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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

tournESol #1 순례길, 포르투갈

by 솔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사람들은 물었다. 너 혹시 종교가 있어?


종교는 없다. 나는 무신론자다. 솔직히 말하면 신을 못 믿는 것에 가깝다. 가끔 신을 믿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럽다고 생각한다. 신을 믿을 수 있으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안이든 밖이든 그 신이라는 절대적 존재가 있다면 마음이 편안해질까. 그렇게 신의 존재를 믿고 싶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뭐 어쨌든 난 종교가 없다.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은 스페인 북서부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있는 성 야고보(Saint James)의 무덤이 있는 대성당으로 향하는 전통적인 기독교 순례길을 뜻한다. 이 길은 중세부터 유럽 각지의 신자들이 신앙의 행위로 걷던 길로, 기독교 또는 가톨릭 신자라면 한 번쯤은 걷고 싶은 길일 것이다. 종교를 철학이라고 생각하는 바, 순례길은 무신론자인 나에게도 무교인 나에게도 분명 의미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 그런 이유로 이런 결심을 하기에는 무모할지도 모르겠다.


순례길을 걷고자 한 나는 어떤 마음이였을까.




순례길에 가보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사실 친구의 영향이 9할이다. 평소 내가 참 좋아하던 친구가 작년 순례길을 걷고 돌아왔다. 친구의 도전과 경험을 통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주변은 중요하다.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는 생각보다 나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준다.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여 승인받은 것도, 순례길에 도전하는 것도 주변에서 해냄을 보았기에 실행할 수 있었음에, 주변인에게 감사하다.


어쩌면 스스로의 용기가 부족했던 탓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자꾸 한계를 만드는 것은 다시 한번 나 자신이었다. 막상 티켓팅을 마치고, 여행준비를 하나씩 하는 지금. 순례길 걷기가 얼마나 힘들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타인이 해냈다면 나도 해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이미 순례길을 걸어보겠다는 그 결심이 나에게는 내 한계를 깨는 일이다.


또한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한다.

더 늙기 전에 편안함보다는 불편함에 익숙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제 와서 늦었나 싶을 만큼 자꾸 안 해본 일을 더 해보고 싶어진다. 겁이 많고 안정을 추구하는 내가 20대에도 못해본 도전을 하나씩 해본다. 이번 여름에는 또는 겨울에는 이런걸 해보고 싶어 하고 또 하나의 도전을 이야기 하면 절레절레 하며 '언니는 못말려'의 표정을 짓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표정을 보는 것이 왜 그렇게 재미난지 모르겠다.


어쩌면 꿈이다.

해외 생활도 그러하다. 호찌민에 오겠다는 그 결심 역시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았다. 허무맹랑하던 로망은 현실이 되는데 그리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 곳에 오게 된 것도 주변인의 영향이네.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주변인과, 나의 용기와,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던 꿈 덕분이였다. 그냥 멋져보이는 듯한 그 여행의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엔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과정 안에 또다른 용기를 내고자 한다.

매일 20km 이상의 길을 걷는 것은 힘든 일이다. 다만, 내가 힘들다면 멈출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일이다. 건강은 유한하다. 어쩌면 하루 이틀은 도저히 걸을 수 없거나 걸을 만큼의 건강이 따르지 않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 과감하게 하루를 쉬어가는 용기도 큰 용기다.


다녀온 후,

내가 어떤 모습이 된다거나 어떤 결정을 하고자 함은 아니다.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글쎄, 자꾸 걷다 보면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어떨지 잘 모르지만, 당장의 내 마음은 그냥 가고 싶은 그 마음 하나이다. 가고 싶으면 간다. 내가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을 거둔다. 그냥 한다. 하다가 안되면 포기하면 된다.




순례길 위에서의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생각으로 존재할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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