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4
작년 독서 모임에서 아무튼 시리즈의 책을 저마다 골라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때 『아무튼, 인기가요』를 골라 덕질이 주는 행복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 모임은 질문 하나로 마무리되었다. 각자 '아무튼'으로 책을 쓴다면 무엇에 대해 쓰겠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때 나는 『아무튼, 춤!』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춤이 단번에 떠오를 만큼 나는 춤을 참 좋아한다.
그런 나는 춤을 전공한 전공자인가? 아니다.
춤을 전공자 발끝만큼이라도 추는가? 아니다.
나의 춤 실력은 냉정하게 말해 어디 워크숍에서 장기자랑 나갈 정도이다.
나는 춤을 언제부터 좋아했을까.
어린 시절, 동생과 TV에 나오는 S.E.S. 언니들을 보면서 “나는 유진 할게, 너는 바다 해.” 하며 비슷하게 머리를 묶고 따라 하던 게 시작이었나. 핑클 언니들을 보면서 “나는 성유리 할게, 너는 이진 해.” 하며 따라 하던 게 시작이었나. (당시에 내 기준 제일 예쁜 건 내가 했고, 두 번째로 예쁜 사람은 동생에게 주었음.)
어린 시절, 부천에서 살 때 지역 행사가 있었는데 구체적인 행사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엄마와 동생과 그 행사장에 갔던 기억이 있다. 그 행사에서 막간 코너로 어린이들이 춤 장기자랑을 선보이면 무려 프라이팬을 준다고 했다. 평소엔 그런 끼를 전혀 보여주지 않던 내가 갑자기 무대로 뛰쳐나간 이야기를 어른이 된 뒤에도 몇 번이나 들었다. 그 당시에 나는 엄정화의 '페스티벌'을 안무 그대로 추었는데, 개다리춤과 막춤을 선보여 폭발적인 반응을 이끈 또래 남자아이에게 1등을 빼앗겨 2등을 했다. 2등상은 아침햇살 한 박스였다.
진짜 춤을 춰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대학에 들어갔을 때다. 새터(새내기배움터)에서 댄스 동아리 선배들의 무대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그 선배들의 춤을 보고, 무조건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덜덜 떨며 오디션까지 보고 댄스 동아리에 입성했다. 내 대학생활에서 댄스 동아리를 빼면 할 말이 있을까 싶을 만큼 동아리 활동에 빠져 있었다. 2학년때였나 체육 실기 강의에서 덤블링을 하다가 인대가 끊어져 갑자기 공연에 못 서게 된 그날, 체육 실기 시험을 못 보게 된 것(또는 F를 받아 재수강을 해야 하는 것)보다 무대에 못 서는 게 억울하여 엉엉 우는 나를 보던 황당한 교수님의 눈빛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자타공인 취미 부자이다. 그럼에도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춤”이라고 한다. 그 많은 취미들을 제치고 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춤은 내가 유일하게 생각을 비울 수 있는 취미다. 진정한 취미는 결국 생각을 비우게 하는 것임을 알게 해준 소중한 취미다.
춤을 추는 그 순간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춤을 처음 배우고 처음 하는 안무를 숙지할 때는 머릿속에 외운 안무와 음악을 일치시키는 데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다른 생각을 하면 박자는 지나가고, 노래는 흘러가 버리기 때문이다. 안무를 숙지하고 나면 디테일에 온 신경이 쏠린다. 춤선의 느낌과 완성도는 디테일에서 나온다. 손끝, 발끝의 움직임과 팔을 뻗는 각도, 다리를 미는 힘의 크기, 고개를 약간 꺾거나 갸우뚱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느낌의 춤이 탄생한다. 거기에 헤어 플립(머리를 강하게 흔들며 머리카락의 흐름으로 리듬감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동작)을 더하면 머리카락 끝까지 춤을 추는 느낌을 더할 수 있다. 보통 헤어플립을 사용하면 춤을 그럴싸하게 추는 것 처럼 보인다. 안무, 디테일까지 모두 숙지하고 나면 춤을 추는 동안에는 정말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내 안의 에너지가 모두 춤 그 자체로 가서 생각이 0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땀이 줄줄 흐르면서 느껴지는 운동 효과는 덤이다.
내가 좋아하는 춤은 신체역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신체의 움직임을 거스를수록 동작이 훨씬 더 멋져진다. 허리를 과신전하거나, 무릎의 과도한 플리에, 강한 힘으로 쿵쿵 뛰기 등... 그래서 그런지 오래할 수 있는 취미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한참이나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춤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춤을 취미로 해보라는 추천을 하고 싶은 이 마음은 변치 않는다. "춤을 추는 것이 부끄러워요" “나는 뻣뻣해서 못 해요”라는 사람은 봤어도 “춤이 싫어요”라는 사람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춤을 통해 해방되는 그 기분을 더 많은 사람이 느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아무튼, 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