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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Aug 16. 2018

꽃과 시, 사랑같은 흔하고 아름다운 단어처럼

Y의 결혼을 축하하며, 그녀의 수만가지 장점에 대해 써 보았다.

똑똑, 하고 너는 말을 건다. 나라면 “나 오늘 완전 흑흑”이라고 할 텐데. 너무 덥죠, 하고 살며시 묻기도 한다. 나라면 “더위도 날 죽으라 죽으라 하네. 인생도 힘든데.”라고 할 텐데.


너와 나는 괴로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너의 마음을 읽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앞에서 훅 치는 화법의 나와 다른 사람이어서. 속 이야기를 하기 위해 색이 고운 차를 우리고 은은한 향을 피우는 듯한 화법의 네가 카톡을 보낼 만한 일이라면, 네 마음이 얼마나 아팠던 것일지.      


너는 그랬지. “가끔 인생의 수레바퀴가 뻑뻑하다고 느껴지면 티쳐 생각이 나요. 생각나는 만큼, 연락하지 못하고 잠들어 버리는 날이 많지만.” 사랑할 만한 사람을 찾아내고야 말았지만, 그의 가족은 네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어서 너는 매일 투쟁 중이다.  

   



“결혼식에는 의미없는 규칙과 관례와 욕심이 마구 붙어 있어요. 저는 그냥 빨리 그날이 와서 결혼식이 끝나기를 바랄 뿐. 다들 그래서 행진할 때 빨리 걷는 거래요. 결혼 준비하기 전에는 너무 긴장해서 빨리 걷는 줄 알았는데.” 나도 화답한다. “맞아. 장군처럼 행진해버리고 드레스 벗어버리고 머리에 꼽은 실핀 쥐어뜯는다 함.” 거친 마음들에 다치는 대신, 웃고야 말 방법을 찾는 네가 자랑스럽다.


“결혼을 뒤집어 엎고 마음에 상처를 입고 부모님을 원망하고 누군가와 새로 시작하는데 머뭇거리고 관계에 선을 긋고. 그것보다는, 이 정도 고난에도 헤어지지 않을 만한 사람과 끝까지 가보는 게 낫다고 생각하니까. 힘내려고요.” 예전에도 지금도 너에게는 가르칠 것이 없다. 나는 늘 배우기만 한다.   


결혼이란 것을 하기 위해, 나와 피도 섞이지 않은 사람들의 평가를 견뎌야 한다. 나는 기가 막혀서 툭 말했다. "너를 한번 본 사람이 너에 대해 뭐라고 말하건 그건 사실이 아니야." 너는 그 말이 힘이 되었다고 했다. 별 말도 아닌데, 싶어 무안했지만 기뻤다. 나는 좀 더 툭툭, 말하기로 마음 먹었다.




알아? 너는 걷는 사람이다. 지긋지긋한 과정을 마치고 결국 결혼식장에 설 때, 네가 서둘러 걷지 않으리란 걸 잘 안다. 또박또박 천천히 걸을 것이다. 널 보면 ‘일정한 속도로 걷는 사람’을 뜻하는 한국어 단어를 만들고 싶어진다.  사소한 일에 야단법석을 떨거나 마음이 조급해 우왕좌왕하곤 하는 나와 달리, 너는 언제나 참 일정하지.

우리가 3시에 차를 마시기로 한다면 그건 네가 2시 50분에 카페에 미리 도착해 좋은 자리를 고른다는 의미야. 너를 늑대를 물리치는 빨간 모자 아가씨처럼 보이게 하는 새빨간 외투를 반듯하게 접어 곁에 둔다. 다음엔 카페 안 풍경을 차별 없이 고루 바라본다. 어느 한 곳 놓치지 않고 눈길을 준 뒤에 짓는 미소는 작은 꽃송이처럼 소담하고 안전하다.       

    

사교적이지만 사회적이지 않은, 그래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날 때마다 부담과 불안을 느끼는 나는 그 미소에 마음을 툭, 놓는다. “어떻게 지냈어?” 묻기만 해도 너는 너의 일상을 셰헤라자데처럼 들려주곤 하니까. 나는 그냥 들으면 돼. 얼마나 편안한지.           


학생과 친구가 되는 것은 기쁘고도 어려운 일이야. 교단에 서서 가르치다가 카페에 마주 앉아야 한다는 건 설레기도 하지만, 두렵지. 자꾸만 내가 말을 해야 할 것 같거든. 무언가 값진 것을 주어야 할 것 같거든. 한 번의 만남도 성취도가 있어야 할 것 같거든. 하지만 너와는 기쁘게 만날 수 있어. 란도셀 메고 학교에 다녀온 아이처럼 네가 재잘대 주니까.      

     



너는 내 글쓰기 클래스 학생이었지. 첫 수업의 풍경은 정확히 되짚을 수 없는데. 네가 보낸 첫 메시지는 기억하고 있다. 강의는 단 두명이 모집이 되었어. 폐강을 하려던 찰나 글쓰기 아카데미에서 메일을 보냈다.           

“한 분이 아주 강력하게 개강 요청을 주셨어요. 수강접수 첫날(그러니까 두달 전이죠)에 신청을 하셨고요. 병원에서 주 6일 근무를 하시는 분인데 이 수업을 듣기 위해 휴무일을 수요일로 바꾸셨다고 해요. 다른 팀원들이 모두 이분의 일정에 맞춰 수요일로 휴무를 맞추셔야 했기에, 팀원들에게 밥도 사고 여러 가지 눈치를 많이 보셨다고 합니다. 원래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셨는데 글쓰는 일을 하지 못해 늘 마음에 품고 있었고, 수업에 얼마나 열심히 참여할지 열심히 피력하셨어요. 몇 십분 동안...”           


‘이 수업이 꿈이었다’는 말에 나는 모니터 앞으로 바싹 다가갔다. 꿈. 꿈이란 단어에 손가락을 짚었다. 나였다면 얼굴도 모르는 아카데미 직원에게 내 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꿈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수 있었을까. 아직 얼굴도 모르는, 네가 궁금해졌다. “네. 할게요.” 짧은 답메일을 보냈다.          

 

알지? 꿈이 밥이 되면, 글쓰기가 직업이 되면 그런 느낌이야. 별가루가 쌀가루가 된 느낌? 하하. 웃긴 비유지. 그런데 정말 그래. 눈을 멀게 할 정도로 반짝거리던 것이 매일의 양식이 되면, 설레지 않는 날이 기어코 오지. 오고 말지. 가끔은 물레를 돌려 실을 잣는 느낌으로 글을 쓰고. 아주 자주 키보드가 재봉틀처럼 느껴져. 설렘만으로는 밥을 벌 수가 없어서, 무표정하게 타자를 치다 보면 스스로가 노인처럼 느껴진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상태로 살다 죽겠구나, 생각을 하지.   

        

그때. 시들하던 나날에 별가루를 뿌린 느낌이었다. 내가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 꿈이 될 수 있다는 전언에 ‘조금은 설레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기분이 들었어. 글을 공들여 읽는 사람이 점점 드물어지는 시절에. 뭐, 어떠냐. 전 세계가 나와 같이 꿈 꿀 필요는 없잖아. 글로 세상을 구할 것도 아니고. 나만 구하면 되는데.          


열 번의 수업은 온전히 행복했다. 너의 눈빛을 받으면 힘이 났다. 네가 오랫동안 품어왔을 질문들의 힘으로 수업은 바르게 굴러갔다.         

  

우정이 일과 돈으로 엮이고, 그래서 무책임한 어떤 존재 때문에 우리가 소원했던 때. 긴 회색의 시간기 지나고 용기를 내어 다시 만나기로 한 날. 커피발전소까지 가는 동안, 첫인사를 연습했다. 미안하다고 말할까, 다시 봐서 참 좋다고 말할까.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어. 눈물이 나고 말아서. 눈 앞엔 온통 핑크, 핑크, 핑크. 온 세상의 핑크색의 꽃은 다 모아온 것 같았던 아주 큰 꽃다발. 장미꽃과 아네모네, 카네이션이 3분의 1씩 모여 결 고운 종이에 싸여 있었어.

“결혼 축하해요. 티쳐.”

언제나처럼 네가 나를 티쳐라 부르니 웃음이 났다.    


       

먼 곳에서 온 남자와 사랑에 빠져 해낸 결혼은...노래와 춤, 박수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제출해야 할 여러 장의 서류였어. 웨딩숍이 아니라 동사무소와 대사관에 가야 했고. 주례 대신에 번역가의 공증. 웨딩홀에서 서로에 대한 편지를 낭독하는 대신에, 우리가 나눈 카톡과 함께 찍은 사진을 ‘증빙자료’란 이름으로 날짜를 기입해 첨부했어. 바빠도 밥을 꼭꼭 씹어 먹으라는 말, 피곤할 때마다 네 사진을 본다는 말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말, 사랑의 메세지들을 공무원에게 제출할 때 마음 한켠이 개의 귀처럼 살짝 접혔어. 참을 만했지만, 아무에게도 권하고 싶지는 않은 과정. 그래도 차마 I love you라는 문장은 제출하지 못했지. ‘자료가 부족해서 사기결혼으로 의심 받을지도 몰라’란 두려움과 매일매일 싸우면서도.           


화려한 것을, 온전히 사치스러운 것에 둘러싸여 있고 싶었어. 네가 준 꽃다발처럼, 흔하고 아름답기만 한 것. 결혼 과정이 온전히 실용적이었기 때문에, 서류전형에 통과한 기분이었기 때문에. 언젠가 다이아몬드 링과 프로포즈 장면을 보고 엉엉 운 적이 있어. 혼수와 반지와 주례를 원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걸 모두 거절한 것이 마음 편하지 않아. 남다른 선택은 남다른 삶을 살게 하잖아. 늘 평범했던 나라서 남달라지는 것이 두렵고 고단했나봐. 어떻게 해. 속물적인 부분도 나의 한 조각인 걸. 울고 말아야지.           







당근 주스와 케냐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의 사랑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너는 주스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티쳐. 저는 그동안 프랭클린 플래너처럼 살았잖아요.” 라고 언제나처럼 차분하게 숨을 골랐다. 너는 시를 전공했지만 자격증을 따서 병원에서 돈을 벌어야 했다. 나를 소모시킨 기분이 들면 사과즙이나 양파즙 같은 걸 주문했다고 해서 내가 한참 웃었었는데.      


“예전에는 놀지를 않았어요. 술을 마시며 오래 수다를 떤다거나 하는 건 잘 못했어요. 지금은 매일 함께 놀아요. 그냥 맛있는 것 먹으러 가면서 ‘얼마나 맛있을까. 진짜 진짜 맛있겠지’ 그런 대화를 해요. 별 거 없고요.”      


별 것 없는 데이트. 그게 얼마나 좋은지 내가 알지. 멀리 여행을 갈 필요도 없이 분위기 좋은 곳에서 술을 마실 필요도 없이, 가만히 누워서 이야기를 수없이 나누는 사이. 그게 사랑이니까.     

      

“제가 일을 다 못했다고 동동거리면 J는 말해요. ‘음, 그럼 내일 하면 되지.’ 그 목소리가 너무 좋아요. J는 제 일이 얼마나 다급한지, 하루 밀리면 다음날 숨도 못 쉬며 해야 하는 건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이러저러하다고 설명하면 또 말해요.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겠지? 너는 언제나 옳으니까’ J는 제가 한 말은 다 맞다고 생각해요. 엄마 말 다 믿는 아기처럼요. 그래서, 내가 더 잘살아야겠다 생각해요. 그런데 저를 몰아붙이는 방향은 아니고요.”          


마음이 편해져서 살이 쪘다며 웃었다. 조금 통통해진 볼에 띈 붉음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다시 또 말할게. 혹시나 네가 내일 마음이 아플 일이 생길까 몰라서 말하고 또 말할게. 100번이라도 말해줄 수 있다. 높은 해일에 맞서더라도, 험준한 산맥을 오르더라도 당연한 듯 도박도박 걸어갈 사람이 너야. 그걸 내가 안다. 너의 글과 말과 언뜻언뜻 스치는 마음에서 다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    

       

Y야. 네 행복에 제동을 거는 것들은 다 무찔러 버려. 그리고 그럴 힘이 너에게 있다.


꽃과 시, 사랑 같은 단어처럼 흔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네가 흔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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