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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l 28. 2018

섹스에 관한 대화를 좋아하세요?

서로의 선호와 취향에 관해 절대로 평가하지 않기가 첫번째다  

1 “이번 책에 섹스 이야기도 쓰는 거야?” 마루에서 워드 창과 씨름하는 나에게 차가운 홍차를 한 잔 만들어 준 뒤, 정원 손질을 하려고 나가며 B가 물었다. 당황했다. 예상치도 못한 질문. 친구들과 섹스에 관한 대화를 하는 일도 드문데, 무슨 글 주제로까지. 어물쩡 얼버무렸다.

“이 책은 사람 사이의 대화에 관한 책이야. 스킨십이 아니고.”


B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대화가 섹스 아니야?”

그러네. 맞지. 네 말이 언제나 맞지.   

   

“2권엔 용기를 내서 꼭 써 줘. 나에 대해 어떻게 썼는지 읽고 싶어.”

B는 꾸깃한 모자를 눌러쓰며 말한다. 저 자신감이 놀랍다. 적어도 B에게 섹스 이슈는 ‘남자의 자신감’ 같은 하찮은 워딩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생의 향유, 재미있는 놀이, 감각, 즐거운 대화 같은 이슈들과 같은 서랍에 들어가 있다.      


섹스 이야기를 할 때 저토록 춤을 추듯 흥겨운 사람은 처음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는 처음 만날 때부터 그랬다. 장난으로 ‘너에겐 어떤 판타지가 있냐’고 물었을 때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다.

“3이라는 숫자가 좋아. 세 명이 하는 섹스.”  


숨을 훅, 들이쉬었다. 나는 쿨하다, 나는 꽉 막히지 않았다......애써 놀라지 않은 척 했다.      

“그렇지. 멋있는 남자와 너, 그리고 나. 최고네.”


“음, 그것도 좋겠지만. 네가 내 판타지 물었잖아? 아름다운 여자와 나, 그리고 너.”      


판타지의 의미는 말 그대로 판타지. 갑자기 긴장이 풀려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아무말이나 신나게 하자. 편의점에서 맥주 만원 4캔을 한 차례 더 사오고 볼에 팝콘을 연이어 리필해 가며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구 웃으며 농담을 하고 어린 시절 서로가 품었던 판타지를 고백했다.


너에겐 누가 제일 섹시해? 나? 제시카 차스테인. 빨간 머리가 좋더라.

그리고 음, 길고 긴 머리카락이 좋아. 살갗에 찰랑거리며 스치는.


나는. 나는 안 물어봐? 그럼, 내가 그냥 말하도록 하지. 나는 검고 윤기나는 수도사나 사제 옷이 섹시하더라. 자고로 옷에는 작은 단추가 잔뜩 달려있어야지. 근육이 눈에 띄는 건 매력이 없어. 드러내는 건 재미가 없지. 좋은지 아닌지 확인하듯 물어보는 것도 재미없어. 자신감 없어보여서 흥미롭지 않아.


우리는 별빛이 쏟아지는 사막과 새소리가 들리는 아침의 숲에서의 섹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영화들에 나오는 달콤한 섹스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처음으로 환상을 품은 배우는 누구였어? 고등학교 때는 어떤 섹스를 꿈꿨어? 마리화나를 피우면 어떤 판타지가 생기지? 굉장히 좋을 때 불어로는 뭐라고 하지? 눈을 가리는 건 언제나 최고야. 상대의 혀에서 달고 쌉쌀한 와인 맛이 날 때,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서로가 하는 말에 대해 절대로 그 수준과 가치를 평가하지도 비판하지 않는다는 자유를 바탕에 둔 섹스 이야기란 애틋하게 즐거웠다. 기대와 즐거움이었고 미래와 계획에 대한 이야기였고 내가 미세하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 탐색하는 과정이니까, 즐겁지 않을 리가 없다.   

   

요리나 영화, 음악, 농사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모든 주제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듯, 그는 언제나 유쾌하게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어 젓듯, 유머를 몇 프로 섞어서 달콤쌉싸름하게. 1%의 민망함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저녁 테이블에서 캐주얼하게 섹스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내가 섹스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나를 이상하게 보거나 내가 내 눈앞에 너와 당장 섹스를 하고 싶어죽겠다고 오해하지 않는 상대와 마음 편하게 섹스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건 내 인생 계획에는 없던 일인데, 오오 인생이란 재미있어라.      


언젠가 크림을 넣은 홍합스튜에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먹으며 말했었다.

“훌륭한 저녁식사가 없으면 훌륭한 데이트 없어요.”

“데이트?”

“하하하. 정확히는, 섹스. 식사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훌륭한 밤은 없어. 모든 요소가 완벽해야 해.”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그 말이 떠올랐다. 행복한 섹스와 행복한 저녁식사를 같은 카테고리에 두는 게 재미있었다. 적어도 프랑스 사람들에게 섹스는 가장 화려하고 충만한 감각 체험의 일종일 뿐이다. 세상의 즐겁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과 같은 카테고리에 나란히 놓여있다. 보드랍게 감기는 홍합살의 감촉, 아릿한 샐러리, 통후추가 던지는 자극, 혀끝을 톡, 톡 하고 건드리다가 목구멍으로 상큼하게 흘러내리는 화이트 와인, 끈적한 크림 소스, 소스를 머금은 잘 구운 바게트. 섹스도 이러한 맛의 연장이자 확장인 것이다.      


언젠가 “여자가 굶주리도록 하라. 배부르면 섹스하기 싫어질 것이다. 포만감 심한 메뉴를 고르는 남자는 섹스에 성공하지 못할지니.”라는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뭔 놈의 의사가 쓴 섹스 칼럼이었나 본데, 무려 건강 섹션에 있었다. 못났다는 말밖에 덧붙일 말이 없다. (섹스를 성공과 실패로 구별짓고, 고작해야 횟수와 정력, 파워로밖에 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쓰는 글이 세상에 지나치게 많다)

  

2 이 글을 쓰려고 네이버에 ‘프랑스 섹스’를 검색하자 스포츠나 올림픽에 더 어울릴 법한 단어들이 뜬다. ‘프랑스 섹스 횟수 1위, 일년에 151회 즉 일주일에 3회 정도 섹스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미국이다. 우리나라는? 섹스리스가 트렌드고, 일주일에 1번 하는 것이 평균이라고 한다.


재미없다. 궁금하지도 않아.


솔직한 내 생각은? 프랑스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야근을 많이 하고 주말엔 시댁에 가야 하고 스마트폰을 많이 한다면, 별 차이가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3 B는 자주 물어본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별로인 것을 별로라고 말하면, 말의 팩트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긍한다. 취향에는 경중이 없고 옳고 그름이 없으니까, 뭐가 되었든 오롯히 상대가 맞다고 받아들인다. 내 몸이 아니고 네 몸이니까, 당연하다.


횟수보다 중요한 게 솔직함이라고 믿는다. 솔직하고 진실하기 위하여, 뭐가 좋은지 뭐가 싫은지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섹스 말고 다른 일을 할 때 우리가 서로의 선호도와 취향에 관해 대화를 나누듯이. 티셔츠 한 장 살 때에도 내 취향을 세심하게 관찰하잖아. 하물며 섹스는 더 민감한 거잖아. 진짜 솔직한 대화가 정말 중요해.”


교과서 같은 말이지만,

떠올려보니 진심으로 또박또박 말하는 사람을 본 일은 드물다는 걸 깨달았다.



4 어제는 샤워하러 나갔던 B가 침실로 돌아오며 속살거렸다.

“방문 앞에 귀여운 구두가 한 켤레 놓여있어. They are drunken.”

본인도 록 콘서트를 보고와서 심하게 취해있었기 때문에, 그 상황이 엄청나게 러블리하다며 한참을 웃었다.


여행자들이므로, 특히나 금요일 밤이라거나 출국 전 마지막 밤이면 누군가를 에어비앤비 룸에 데려오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엔 적잖이 놀랬지 뭐야. 비밀을 엿본 듯한 기분이 들어서 에어비앤비 룸 옆에 있는 욕실에 갈 때마다 숨을 죽였다. 다음날 아침에 게스트가  “굿모닝!”이라고 인사를 건넬 때 더없이 화창한 그 얼굴을 보면서 괜히 민망해졌다. 그, 그래...굿나잇이었겠구나.


아니, 이게 뭐야. 내가 우리집에서 혼자 민망할 일이야? 하지만 한번 한번 겪으며 훨씬 나아지고 있다. 현관문이 아니라 방문 앞에 구두가 놓여있어도, 이제는 크게 당황하지 않고 속으로 말한다.

“진짜로 너무너무 행복한 밤이 되길 바래.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이니까.”     


하룻밤의 인연이든 이어지는 인연이든, 감각이 나누는 대화니까. 폭발하는 즐거움이니까. 그건 좋은 거니까, 차가운 맥주를 홀짝 마시는 정도의 수고로움으로 축복해 주려 한다.  


섹스는 기분이 좋아지는 거잖아요. 기분이 좋아지는 건 좋은 거니까.



5 우리의 작은 규칙 하나는 스마트폰을 침실에는 가지고 오지 않는다는 거다. 허용되는 것은 소설책이나 시집 같은 것. 그리고 가벼운 마음. 한낮의 초조함과 책임감, 근면함 같은 것을 거실에 두고 잠자리에 드는 것. 게다가 사실 트위터가 섹스보다 덜 수고롭고 더 쉽게 재미를 주잖아요. 너무 위험합니다.


5 일부러 술을 걸치는 건 싫다. 그건 좀 슬프다. '분위기를 잡기 위해 와인을 사오고 향초를 켜는 것'은 조금 슬프다. 너무 인위적이다. 와인과 향초를 좋아하지만 '오늘 섹스를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준비하는 건 시시하다. 차라리 감각에 대해 잘 써진 소설을 몇 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최근엔 줌파 라히리의 소설이 좋았다. 부드럽게 관능적이다. 더없이 감각적이되 저속하지 않다. 은은한 향수 몇 방울도 좋은 것 같다게다가 책을 읽는 상대는 언제나 섹시하지 않나요?


6 우리가 마지막으로 섹스에 대해 나눈 대화가 뭐였더라. 우리의 80대를 상상했었다. 온몸에 주름이 져서 서로를 껴안을 때 그 주름의 결이 느껴지더라도,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할 건가요. 그렇게 내가 물어보았다.


B는 내 어이없는 질문을 비웃지 않고 아주 진지하게 대답했었다. 

우리의 주름과 주름이 서로 아름답게 겹칠 거야.                   


나는 노인이 된 우리의 밤을 희망차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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