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은성 Aug 15. 2018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취향 USB

초조할 땐 네가 준 물건을 만진다. '이것봐 나는 든든한 내 편이 있다'

“나 이거 정말 좋아하는데!”

깜빡했던 내 취향을 떠올리고 환호하는 순간에 네가 의기양양하게 웃었으면 좋겠다. “에헴. 그럴 줄 알았지.” 혹은 “오호라. 우연의 일치네. 아무 생각 없이 샀는데.” 하고 무심한 척 연기를 해도 귀여울 것 같다. 이 물건을 구하느라 방방곡곡을 고산 김정호처럼 모험했네, 하고 과장을 해도 나쁘지는 않다.

     

서로를 더 좋아하게 될 때 우리는 취향의 대동여지도를 그린다. 맥주를 마시며 밤새 나눈 말들이 공기 중으로 휘발된다 해도, 나는 이제 조바심 나지 않는다. 모든 순간을 모두 기억한 채로 살 수는 없다는 사실에 전전긍긍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 그러지 않는다. 네가 하겐다즈 초코바를 사다 준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는 것을 안다. 지난 번 술자리에서 돌아가는 길에 “음주 후엔 단 것이지.” 하며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던 순간을 너는 취향 지도에 몰래 적어두었을 것이다. 딸기도 녹차도 아니고 까만 초코여서, 나도 남 몰래 큭큭큭 웃을 수 있다. 나는 그런 것을 ‘귀여움’이라 부른다.      


서로의 취향을 챙겨준 순간이 모여 관계가 된다. 젤리같은 마음을 단단해지게 한다. 면접을 보러가던 날, 네가 선물해 준 작은 소설책을 재킷 주머니에 담아갔다. 면접장 바깥 차가운 플라스틱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책의 표지를 만지작거렸다. 이것 봐, 나는 든든한 내 편이 있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레고처럼 만들어 모두 데리고 다니고 싶다. 그러지 못하므로 네가 준 물건을 봇짐처럼 들고 다닌다. 불안한 날이면 백팩이 점점 무거워지는 이유다. 혼자서 막막할 때, 초조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 불확실한 삶에 대해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게 된다.           



나를 자라게 했던, 취향의 순간들.      


1

지난 겨울, 서울행 비행기를 타러 가던 날. 깜깜한 새벽의 거실에 오렌지 색이 반짝반짝 빛났다. “아침을 먹어라.” 코르시카 귤이 50개쯤 도자기 그릇에 담겨 있다. 이것 다 먹으면 서울 못 갈 텐데요. 사과를 좋아하는 로헝은 디저트 타임마다 사과를 권했었다. 그는 자기 집 뒤뜰에서 거둔 자두만한 사과를 한 끼에 서너 알씩 꼭 먹는다. “몸에 좋은 과일이 뭔지 아니?” 퀴즈를 냈다. “음...귤이요?” 우리는 다같이 웃었다. “Non, non, non.” 심각한 얼굴로 덧붙였다. “아니지. 아니야. 사과란다.”      



하루는 마켓에서 코르시카 귤을 발견하고 잔뜩 사와서 말했었다. “한국에 코르시카 귤 씨앗을 심고 싶어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과일 같아요.” 사흘만에 그 귤을 다 먹어치우곤 아쉬워했다. 그럼 그냥 사과를 먹어볼까요. 으흠, 하고 바라보던 로항이 언제 카스트르에 다녀왔는지도 몰랐는데, 코르시카 귤을 한아름 사왔다. 아무리 위를 늘려보아도 하룻 저녁에 그걸 다 먹을 수는 없었다. 로항 집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샤를드골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는 내 주머니에 귤을 네 알씩 넣어주었다. 모두 여덟 알.      


차에서 먹고 싶을지도 모르잖아, 비행기를 기다리며 심심할 때 먹으렴, 비행기에 들고 타면 안 된다지? 경찰이 잡아가지 않도록 조심해. 얼른 다 먹어라. 


양 주머니가 캥거루 엄마처럼 되어서 무거웠다. 내게는 한번도 없었던 외할아버지같아 껴안고 싶었지만, 남편이 놀랄까봐 참았다. 대신 비쥬를 할 때 조금 더 오래했다. 로헝은 B의 아버지다. 남프랑스 시골에 산다.      


2

생일 선물로 양산을 두 개나 받았다. H는 공작의 딸이 쓸 것 같은 검은색 레이스 양산을 주었다. 명화가 그려진 양산으로 골라도 어떻게 꼭 회색만 고르는 너에게 “또 회색이야.” 물었더니 “그러게. 고르면 꼭 회색이야.”하고 웃었는데.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내 생일이라고 화려함의 끝같은 선물을 골랐다. 왜일까. 나는 이럴 때마다 ‘사람들은 너무 귀엽다’고 또 생각한다.


엄마는 여름 종합선물세트를 줬다. 아이스 스카프와 아이스 스프레이 토너, 휴대용 선풍기, 그리고 양산. “꽃무늬 없고 레이스 없는 거 찾아 더운데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이건 괜찮지, 하면서 검정색 바탕에 아주 작은 오렌지색 큐브가 찍힌 양산을 건넸다. 8년도 전, 내 자취방에 엄마 취향 꽃무늬 접시, 레이스 식탁보로 꾸며놨을 때 나는 투덜댔었다. “엄마, 젊은 사람들은 이런 거 안 좋아해.”


어쩌자고 그토록 못되게 말했나. 엄마는 8년 동안 그 말을 생각했을까. 8년이 지나 꽃과 과일, 온갖 비비드와 트로피컬에 미친 사람이 될지는 나도 몰랐지. 마음이 아릿아릿했다. 엄마가 잔뜩 생색을 낼 수 있도록 맞장구를 쳤다. 역시 엄마는 안목이 좋다, 의류업계로 나갔어야 하는데 국가가 재원을 잃었어, 예뻐서 못 쓰겠다.

"아유. 됐어. 내년에 또 사줄게. 보나마나 칠칠맞게 또 흘리고 다닌다. 잃어버림 또 사줄게."

엄마의 사랑은 언제나 이렇다. 힐난 반 따스함 반.



3

B는 특별한 날마다 아침을 만들어 준다. 뭐하나 궁금해서 부엌에 기웃대면 “가라! 방으로 가라!” 며 한국 드라마 속 남자들 흉내를 내며 거칠게 소리를 지른다. 한번은 쌀밥에 참깨를 잔뜩 뿌려 주었고, 한번은 오믈렛에 김장용 붉은 고추를 잘라 넣어 주었다. 한국인은 모든 음식에 깨를 뿌리며, 끼니 때마다 매운 것을 먹어야 한다고 기억하는 걸까. 나는 아직도 그러지 말아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영원히 못할 것 같다.    
그까짓 깨, 그까짓 고추. 아침으로 괜찮다

4 

작년 크리스마스는 온통 파란색이었다. 열 명의 가족에게서 파란색의 다양한 선물을 받았다. 그리스 가족의 일상을 담은 사진집, 무쇠 티폿, 그래픽 노블, 고레에다 히로카즈 에세이집, 파스타 기계, 손수 바느질한 가방, 전통방식으로 만든 양털 머플러, 직접 만든 천연비누, 여러 종의 차와 커피, 초콜렛. 대부분의 선물이 용케도 파란색이었다. 그제서야 12월 초에 B가 급하게 “가장 좋아하는 색을 말해달라”고 부탁한 게 떠올랐다.


마루에는 각자의 앞에 색깔봉우리들이 봉긋봉긋 솟아있었다. 색색깔의 선물 산. B의 누나 나데쥬는 보라색 숄을 두르고 보라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B는 오렌지색 포장의 초콜릿과 오렌지색 목도리 사이에서 웃고 있었다. B의 동생은 양치기다. 양 목장에서 일할 때 신기 좋은 두터운 양말도 스웨터도 온통 깊은 초록이었다. 어쩐지 B의 아버지 로항은 입고 있는 핑크색 맨투맨 위에 갈색 스웨터를 대어 보고 있다. 핑크색 스웨터는 차마 고르기 어려웠겠지.      



5

취향은 아무래도 상대가 ‘일을 하지 않을 때’와 연관이 있다. 친구 선물을 사려면 그가 휴식할 때의 모습을 상상한다. 샤워가운과 와인을 주는 의미는, 늘 바빠서 새벽같이 출동하는 친구가 밤에나마 100%로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맥줏잔이나 파스텔을 주기도 한다.


가장 처음으로 선물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건 B가 내 첫 생일에 다섯 가지의 선물을 주면서부터다. 망원만방에 즐겨간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만화책과 질 좋은 초콜릿, 홍차, 파란색 티컵, (과자를 담을) 접시 세트를 줬다. 예쁜 포장지에 하나씩 싸서. 전에는 가족에게서 현금을 받은 일이 많았다. 상대가 뭘 좋아할지 모를 때 현금이 최고다, 라고 배웠는데....유용하긴 해도, 그러면 파티가 너무 재미없어지잖아! 참, 가격표를 반드시, 반드시 떼는 습관도 그에게서 배웠다.     

 

6

떡볶이 취향을 기억해 주는 친구가 생기면 좋겠다. 밀떡집과 쌀떡집이 있다면, 내 손을 잡고 밀떡집으로 인도해 주면 좋겠다. 때로 나는 멍하니 딴 생각을 하다가 쌀떡을 집어먹고는 “아, 끈적거려. 쌀떡을 먹으면 속이 묵지근해져.” 끊임없이 투덜대곤 하니까. 구불구불 말린 사각오뎅과 봉오뎅이 잠긴 오뎅집 앞에서, 사각오뎅을 집어주면 좋겠다. 오뎅은 인생의 진리니까, 최대한 천천히 먹어야 된다. 구불구불 말린 것을 서서히 펴가면서 한입한입 오래 베어 먹어야 한다.


7

방금 B가 바나나 케이크 한 조각을 가져다 주었다. 여름이라 기운이 없고 기운이 없는데 문장은 늘어지고 늘어진 문장을 바라보면 입꼬리가 내려간다. 그 모양을 한참 바라보더니, 엊그제 구워 잘라먹다가 남은 한 조각을 준 것이다. 어쩐지 망설이다 먹었는데, 순식간에 기분이 올라갔다. 코코넛 크림과 바나나의 향기가 이틀 동안 빵 안에서 더 깊어졌다. 보드랍고 달콤했다.


그는 나를 잘 안다. 내가 스스로를 잘 모른다는 것을 아주 잘 안다. 글을 쓸 때 단 것을 한 조각 입에 물고 쓰면, 달콤한 글을 쓰게 된다는 사실을 나만 모르고 그가 더 잘 안다.      


사랑은 관찰이지. 단 것을 먹고 나면 타자 소리가 빨라진다는 것을 관찰했을 것이다. 바깥에서 나를 보는 것은 너니까, 나는 종종 내 취향을 너에게 의탁한다. 연인은 서로의 취향의 USB.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먹을 것을 챙겨준다. 마루에서 무언가 쓰거나 공부하고 있으면, 자신의 소중한 초콜릿을 꺼내어 뚝 잘라 접시에 담아 준다. 학생 때 엄마가 방문을 열고 책상에 사과며 과일을 얹어 주었던 때처럼. 날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는 게 기분이 좋아, 쓰기를 멈추고 한참을 눈을 감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 기억해주면 그건 선언같다. “나는 너를 좋아해.” 그 말을 들은 듯 해서 나는 비로소 안심한다. 사랑과 우정에 대해 단어 사전을 편찬한다면 이렇게 적을 것이다. 상대의 취향을 시시콜콜 알고 싶은 마음과 그 취향을 하나라도 잊을까봐 안달하는 마음이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저절로 괜찮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