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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Aug 16. 2018

퇴사를 했다, 스물아홉에

서른이 넘으면 밥이 꿈을 대신한다기에, 사표를 냈다

스물아홉 때는 엄청나게 졸렸다.

      

구로디지털단지 B모 사옥 옥상. 잠이 쏟아져서 교정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으면 올라가는 곳이다. 퇴근하고 술 마시러 갈 땐 졸리지 않건만, 좁은 내 책상에 가둬지면 왜 그렇게 잠이 올까. 회피성 수면이다. 우울할 때, 연인과 헤어지고 싶을 때 나는 여지없이 하품을 한다. 졸음이 미친 듯 쏟아진다. 책상 안에 거대한 수면제 욕조처럼 느껴진다. 눈치를 좀 보다가 살살 빠져나온다.

아뿔싸, 엘리베이터에 사장님이 있다. 화장실에서 때를 기다린다. 5분 정도 머물다가 나와 보니 아무도 없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어서 계단으로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옥상에 도착하자 숨이 트인다. 구디단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저 빌딩들 안에선 웅크린 사람들이 각자의 고통을 처리하고 있겠지. 잠깐이지만, 나는 그들 중 하나가 아니란 사실이 기쁘다. 커다란 물탱크실로 걸어간다. 큰 물체 뒤에 조그만 나를 숨기자. 화단 벽돌 위에 몸을 웅크리고 눕는다. 사원증 목걸이를 빼내 주머니에 넣어버린다. 사원증을 빼는 순간 투명인간이 되어 아무도 날 못 찾을 것 같다.     

 

남자 두 명이 올라와 씩씩거린다. “이게 말이 돼요? 미친 거 아냐? 말이 안 되죠.” 초식남만 있는 문제집 회사. 그들이 가장 흥분할 때는 교정을 한번 더 보라거나, 직원 단합대회에 강제로 참여해야 하는 등의 일들. “다음 주가 교과서 비딩 날이에요. 화장실도 못가며 일하는데, 댄스 연습 하라는 게 말이 돼요?”     


나는 나무가 아닌데 자꾸 옥상 화단에서 잠을 잤다. 여러 가지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논의를 하거나 누군가의 흉을 보는 사람들. 흥분한 후배를 다독이는 선배. 후배가 돌아간 뒤 혼자 담배를 한 대 더 태우며 숨을 몰아쉬는 선배. 한 마리의 개미가 된 기분으로 “화장실보다는 낫잖아.” 생각했다.      



스물아홉이었다. 늘 어딘가 불편했다. 세상 어디에도 나에게 맞는 장소가 없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헤쳐 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사원증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부정하고 싶어했지만, 나는 선천적으로 체력이 약했다. 설상가상으로 사교성과 순발력이 좋았다. 재치있고 상냥하기 위해서 온몸의 에너지를 다 끌어다 쓰곤 했다. 거의 매번 점심시간을 동료들과 깔깔거리며 보냈고, ‘오늘은 도무지 타인을 견딜 수 없다’ 싶은 날이면 거짓말을 했다. “몸이 좀 아파서 식사 못할 것 같아요. 산책하고 올게요.” 혼자 식사를 하겠다는 말도 못하던 성격이었다. 회사 근처 빵집에서 책을 읽었다. 즐거운 동시에, 아는 직원이 올까봐 조마조마했다. 이러니, 모든 곳이 불편하지.      


퇴근 후 일산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자마자 졸음이 쏟아졌고 염치불구하고 버스 맨 뒤, 위로 솟아오른 바닥에 앉아서 졸았다. 조금 비참한 느낌이 들었지만 서서 졸다가 넘어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때 내가 어떤 업무를 했는지도 세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내 책상까지 걸어가는 동안에 한시도 PDP 속 <무한도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종료 버튼을 누르면 마음이 부서질 것 같았다. 책상에 앉아서는, 동료들이 아침인사를 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못 들은 척 하면서 버티다가 도저히 안 되겠을 때, 자동인형같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어머. 오셨는지 몰랐어요.”                


나는 음식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어떤 음식이든 상관은 없었다. 게걸스럽게 먹고 싶은 욕망을 채우면 되었다. 저녁 8-9시쯤 당산역에 내리면 인파 속에서 철저히 혼자. 드디어 혼자 있게 되어서 자유를 느끼자 그 자유로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행동을 했다.                

     

괴로움을 눌러줄 음식이 필요해서 편의점에 들렀다. 몽쉘처럼 끔찍하게 달고 부드러운 것을 한 박스 사서 버스를 기다리며 먹었다. 아무거나 먹어치우면 감기에 걸려 혼곤하게 잠이 드는 느낌이 들었다. 맨 정신으로 견딜 수가 없어서 음식으로 정신을 잃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허락하지 않은 음식들이 뱃속을 가득 채웠다. 후회와 죄책감이 몰려오면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느낌을 찾기 위해 그렇게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확신했다. “망했어.” 먹는 동안에는 딱히 슬프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마비된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연애는 쉬지를 않았네? 인디 밴드 CD를 빌려주며 친해진 옆 팀 선배 K와 데이트를 했다. 회사 바깥에서 만난 선배는 내가 괴로워 보인다고 말했다.

 “티가...나나요?” 화들짝 놀랐다.

“티를 안 내려고 하는 것까지 티가 나는데요?”

그가 나를 옥상화단에서 본 것인가. 몹시 예민해졌다.

“괜찮아요.”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행복해야 돼요? 회사에서도?” 나는 발끈 화를 냈다.


K는 기린같은 사람이었다. 말을 아주 느릿느릿 했다. 계란판을 온몸에 두른 것처럼 웃어도 소리가 안 났다. 아침엔 선식을 먹고 저녁엔 남이 고른 안주를 먹고, 그게 다 맛있냐고 물으면 "배는 부르잖아요."하는 사람이었다. 중요한 건 일상보다 이상인 사람.


한참 바라보는 게 티가 나서 “뭐해요?” 물으면 “아...아니에요.” 하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성격이었다. 그런데도 일에 관해서는 놀랍게도 직설적이었다.

 “지금 서른 되죠? 서른 넘으면 지금 하는 일에 전문성이 생겨 버려요. 안 가지려고 해도 생기고야 말죠. 능문제집이나 참고서 일은 숙련의 영역이에요. 재능의 영역이 아니구요. 그러니까 오래, 성실하게 하면 이기는 거에요. 지금 잘 못한다고 해도, 계속 연습하면 잘하게 돼요. 잘하게 되면? 큰일이죠. 사람은 잘하는 일로 계속 살아가려고 하거든요. 꿈 따위 상관없어지죠.”


나는 속으로 말했다. “무서워요. 무서워서 자꾸 먹고 자꾸 잠을 자요.”

겉으로는, 나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그럼, 저 그만 둬도 되나요?”


“네. 그만 둘 힘이 있을 때요.” 그는 카스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자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는 가난한 집의 영재였다. 서울대를 수월하게 들어갔고, 수업보다는 시위에 열중했지만 무사히 졸업했다. 대안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시험 답안지를 밀려써서 떨어졌다. 인생 최초의 실패였고, 이후 교과서를 편집하는 일로 먹고 살게 됐다. 이 일은 자신에게 밥이지만, 결코 꿈은 아니라 했다. “은성씨는 꿈을 이뤘으면 좋겠어요.”     

 


무언가 결심하면 앞도 뒤도 안 보는 성격이다. 말리는 소리엔 손을 훼훼 내젓는다. 뭐라고? 야야, 나 지금 바빠서 안 들려. 어서 내일 아침이 와서 L팀장님께 달려가고 싶었다.


아침이 됐다. “퇴사하고 싶어요.” 말을 꺼내자마자 부들부들 떨렸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팀장님을 앞에 두고 엄마 잃은 아이처럼 계속 울었다. 당황스러웠다. 그날의 회의실은 마치 고해성사실. 다정한 사제를 만나 고해성사를 핑계로 울고 싶어 찾아온 신자가 나였다. 늘 실제보다 부풀려서 겁을 먹는 습관이 있다. 문제집 출간일이 미뤄지고 미뤄져 계절이 바뀌어 모두가 코너에 몰린 기분으로 밤샘을 하고 있었으니까, 무책임하다는 말을 들을 거라 예상했다.


“많이 힘들었나 보다” L팀장님의 차분한 한마디에 그렇게 울음이 터질 줄은 몰랐다. 아프면 휴직을 해라, 쉬었다 올 때까지 자리를 비우고 기다린다는 말에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보다만 교정지를 한아름 그대로 두고 퇴사를 했다. 월요일에 이야기를 꺼내고 금요일에 짐을 챙겨 나왔다.      


문제집을 잘 만드는 사람들은 꼼꼼하고 성실했다. 감수성이 지나치면 밤을 지새우고 그러면 늦잠을 잔다. 오타와 비문을 찾아낼 때 졸음은 방해가 된다. 재직 내내 나는 내 감수성이 부끄러웠던 것 같다.     

 

짐을 잔뜩 들고 그 회사에서의 마지막 엘리베이터를 탔다. 팀장님의 말을 그제야 다시 떠올렸다.


“뭐든 될 수 있다면 은성씨는 뭐가 되고 싶어?” 글을 쓰고 싶다는 소리는 너무 부끄러웠다. 그럴 자격이나 되나. “잡지기자를 보면 부럽기는 해요. 아, 그냥 하는 소리에요. 기자는 대학 때부터 꾸준히 준비해야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늦게는 될 수 없어요.” 길게 길게 변명을 했다.     

      

은성씨는...          

팀장님이 말을 고르느라 오래 걸렸다.           

나무 같아.          

뿌리깊은 나무요?          

눈물을 훔치면서도 농담을 했다.           


가지가 아주 많은 나무. 하나하나의 가지가 바깥 세상을 향해 뻗쳐있는 것처럼. 뿌리는 책상에 앉아있지만 세상이 너무 궁금한 것처럼. 그런 사람은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 나도 국문과 나왔잖아. 학부 때는  글쓰기를 참 좋아했었어. 신경숙의 신간이 나오면 지금도 꼭 사. 너무 피곤해서 한 줄도 읽지 못하고 내내 가방에 넣어 출퇴근만 시키고 있지만 말야.

                     

화장실에 들어가 울었다. 나는 '너는 뿌리는 없고 가지만 많은 나무'라고 요약해 버렸다. 문제집은 잘 만들지도 못하면서 요약 잘하는 습관만 생겨 버렸나. 무능한 직원이었다고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툭하면 사라져서 내선전화를 울리게 하던 나를, 옥상에서 자고 일어나 기분이 상쾌해져서 난데없이 들꽃을 꺾어다 팀장님 책상에 놓은 일은, 제발 기억 못하시길 빌었다. “그날은 펑펑 울려고 회사 옥상에 올라갔었거든요. 따끈한 벽돌 위에서 한참 자고 일어나 보니 기분이 맑아졌었어요. 그래서 갑자기 팀장님께 꽃을 드리고 싶었어요. 진짜 이상한 사람이었네요.”     



퇴사 후 ‘일종의’ 기자가 됐다. 잡지와 사보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는 소리다. 대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뭔가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은 경험이었다. 술자리에선 눈치도 없이 오늘의 취재 이야기를 했다. 꿈을 꿔도 취재하는 꿈을 꾸었다. ‘김기자님’이라는 소리를 들은 날은, 다시 말해달라고 지금 녹음 좀 해도 되냐고 묻고 싶었다. 000기자,라고 바이라인이 찍힌 기사는 오려서 책상에 붙여뒀다. 야, 내가 기자가 됐다.


대단한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할 때, 강원도와 전라도, 경상도를 두루 돌며 여행 취재를 할 때 팀장님의 말을 자주 떠올렸다. 아,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나하나의 가지가 바깥 세상에 뻗친 사람이구나. 그래서 책상에 잘 못 앉아 있었구나.           


10년 만에 처음으로, K와 L팀장님의 말을 글로 써 보았다. 직언해준 K와 너는 나무라고 말해준 L팀장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무엇이 되었을까. 마음 깊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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