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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꿈을 꾸었다.

ESsay #3

by 솔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너무 피곤해서 나머지 7시부터 잠을 청하기 위해 잠자리에 들었고 그렇게 12시간의 잠을 잔 그 날이였다. 내가 피곤하던 그렇지 않던 직장인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했는데 지독한 꿈에 시달리며 깨어나던 순간이 선명하다. 나는 평소 꿈을 자주 꾸는 편이기에 그 어느 하나의 꿈으로 지나갈 만한 일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은 꿈과 현실이 잘 구분되지 않아 꿈의 내용이 너무나도 슬퍼서 아침에 눈을 뜨고도 한참을 울었던 날이였다. 그 꿈 때문에 하루종일 침체 되어있었다.


영 이상한 꿈을 꾸고 난 뒤에 나는, 꿈 해몽을 찾는다. 사실 꿈 해몽은 미신이라고 생각하기에 믿지 않으면서도 괜히 찝찝한 마음에 찾아볼 수 밖에 없다. 내가 꾼 꿈이 흉몽이라고 나오면 미신이라고 믿고 길몽이라고 나오면 갑자기 신뢰를 가지는건 제법 우스운 정신승리지만. 무튼 그렇다.

어느 날은 내 치아가 몽땅 빠지는 꿈을 꾸었는데 그 해석이 그렇게 흉몽으로 자자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날 치아 교정장치가 치아에 맞지 않아 불편한 채로 잠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치아가 빠지는 꿈을 꾸었겠지.

가족을 생각하며 잠들던 날에는 꼭 가족에게 닥친 불행에 관련된 꿈을 꾸곤 한다. 가족이 죽는다거나 가족이 아프다거나 하는 그런 너무 무섭고 슬픈 꿈. 가족에게 생긴 불행에 대한 꿈 해석은 가족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 길몽이라고 한다. 꿈은 반대다 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사실 그 꿈은, 나는 해외에 살고 가족은 한국에 있기에 가족이 아프거나 큰 일을 당했을 때 내가 빨리 갈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생긴 불안의 무의식적 표현이였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꿈에서 조상이~ 꿈에서 돼지가~ 등의 꿈이야기를 하면서 그 꿈을 꾼 사람은 로또에 당첨이 되었더라. 또는 알고봤더니 조상의 묘소에 문제가 생겼다더라. 하는 현실과의 연결을 찾아내기도 한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돼지류의 동물과 똥 이야기를 모두 하는 것일지 하마터면 그 미신을 믿고 싶게 될 정도이다.


그러나 뇌과학적으로 꿈은 그 모든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꿈은 뇌의 활동이 잠든 동안에도 계속된다는 명백한 증거일 뿐이기 떄문이다. 특히 렘수면 동안의 뇌는 깨어 있을 때처럼 활발하게 작동하고 이때 우리의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편도체, 해마가 활발하게 움직인다. 반면 논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은 자는 동안 비교적 비활성화된다. 꿈이 종종 비논리적이고 초현실적인 내용으로 구성되는 이유이자 우리가 아침에 꿈을 떠올릴 때 그 꿈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고 느끼는 이유다.

심리학자들과 뇌과학자들은 꿈을 감정과 기억을 정리하고 통합하는 과정으로 본다고 한다. 하루 동안 억눌렸던 감정, 해결되지 않은 문제, 혹은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불안이 꿈이라는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꿈은 우리의 이성이 외면하고 있던 수많은 현실의 문제, 자아에 대한 심리 상태를 반영한 결과이지, 미래를 예언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꿈이 나에게 주는 메세지를 무시하기가 어렵다. 그 어느 날 꾼 그 꿈이 그랬다. 나의 현실의 문제와 처절히 맞닿아 있었다. 그렇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감정이 혼란스럽고 버거웠다. 괜찮아졌다고 믿은 일들이나, 문제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 아니면 이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일들을 지나 지금 나는 제법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꿈을 꾸고 나면 당황스럽다. 잘 지내고 있는게 아닌걸까.


꿈은 해석해야 할 예언이 아니라, 뇌가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정리하는 행위이자 무의식 말해주는 나의 심리상태이다. 꿈을 자주 꾸는 나는 꿈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미신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오늘의 감정과 상태를 되돌아보는 하나의 내면 관찰 도구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괜찮다고 믿었던 일이 괜찮지 않음을 알았다면 좀 더 마음을 돌보아주어야겠다. 스스로를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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