 지금 이게 누구 책임입니까?”      


불꽃에너지가 솟아올라 타자기처럼 말할 때가 있다. 주로 내 앞의 사람에게 화가 날 때, 또는 그가 너무 너무 좋을 때. 이번엔 전자.


나는 소심한 사람이라 정색하는 것으로 보이기는 싫어서 충분히 웃으면서 마치 농담처럼. 말 속에 뼈를 숨겨서 너만 알아듣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농담인 줄 알도록 할 요량이었으나 실패. 취한 까닭에 한쪽 입술이 올라가 비웃는 상이 되었다.


10분 후 모임 어플 알람이 울렸다.

“너몇살님이 모임을 탈퇴하셨습니다.”   

  


친구들과 마련한 작은 파티였다.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 남미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기획 흥은 있고 진행 흥은 약한, 전형적인 용두사미 형 기획자였다.

“일요일 해진 후에 찍어 바르고 외출하고 싶은 사람은 몇 안 될 것이다...

그러기에 왜 모임을 일요일에 잡았는가...”

고양이 껴안고 침대를 뒹굴며 울부짖었다. 힘을 그러모아 일어서야만 했다. 가야만 했다.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꿍얼거리며 발을 끌어 직직직직. 그토록 어렵게 의지와 기운을 모아 방문한 파티인데, 이게 뭐야 와르르. 레스토랑 문을 열자 쌔한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망조군.”      


집 나갔다 돌아온 엄마 보는 새끼들마냥, 동료들 눈빛이 그렁그렁했다.

“선배 자리 저쪽이야. 내가 따로 비워놨지!"

아아, 친절하기도 해라. 분위기 띄우라고 일부러 콕 집어 가장 시들한 자리로 안내한 후배. 10년 전 잘못 찾아가 한 마디도 못하고 왔던 정치철학 북클럽 같은 분위기가 나를 감쌌다. 적막이 도도히 흘렀다. 다 식은 타코를 깨작거리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다수와 들썩들썩 신이 난 단 한 명.      



잠깐 내 얘기를 하자면, 선생병 혹은 사회자병은 나의 오랜 질환이다. 떠들고 싶지 않을수록 나는 떠든다. 그날의 분위기가 끝내 좋지 않을까봐 염려하는 마음에 있는 힘껏 떠든다. 모임에서 누군가 하품을 하면 위기의식을 느끼고 널을 뛰는 나의 혀. 그럴 때면 친구들이 늘 묻는다.

“오늘 특히 신나보이더라. 모임 분위기 별로던데. 네 덕에 그나마 견뎠다.”


하나도 신나지 않았다고 답하면 친구들은 황당해했다. “거짓말! 전혀 몰랐어.”      


아마도 이타의식이거나, 아니면 수년의 직장인 대상 강의 경력 탓일 것이다. 강의실에 설 때면, 종일 근무를 하고 강남에서 홍대까지 만원지하철에서 서서 온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서, 나는 언제나 나를 희극인이라 여기며 강의를 시작했다.

 

“희극인은 외로워도 슬퍼도 웃겨야 한다.”

나도 종일 취재하고 지쳤지만 나는 선생이니까 유쾌하고 에너지짱짱맨이어야지, 꼭꼭 다짐했다. 물론 그들을 김씨 성을 가진  극동아시아의 30대 여자 강사를 알 리가 없지만, 내가 뼈속깊이 짐캐리와 로빈 윌리엄스의 속내에 공감하는 까닭이다. 그 둘이 평생 우울증이었다고 할 때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쓸모없는 말을 널부러뜨리고 돌아올 때면 언제나 허탈했다. 재미없는 이야기를 잘못 알아듣고 폭소를 터뜨린 것처럼 몹시 민망했다. 그래서 이날만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모두가 하품을 하건 말건 내 알바 아니다, 무리하지 말고 견디자. 내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쉬지 않고 차고 딱딱한 타코를 씹었다.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 ‘너몇살’님이 대뜸 너는 몇 년생이냐고 묻기 전에는.   


“몇년생인지 말하고 앉으세요.”

의자에 엉덩이를 막 붙이려는 차였다.

“여기 있는 분들 다 나이 깠어요. 음..제가 보기엔 80년대생이죠? 냄새가 달라.”

그는 자기가 70년대생이라 이 자리 분들과 대화가 안 된다고 했다. 아니 무슨 그런 할배같은 소리를 하시냐 몇살이신데 그렇게 나이든 티를 내시냐고 했더니 그는 더 흥에 겨운 듯 했다.

"오~00씨가 맞춰 보세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나이 맞춰보라는 사람이다. 곤란하다. 제 나이와 똑같게 말하면 섭섭해할 것이다. 너무 적게 말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혼자서만 아첨하려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 더 많은 나이로 말하면 분위기가 싸해질 것이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는 말했다.

"역시 80년대 생이라 사람 볼 줄을 모르시네~"

아아, 너무나 대화가 재미 있구나...최고의 주말 밤이야.


영원히 끝나지 않는 나이 지옥에 걸린 160cm의 파리가 된 기분이었다.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대화 주제가 다양했다. 그 자리의 적막은 금세 그의 ‘문화생활’ 이슈에 묻혔다. 다른 사람들은 말할 새가 없었는데,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문화생활들 하십니까, 뮤지컬 좋아하십니까, 저는 일주일에 한두번씩 뮤지컬을 봅니다만, 직장 동료들은 문화생활에 너무 집중하는 것 아니냐, 그런 데 돈 쓰지 마라 돈 모아 아파트 사라 너도 장가 가야지 등등 잔소리를 한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뮤지컬에 빠진 계기가 뭐냐면, 뮤지컬이 문화생활 중 으뜸인 것 같다, 저에게 카톡으로 말씀 주시면 아는 형님 통해서 20퍼센트 가격으로 표 드릴 수 있다, 직장인은 모름지기 문화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블라블라.     


그놈의 문화생활 타령에 귀에 못이 박힐 즈음, 내가 또 방심을 했다. 그냥 타코나 씹었어야 하는데.

“제값주고 보셔야죠. 문화생활 좋아하신다면서요. 문화창작자들 돈 좀 벌게 두세요.”

“에이, 삐지지 마세요. 00씨도 표 드릴게요. 카톡 뭐에요?”

그는 내 의자 등받이 팔을 두르고 내 쪽으로 바짝 당겨앉았다. 말이 너무 세게 들릴까봐 어물쩡 웃는 버릇 때문에, 이번에도 그는 내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나 보다.


늘 이런 식이다. 모임의 누군가가 대화의 빈자리를 참지 못하고 너불거린다. 그러면 나는 대화의 빈자리를 참지 못하고 대꾸를 하고 (그러면서 웃고) 그래서 상대는 내가 농을 거는 줄 알고 반긴다. 게다가 나는 모임이 지루하면 그게 마치 다 내탓인양 죄책감을 느끼며 고통을 느낀다. 맨정신으로 견디기 어려워 매번 취하도록 술을 마신다. 마시기를 멈추면 죄책감이 날 뒤덮을 것 같다.


그날도 그랬다. 맥주를 계속해서 들이키니 웃음이 계속해서 나왔다. '술이 좋은 겁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아니고.' 속으로 되내었지만 누구도 몰랐으리라. 나는 또 신나 보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완전히 취해서는 호령을 한 것이었다. 나이 얘기더 하고 싶으면 돈을 내시고요. 앞으로 사람들에게 몇 년생이냐고 물을 때마다 5천 원씩 내세요. 그 돈 제가 모아서 2차 갈 거에요. 너때문에 1차 너무 재미없었으니까.




(계속)


"대화의 실패로 인한 빈자리는 이내 독설과 허튼소리, 거짓말로 채워진다."

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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