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결혼은 안하고 춤추며 전세계를 떠도는 외로운 사람이 꿈이라 했다.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어?” 좋아하는 사람에게 묻고 묻고 또 물어서 더 이상 물을 게 없을 때 하는 질문이나 떠올려 볼까. 엄마 집에 가서 맛있는 걸 잔뜩 먹고 노곤하게 마루에 드러누웠을 때, 애인과 펍에서 맥주를 마시고 또 마셔서 만족스러울 때 나는 이런 걸 묻는다. “뭘 그런 걸 물어?”라고 눙칠 줄 알았던 사람들은 의외로 성실하게 숙제를 하듯 답을 해 주어 나를 놀래켰다.
애인은 색소포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니야. 드럼이 좋겠어.” 하다가
“아니야, 아니야. 바꿔도 돼?”라고 물었다. 바꿔도 되지, 얼마든 바꿔도 된다. 어차피 꿈인데 뭘.
“기타를 배워봤는데 나는 영 리듬감이 없더라고. 아무리 연습을 해도 그랬어.”
그는 선천적으로 귀가 좋지 않다. 어릴 적엔 동굴 안에 앉아있는 것처럼 세상의 소리가 아주 멀리서 웅웅웅 울리듯 들렸다고 했다. (오른쪽으로 돌아 누웠을 때 왼쪽 귀에 사랑해,라고 말하면 알지 못한다. 그럴 땐 "바보"라고 다시 말해 본다. 정말 모르네. 나는 기어코 몸을 돌리게 해서 다시 말한다)
아무튼, 소리에 예민해지게 하기 위해,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기 위해 애인의 엄마는 일렉 기타 레슨을 등록해 주었다고 했다. 저녁에 먹을 빵과 아이스크림 정도를 사기 위해 운전을 할 때조차 열댓 장의 씨디를 고르는 그다. 운전석에 앉으면 음악이 더 감미롭게 들린다는 이유만으로 운전을 좋아하는 그다. 어릴 적에 소리를 잘 듣지 못했기 때문에 소년이 되어서도 기타 리듬을 맞추기 어려웠을 때, 슬프지 않았을 리 없다. “관악기는 기타보다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리듬을 좀 몰라도 말야.”
이렇게 열심히 말해 놓고 돌아오는 길에서 또 부탁했다.
“한번만 더 바꿀게. 우주인.”
뜬금없는 질문을 통해 하나는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인생을 좋아한단 사실을. 할 수 있다면 여러 번 다시 살아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뮤지션 한영애 씨는 내 질문에 그렇게 말했다.
“바위. 아주 높아서 아무도 오지 않는 산에 놓인 바위.”
바위는 소리가 안 나잖아요. 당신은 소리를 다루는 사람인데요. 바보같은 질문에 특유의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은 목소리로 천천히 답했다. 아주 여러 번 생각해 온 듯 정돈된 말투.
“그래서. 그래서요. 아주 고요해지고 싶어요. 영원히. 참 좋을 것 같아.”
인터뷰어로 일해 오며 주고받은 수백수천개의 질문과 답변 중에 그 순간이 가장 기억이 난다. 소리없이 고요해지고 싶다는 음악가의 말. 그 아이러니. 다 알 것 같은 아이러니.
국민학교 시절, 부모님의 꿈 알아오기 숙제를 했을 때 엄마는 말했다. "발레리나." 깜짝 놀랐다. "어릴 때 발레 배웠어?" 꿈이라는 단어는 엄마에게서 팔자, 인생, 운명, 날개 같은 단어들로 치환돼 흘러 나온다. "다시 태어나면 춤추면서 전 세계를 떠도는 사람이 될 거야. 날개 달고 훨훨." "그럼 나는 유명한 무용수 딸이야?" 눈치도 없게 그렇게 물었다. "네가 어딨어? 결혼을 안 했는데. 다시 태어나면 결혼 안 하고 아주 외롭게 살고 싶어. 춤 추면서. 춤 추며 살면 하나도 안 외로울 거야." 그 이야기를 들으며 호기롭게 대답했었다.
"그래. 나는 없어도 돼. 다음 생에선 꼭 그렇게 살아라, 엄마."
어릴 적 신촌 현대백화점에 갈 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었다. 엄마가 "저기에 외할아버지가 건어물 상하던 땅이 있었어. 엄청 넓었어. 그거 그대로 있었으면 엄청 부자였을 건데."라고 말했기 때문에.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초밥 세트 같은 걸 먹으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 설렜다. "우리 부자였음 유부초밥 같은 건 초밥살 때 안 넣을 거야. 그치?"
엄마가 발레를 배우던 여고 시절에 외할아버지는 농사에 크게 투자를 했고, 그해는 기록적인 흉작이었다고 했다. "완전히 망해서 파주로 이사 갔어. 이후로 무용은 못했지."
"어릴 적 무용을 배울 때 레슨 끝나고 오면서 버스 정류장에서도 계속 나도 모르게 춤 동작 연습하고 그랬어. 나한테 춤 인자가 있나 봐." 얼마 전 엄마 집 마루에 누워,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뭐 되고 싶냐고 묻자 엄마 꿈은 여전했다. 나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가끔 만나는 랩인간을 떠올렸다. 방금 레슨 마치고 나왔는지 혼자 랩 연습하는 '고등래퍼' 들을 자주 본다.
엄마는 꿈꾸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춤은 내 안에 짤깍 달라붙은 걸 살살 떼어내는 느낌이야. 아무 생각도 안 나고 푹 빠질 수 있어.
너는 글 쓰고 말하고 그럴 때 '세상에 부족한 게 없구나' 싶지? 나도 그래. 춤추면 아무 걱정도 안 나."
우리 어릴 때 엄마는 하루 세 번 에어로빅을 갔다. 반짝이 에어로빅복을 입고 섹시뮤직, 뉴욕러버 같은 제목의 댄스 팝송에 맞춰 동작을 했다. 언젠가 구경하러 가서 구석에 앉아서 끝나고 다같이 먹을 빈대떡을 기다렸었다. (그 시절엔 왜 에어로빅 학원에서 떡이나 빈대떡을 노나 먹었을까) 우리 엄마는 세상에, 맨 앞줄 가운데 자리였다. 소녀시대라면 윤아, 원더걸스면 소희, 에프엑스라면 크리스탈이었다. 동작이 깔끔하고 정확하며 크게 뽐내지도 않았다. 과한 애교 없이, 절도미가 흘렀다.
엄마보다 더 번쩍이는 에어로빅복을 입고 꽤 능숙한 아줌마도 있었으나, 그녀는 동작이 너무 과시적이고 털기가 너무 잘았다. 반면 엄마는 선이 깔끔하고 잡스러운 동작이 없었다. 성격다웠다. 친구에게 큰 도움을 받으면 말로만 말고 꼭 문화상품권이라도 주라고 하는 그녀답게, 춤도 깔끔하고 똑떨어졌다. 그때 그녀는 지옥같은 시집살이를 견디러 하루 세번 에어로빅을 갔다. "다녀오면 숨이 쉬어졌어. 세번 가야 살겠더라고. 에너지를 다 쓰니까 잡념이 사라졌지."
다시 태어나서,
엄마는 발레복을 트렁크에 수십 벌 넣고 돌아오지 않을 해외 순방을 떠나고 애인은 빛나는 무대 위에서 기타 독주를 하고, 아니다. 우주인이 되고. 그럼 나는 우주의 먼지나 되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