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덕질 연대기 (2)

ESsay #9

by 솔글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덕질을 한번 시작한 사람이 갈아타는 일이 있어도 평생 안 하는 건 보기 힘들다고 한다. 그 말을 몸소 실천한 내가 덕질 연대기 2편을 써본다.





직장인이 되었다. 직장인이 되니까 더 도파인거리가 많았다. 연애도 실컷 할 수 있었고, 도파민을 터뜨릴 돈도 벌었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행복한 20대였다. 나는 당시만 해도 꽤나 안정적으로 꼽히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평생 아무 걱정 없이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20대의 끝, 30대의 시작엔 전 세계를 뒤흔들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코로나였다. 그리고 나도 코로나 블루를 피해 가지 못했다. 코로나가 있었던 해에는 직장도, 연애도 모두 엉망진창이었다.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30대의 시작이었다. 심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모두 힘든 상황이었다.



방탄소년단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

초임시절 우리 반 아이들이 방탄소년단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다른 도파민에 아이돌엔 관심도 없고, 실제로 ’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 덕에 더욱더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름이 방탄소년단이라고? 하는 라는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방탄소년단이 해외에서 반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나라의 국격과 K-Pop의 인기는 사실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친구들은 좀 다르다는 생각은 했다. 사실 미국시장에서 통한 우리나라 K-pop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일했던 시대다. 요즘 방탄소년단이 One Direction(영국팝밴드, 무려 해리스타일스가 여기 출신)가 힘을 잃어가는 가운데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들었다. 그때만 해도 내 관심은 딱히 방탄소년단에 없었다. 나는 방탄소년단이 몇 명 인지도 몰랐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방탄소년단은 취소된 월드투어와 무산된 앨범 활동들을 뒤로하고 전설의 시작인 ‘Dynamite'를 발매한다. 이 노래를 듣고 내가 한 첫마디는 '이 노래 완전 미국 Pop 같다!'였다. 가사가 영어인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기존의 케이팝과는 결이 다른 청량감의 그야말로 팝가수의 노래였다. 그렇게 방탄소년단의 ‘Dynamite'가 빌보드 HOT100에서 1위를 했다는 사실에 대한민국의 국민 한 사람으로서 무척 자랑스러웠다. 오리콘도 아니고 빌보드라니... 라떼는 오리콘 차트 순위에 오른 수많은 가수들이 있었던 시대이다. 예를 들어 보아, 동방신기, 등등... 이미 그것만으로 대단하던 시절에 이제는 빌보드를 넘보다니.

그렇게 조금씩 방탄소년단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코로나로 집구석에 박혀 유튜브를 많이 보던 그 시절 MMA(멜론뮤직어워드)의 다이너마이트 공연을 알고리즘으로 만났다. 마이클잭슨을 오마주한 안무 구성은 그야말로 마이클잭슨이 다시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나.

내 알고리즘이 방탄소년단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은... 몇 번의 입덕부정기(나는 덕후가 아니다고 자꾸 되네이며 덕후가 된 것을 거부하는 현상)를 거쳐, 나는 내가 ARMY(방탄소년단 팬 이름)라는 것을 인정했다. 급기야 빅히트의 성장과 방시혁의 성장, 무려 방시혁이 얼마나 대단했는가까지 탐구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 대중문화사의 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책까지 읽었다... 왠지 성인다운 대단한 덕질이었다.


그러나 내가 열심히 덕질을 하던 마지막 시대는 2000년 중반이다. 거의 15년이 지난 요즘은 덕질의 문화가 상당히 많이 바뀌어있었다. 일단, 가장 큰 변화는 다음 카페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럼 도대체 어디서 정보를 공유받으며, 어디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팬들과 이야기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공통된 커뮤니티가 없는데 우리끼리 어떤 연대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말인가.

요즘 아이돌 덕질은 트위터를 통해 한다.(지금은 X로 바뀌었음.) 우선, 이해가 잘 안 됐던 지점은 트위터는 팔로우를 해야 서로의 이야기를 볼 수 있는데, 도대체 누구부터 팔로우를 해야 할지, 어디서 뭘 봐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 이르렀다. 내가 처음으로 늙은 건가... 하며 좌절감을 맛보았다.


이제는 내 돈으로 앨범을 살 수 있고 콘서트를 갈 수 있었다. (표를 구하는 문제는 다른 문제였지만) 콘서트를 보기 위해 부산까지도 갔다. 어느 날은 뮤직뱅크에 당첨이 돼서 내 차를 끌고 여의도 KBS를 갔다. 예전에 라떼는 공개방송을 가면 다른 가수의 무대도 다 보고 오는 거였는데, 지금은 따로따로 녹화를 해서 그것도 충격이었다. 우리 가수와 우리 팬만 있는 무대였다. 끝나고 나오니 방탄소년단 친구들이 준비한 꽃과, 커스텀 쿠키, 불리 립밤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런 걸 역조공(역조공이라는 말이 역사적으로 좋은 의미가 아니라서 가수가 주는 선물 등을 바꿔 쓸 것을 추천한다.)이라고 한다. 그렇게 역조공까지 받아보았다. 700명 중 당첨된 나의 뮤직뱅크 사전녹화 방문기는 트위터에서 몇만의 리트윗을 타고 유명해졌다. 트위터라는 공간은 이렇게 사용하는 거였다. 할미는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모른다고요...

IMG_6748.jpg?type=w773 미친 퀄리티의 선물... 진짜 대단한 덕질이었답니다.

이 모든 현상은 덕질의 연령이 올라가고 거의 대부분의 팬이 나처럼 10대 때부터 누군가의 덕질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성인의 덕질은 경제력과 시간을 기반으로 한다. 스케일도 커지고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요즘의 덕질은 성숙한 팬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실제로 나도 멋진 아미가 되고 싶어서 멤버들의 생일마다 기부를 했다. 처음엔 적은 돈이었는데 방탄소년단 친구들이 10억까지 기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꽤 많은 금액을 기부해보기도 하였다. 예전의 덕질이 우리 가수 자존심이 내 자존심이었다면 요즘의 덕질은 서로의 얼굴에 먹칠하지 않기, 서로 멋진 사람이 되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했다. 또한 이런 문화의 시작이 감히 방탄소년단과 그들의 팬이었다고 말해본다.


또한, 요즘의 덕질은 하나의 문화현상이다. 생일카페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또 차를 몰고 생일 카페도 가봤다. 팬들이 카페를 통째로 빌려서 사진, 영상 등을 전시하고 특별한 컵 커스텀을 해서 음료를 파는 곳이었다. 저렴한 굿즈들도 잔뜩 살 수 있었다. 친구랑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그냥 행복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와 영상이 흘러나오고, 사진도 잔뜩 붙어있었다. 요즘의 덕질은 다양한 방법으로 문화를 향유하는 형태였다.


내가 했던 덕질의 마지막 유형은 RM이 다니던 미술관을 따라다녀보는 것이었다. 팬들 사이에서 그것을 <남주닝>이라고 부른다. RM은 월드투어를 하며 세계 각국의 미술관을 접하게 되었고, 그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리고 자신 스스로가, 고흐와 모네는 알지만, 우리나라 화가와 그 작품에 대해 잘 모르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나라 근현대화가의 작품을 사고, 보고, 전시하였다.

https%3A%2F%2Fkr.hypebeast.com%2Ffiles%2F2023%2F09%2Flacma-bts-dress-exhibit-1.jpg?q=75&w=800&cbr=1&fit=max RM이 기부한 돈으로 복원하였다는 조선시대 혼례복 @LACMA


나는 소시민이기에 사고 전시하는 것은 못하지만 보는 것은 할 수 있기 때문에 RM이 다녀왔다는 전시회에 가서 작품을 보는 것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취미가 되었다. 그리고 그 덕에 수많은 우리나라 근현대 화가를 알게 되고 나의 취향까지 생겼다. 나는 어느새 '유영국' 화가의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다. RM이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의 최애작가는 윤형근 화백인데, 그는 김환기 작가의 사위이며, RM의 개인앨범 첫 번째 트랙 'Yun'의 영감을 준 사람이다. 노래 제목의 ' Yun'은 윤형근의 'Yun'이다. 이렇게 화가의 철학과 그 감성까지 묻어있는 'Indigo' 앨범과 그의 진정성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IMG_7771.jpg?type=w773 2022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어느 수집가의 초대 - 이건희 특별전에서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작품의 저작권은 유영국미술문화재단에 있습니다.

내가 RM이 아니었다면 이 화가를 알 수나 있었을까? 좋아할 수는 있었을까? 그 외에도 곽인식 작가의 작품, 박수근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 마음이 편하고 단순하면서 색채가 아름다운 작품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한창을 우울해하던 내가 활기를 되찾는 것을 보고 우리 엄마는 다행이라고 하며 처음으로 나의 덕질을 응원해 줬다. 나의 덕질을 본 옆반 선생님은 딸이 NCT의 팬이었는데 나처럼 자기가 돈 벌어서 덕질하면 얼마나 좋겠냐며 고등학생 딸의 덕질을 걱정하셨다.

철없는 10대들이나 하던 놀이였던 덕질이 지금은 60대 이상의 중장년층들에게까지 번져나갔다. 실제로 우리 '시어머니'가 미국에 방탄소년단 공연을 보러 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나도 꽤나 충격이었다. 당시 코로나로 우리나라는 공연이 아직 재개되지 않았기에 미국까지 보러 갔다는 것은 찐이다.

예전과 달리, SNS의 발달로 방탄소년단이 몇몇 팬의 실체를 아는 일도 종종 있다. 제이홉은 커버댄스 영상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아 팬들을 감동시켰고, 학교 체육관에서 'MIC DROP을 추던 한 소녀는 유퀴즈에 두 번 출연했다. 우리는 그것을 성덕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런 소통을 하는 월드스타의 팬이라 자랑스럽다.


누군가는 덕질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어차피 방탄소년단은 너를 모른다고. 그래서 덕질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덕질의 마음은 그런 게 아니다. 방탄소년단이 나를 몰라도 그냥 그들로 인해 행복하고 그들의 삶과 그들의 노래와, 그들의 무대에 온전히 몰입하게 되는 마음이 덕질이다.


7명 전원 훌륭하게 군전역을 한 방탄소년단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아주 기대가 된다. 추락보다는 착륙을 하고 싶다던 그들의 소원이 아주 멋지게 이뤄지길 진심, 팬심을 다해 응원한다. 그리고, 이런 덕질의 마음과 열정을 가진 나의 소중한 마음도 응원한다. 누군가를 충분히 사랑하고 응원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비록 온전히 나 스스로를 향해 있지 못하더라도 사랑의 마음이 많은 나를 더욱더 응원하고 싶다.


덕질은, 나를, 세상을 구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덕질 연대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