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비난할 때마다 B는 나의 변호사가 되어 하나 하나 반박했다
반년에 한번은 하룻밤 내내 운다. 다음날 눈이 한무 아저씨가 될 정도로 우는 날들이 있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엄마랑 살던 집에서 나와 망원동 집에서 살기로 한 뒤 몇 번 거듭된 일이다. 그러니까, B와 한 집에 머물기로 한 뒤로는 세 번째. 울음이 터질 때마다 마침 B가 침실이나 거실이나 부엌에 있었다. 달려와 등을 두드려 주었다. 공들여 위로해 주었다. 놀란 티를 내지 않아서 고마웠다. 울다가 멈췄다가 울다가 멈췄다가 또 울기 시작하는 동안, 차를 끓이러 갈 때말고는 언제나 곁에서 길게 누워 있어주었다. 덕분에 그칠 수 있었다.
부은 눈이 가라앉은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울음의 강에서 헤엄쳐 나와서, 강둑에 걸터 앉는다. 강물을 바라본다. 둥둥둥둥. 양쪽 눈에서 폭포처럼 물을 쏟아내는 나와, 곁에서 튜브를 끼고 함께 떠 있는 B가 있다. B는 자기 튜브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 쪽을 잡아. 꼭 잡아. 떠내려가지 않게.”
눈이 부어서 튜브가 잘 보이지 않는다.
“모르겠어. 대체 어디를 잡으라는 거야!”
돌연 신경질을 낸다. 그는 대답하는 대신 내 오른손을 끌어당겨 튜브 위에 얹는다. 나보다 조금 큰 손으로 살며시 누른다. 손의 온기가 마음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이렇게 잡아요.”
슬픔 속에서 허우적대긴 하지만, 손의 온기에 간신히 기대어 버틴다. 그렇게 하루가 흐른다.
어느새 물은 다 말라있다. 언제 또 쏟아질지 모르지만, 미리 염려해 봤자 배만 고플 것이다. 여하간 이렇게 저렇게 버텼다는 것은 확실하다. 강둑을 벗어나 부엌으로 간다. 조금 지친 표정의 B가 우걱우걱 오트밀을 먹는다. 무가당 두유에 바나나까지 두 개 썰어 넣어서 삽 같은 수저로 떠 먹는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힘을 내야 너를 돕지.
나는 또 눈물이 난다. 콧잔등을 찌푸려 누수를 막으며 웃어본다.
강에서 구해줘서 고마워. 어서 먹어. 내가 그 그릇 씻어주고 싶어. 무엇이라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나는 어이없는 요구를 한다. 얼른 먹으라구. 고마울 때마다, 어쩐지 민망해서 아무 말이나 한다.
이번에도 별것 아닌 것으로 풍선이 터져버렸다. 2주째 밤 10시를 넘겨 귀가해 집에서 잠만 자는 날이 이어졌다. B는 이럴 때면 평소처럼 웃거나 장난치지 않고 무표정하다. 그 무표정이 거슬리고 불편하고 신경쓰였다. 함께 사는 연인의 말다툼이야, 그 무엇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 씻은 후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컵을 왜 찬장에 넣었느냐부터 욕실 바닥이 미끄러운데 닦지 않고 나오다니까지! 이번 다툼의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퓨즈가 탁 끊긴 듯 눈앞이 컴컴해졌다.
“왜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해? 내가 왜?”
화형대에서 심문받는 마녀처럼 주문같은 말들을 한시간도 넘게 중얼거렸다.
"고양이랑 닭 사료도 사야 하고 월세도 내야 하고 크리스마스에 프랑스 가는 비행기표도 사야 해, 그럼 나는 열심히 일해야 해, 그런데 내 글도 많이 쓰고 싶어, 그래서 밤까지 일해. 그런데 그건 영원히 칭찬받을 만한 일이 되지 못해. 일을 더 많이 할수록 나는 죄책감을 느껴. 내가 왜 그래야 해? 집에서 네가 외롭게 기다리니까 너는 나 때문에 한국에 있는 거니까. 한 시간 일하면 한 시간만큼의 죄책감을 느껴! 일이 힘들어도 나는 어디에도 징징댈 수가 없어. 왜냐면 네가 더 힘드니까. 너는 더 외로우니까. 그냥 울어버리고 싶을 때도 젠장, 빌어먹을 영어 단어를 찾아서 내 감정을 말해야 해. 영어로 말하다 보면 내가 저능아 같아. 그런데도 저능아란 단어를 찾아서 말해야 해. 소통하기 위해서. 나는 소통이 너무 싫어. I hate communication. 나 그래서 지금 혼자 있고 싶어. 엉엉엉엉."
그러다가 정말로 이상한 소리까지 해버렸다.
"너는 나에게 부담이야. 나귀처럼 등에 무거운 짐을 진 것 같아. 짐이라니 내가 미쳤지.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못되고 미친 사람이지? 그러니까 나처럼 이기적인 사람은 혼자 살아야민 해. 우리가 함께 살기로 한 게 내 실수인가봐. 너에게 미안해. 타인과 함께 살아갈 힘이 없는 사람이야. 엉엉엉엉엉엉. 너무 너무 슬퍼. 나는 매일 매일 슬퍼."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고작해야, 일 반 쉼 반 하는 일요일을 며칠 견뎠을 뿐인데. 온전히 생각을 놓아버리지 않는 날이 하나도 없는 한 달을 보내면 어김없이 터지고야 만다. B는 그 날을 이렇게 부른다.
“은성씨의 울울데이.”
종일 울고 울고 또 운다는 뜻의 조어다.
평소보다 바쁘게 살면 꼭 한번은 울음이 터진다. 부정적인 마음을 외면하고 싶을 때 진실을 보지 않고 싶을 때마다 뭔가를 열심히 해서일수도 있다. 혹은 일을 할 때마다 생기는 걱정과 열등감 같은 부정적 감정을 서랍에 대충 쓸어 넣었다가 터져 나왔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남만큼은 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다가 생채기가 났을 수도 있다. 하여간 나의 근면에는 늘 눈물이 따른다. 부자는 못 될 습성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휘몰아칠 때는 여러 가지 불순물이 섞여있다. 한참을 울며 여러가지 복합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중얼거리는데 B는 옆에서 다 듣고 있었다. 계속해서 내 말을 반박하면서 들었다. 스스로를 비난할 때마다 B는 나의 변호사가 되어 주었다. 내가 내 단점을 헤집고 파헤치는대로 달려와서 틈을 메꿔 주었다. 흙으로 그릇을 빚을 때 틈이 생기고 공기 구멍이 생길 때마다 손으로 매만져 메꾸는 것처럼, 열심히 아주 열심히. 불에 구워져 터져 버리지 않도록 정성껏 매만졌다.
나는 겨우 요만한 가시 박힌 것 가지고 엄살이야. 자랄 때 장녀여서 막내 연 하고 싶은가봐. 매일 엄살을 부려서 네가 힘들 거야.
/가시는 아픈 거잖아. 얼마나 아픈데. 그런데 엄살이 무슨 뜻이에요? 그래도 너는 귀여워. 음...조금 힘들긴 하지만.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귀여우니까 오케이.
나는 뭘 할 때마다 불안해 해. 망할 거라고 생각하고 안절부절 못해. 이래서는 죽을 때까지 제대로 하는 게 아무 것도 없을 거야. 나로 사는 게 너무 힘이 들어. 지쳤어.
/불안해하면서 다 잘하잖아. 나는 네 한국어 글이나 한국어 말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잘하지 않으면 왜 사람들이 널 좋아하겠어.
안 좋아해. 그냥 겉으로만 친하고 좋아하는 건지도 몰라.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네가 봐서 그래.
/그래요? 그러면 내가 글 읽어줄게. 내가 말 들어줄게. 10년만 기다려. 한국어 마스터 레벨 되면은 다 이해할 수 있어.
내가 너랑 외국에서 살 수 있을까. 나는 에너지 레벨도 낮고 나이도 많은데.
/(심각한 표정을 도리질을 하며) 나이 많다는 말 하지 마세요. 나이 많지 않아. 할머니 아니에요. 그리고 내가 장담하는데, 너는 뭐라도 해서 돈을 벌 사람이야. 내가 너랑 살아보니 알겠어. 너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 계속 노력하는 사람.
나는 못생겼어. (어디까지 반박하나 싶어 아무 말이나 해보았다)
/하하하하. 네. 지금은 못생겼어요. 지금 코랑 눈이 너무 부어서 펌프킨 유령 같아요. 그런데 뿡뿡한 얼굴 사라지면 다시 예쁜 은성씨 될 거에요. 예쁜? 아니, 아니오. 아름다운.
그는 알았던 것 같다. 내가 경주마처럼 달려나가는 습성이 있음을. 눈을 가리고 때로는 숨도 제대로 쉬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하면, 결국 스스로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둑이 터지듯 터진다는 걸. 그럴 땐 그 출렁이는 물 속에서 함께 둥둥둥둥 떠 있으면 된다는 걸. 그러다 기운이 나면 함께 헤엄치면 된다는 사실을.
그때 내게 필요한 건 이해가 아니라, 위로였다. 그래서 그는 내가 실컷 울고 짜증내고 부들거리도록 놓아 두었다. 그리고는 내 감정의 이름과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엇을 원해요? 그래서 마음이 아팠어요?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아요?
대답하기 귀찮을 땐 못 들은 척 하고 휴지나 던지고, 답하고 싶은 건 열심히 대답했다.
왜 슬프냐고? 잘하고 싶어서, 조바심이 나는 것 같아.
왜 불행하냐고? 100%가 안 되면 늘 불행해. 나는 완벽할 수가 없어. 다른 사람들은 완벽한 것 같은데. 평화로운 것 같은데.
왜 무섭냐고? 너랑 살면 해외도 가고, 도전하듯 살아야 하는데 나는 자신이 없어. 나는 쉬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늘 어설픈 것만 같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냐구? 글쎄.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요가를 가서 걱정을 숨에 내쉬어 버리고, 꿀잠이나 자면 되지 않을까. 자기 전에 너랑 차 마시며 스크럽스를 보고.
그러고 보니, 울 때마다 매번 같은 답이었다.
눈물에 젖은 티슈 한아름을 버리고 오면서 B는 말했다.
첫째, 요가와 산책을 하고, 컵라면을 먹지 말고,
둘째, 하기로 한 일을 조금 적고 그 일을 다 하면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쉬고.
셋째, 1주일에 한번 상담을 받아보면 어때. 10년이든 20년이든 뭐 어때. 세상 모든 사람이 상담을 받으면 훨씬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해. 모든 사람에게 좋은 방법이야.
넷째, 이민 가는 건 천천히 생각해. 대신 원하는지 아닌지 마음을 들여다 봐. 1%의 거짓도 있어서는 안돼. 대답이 no라면 솔직하게 말해줘. 네 마음이 따르는대로 살아야 우리가 행복할 수 있어.
우리는 아직 답을 내지 않았다. 아직 몸에 묻은 물이 채 마르지도 않았으므로, 강둑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말리고 있다. 마르길 기다리며 진짜 마음을 살펴 볼 것이다. 즐거운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