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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도 가르칠 것

ESsay #7

by 솔글

나에게 세상에 나에게 세상에 나누는 방법을 가르쳐준 어른들에게나누는 방법을 가르쳐준 어른들에게

중학교 3학년이였다. 꽤 멋진 담임 선생님이였다.


체육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셨는데 체육선생님이라 멋있었고, 잘생기셔서 멋있었다. 꼭 출중한 외모나 체육이라는 과목의 그 특수함, 그것때문은 아니였다. 어린 내 눈에도 선생님은 그냥 멋진 사람이였다. 학생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분이였다.

그 당시에도 흔하지 않던 학교 야영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셨던 분이였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교장이나 교감의 큰 꿈이 있을수도 있겠다만, 아마 그 분이라면 아니였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학교 야영을 하며 밤에 야식으로 끓여주신 라면은 라면에 조미김을 넣는 레시피였는데 참 맛있었다. 조미김을 넣은 라면 참 짜고 자극적이지만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기에 너무 좋은 메뉴이다. 야영활동에서 우릴 강당에 모아놓고 강당에 누워 보았던 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은 지금까지 나에게 '인생' 공포영화이며 당시의 기분과 온도, 습도, 분위기가 생생하다.

일진 친구들과 언니도 그 분을 좋아하고 잘 따랐다. 나도 그 분이 우리 담임선생님이라서 참 자랑스러웠다. 옆반을 불쌍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니 참 기가 막히지만서도. 그 분이 체육 수업도 당연히 잘하셨을테지만 그분이 나에게 가르쳐준 가장 큰 것은 학창 시절의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과 추억들이다. 선생님이 주신 추억들이 유독 아직도 내 마음에 생생하게 살아있으니 말이다.






선생님이 주신 많은 기억과 추억이 있지만 여전히 오래도록 기억될 하나가 있다면, 월드비전에 우리 학급이 1년동안 다함께 기부활동을 한 것이다. 당시 우리는 선생님의 제안으로 매달 각자 500원씩 가져와서 약 2만원의 돈을 만들어 한 아이를 후원하였다. 부족한 돈은 선생님이 채워주셨다. 그렇게 1년동안 한 아이를 후원했다. 후원받은 아이의 편지와 이야기를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 받았다. 나누고 베푼다는 것이 이런것임을, 나의 500원이 누군가에게 삶의 희망이 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게 해주셨다. 그렇게 1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기 직전이었다.

1년의 시간을 우리 학급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였지만, 우리는 이제 더이상 하나의 공동체로 기부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였다. 매월 누군가 한명이 나서 500원을 모을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당시만 해도 우리가 500원씩을 모으려면 매달 만나야 했는데 고등학교는 각각 다른 곳으로 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였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한번 기부 받은 기록이 있는 어린이들 더 이상 후원을 받기 어렵다고 했다. 왜냐하면 후원을 기다리는 어린이들이 너무 많아서 한번이라도 기부 받은 기록이 있으면 다시 기회가 돌아오기 어렵다는 거였다. 따라서, 혹시 후원을 각 가정에서 이어가고 싶은 사람은 부모님과 상의 후 선생님에게 말해달라고 하셨다.


그 날, 나는 부모님과 상의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 때의 나는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자는 대단한 사명감을 가진 것은 아니였다. 1년간 선생님이 주신 가르침에 꼭 보답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모범생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멋진 선생님께 예쁨받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친구들에게 제법 멋진 친구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으리라. 아무튼 그 길로 당장 집에 가서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집이 그런 후원을 덜컥덜컥 할 만큼 넉넉했으냐고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부족하게 자란건 아니지만 넘치도록 여유롭지도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잠시의 고민도 하지 않고 그 기부를 이어받자고 허락해주셨다. 매달 2만원씩 1년이면 24만원의 돈이다. 당시 물가로 따져도 그렇게 적은 돈은 아니였지만 엄마는 허락해주었다.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께서 우리 엄마와 나를 칭찬하던 짜릿한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며 어쩌면 나는 그 후원 자체를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엄마는 아니였나보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을 후원하여 아이가 자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더이상 후원이 필요한 나이가 아니라는 안내와 함께 그동안의 후원에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고 엄마는 눈물이 날뻔했다고 했다. 아들 하나를 더 키워낸 느낌이라고 했다.

넘칠만큼 여유로운 부자는 아니였지만, 엄마는 항상 어렵고 불쌍한 특히, 아이들을 모른 척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적은 돈도, 큰 돈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가끔은 엄마가 스스로에게는 잘 쓰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속상하기도 했고, 또 왜 이렇게 이기적인 세상에서 혼자 이타적이냐며 답답해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내 마음속에서 조금씩 자라난 엄마에 대한 존경심은 엄마가 넉넉하지 않아도 나누는 마음을 몸소 가르쳐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천성이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쪼개어서라도 나누는 것은 결국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나누는 삶은 반드시 교육되어야 한다. 나는 중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그리고 엄마로부터 나누는 모습의 어른이 얼마나 멋진 모습인지, 그리고 되려 그것이 얼마나 내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것인지에 대한 귀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 가르침을 줄 어른이 나의 유년시절 둘이나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둘의 합작으로 내 돈은 한푼 쓰지 않고도 이렇게 멋진 후원의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다.


참 어렵고 각박한 세상속에서도 우리 엄마가, 순수함을 잃지 않고 여전히 소녀같은 이유는, 베푸는 마음으로 살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 전 중3시절의 이야기가 한참 어른이 된 나의 마음에 생생히 남아 있는 이유는, 담임선생님이 주신 참된 삶에 대한 교육, 나누는 삶이 주는 기쁨에 대한 경험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난 나는 분명 언젠가 그분들처럼 더 멋진 어른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을 것.

줄 수록 더 많이 받는 다는 것을 깨닫는 멋진 어른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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