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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솔 Oct 22. 2023

<패트릭과 함께 읽기>

2023 낫저스트북클럽 11월의 책

대학원 재학 시절 한 수업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당신은 부자인가?” 물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단번에 ‘No.’라는 대답이 떠올랐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머뭇거리는 사이 같이 수업을 듣던 중년의 영국 여성이 대답했습니다. “누구와 비교하는지에 따라 다르지.” 이 말은 저에게 작지 않은 파동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때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스스로를 부자라고 여겨본 적이 없음은 물론이고 학교에서 우리 집이 중산층에 속한다는 걸 배웠을 때는 용납할 수 없어서 속으로 괜한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나의 부모는 부유하지 않고 그렇기에 나도 부자가 아니며 내가 이룬, 이루어 갈 모든 것은 나와 내 가족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라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날들에 급우의 확고하고 조용한 대답은 그야말로 ‘내 안의 얼음 바다를 깨는 도끼’와도 같았지요.


아마도 이때부터 저는 존재하는지조차도 몰랐던 세상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은 분리수거와 재활용을 철저히 하는 나라라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가 소위 ‘제3세계'로 향해 어린이들이 매일 아침 학교 대신 쓰레기산으로 가서 1원어치라도 돈이 될만한 것이 있을지 뒤지고 불태우고 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나는 여성이기에 차별받는 입장으로 평생을 살아왔다고, 그렇기에 나의 성취가 당신의 지금보다 더 빛난다고 여겼지만 남성/여성의 이분법적 사고 안에서 일상의 차별을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 태어난 모습 자체가 사회적 지위의 대부분을 결정해 버리는 사회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옅게나마 겪은 일들에 대해서는 그래도 문제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나라는 작은 세계 밖의 광활한 우주, 그 안의 크고 작은 다른 세계들은 마지 있지도 않은 세계인양 눈을 감고, 그러면서도 나는 큰 세상을 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지금 더 많은 진실을 안다고 해서 그때의 나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몰랐기에 저질렀던 실수를 이제 알기에 더는 하지 않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릴 뿐입니다. 그런데 이게 끝은 아닐 테지요. 앞으로도 저는 모르기 때문에 잘못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때때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세상에 돌이키기 힘든 피해를 더해갈 겁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고 누구나 실수를 한다지만 적어도 “타인의 슬픔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기에, 저는 한 권이라도 더 좋은 책을 많이 읽고, 나누고, 함께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이 책 <패트릭과 함께 읽기>를 추천합니다. 21세기 현대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불합리한 혐오에 맞서고 있다는, 자본주의 법치사회에서 기득권이 내린 선과 악의 결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당신과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 권의 책을 마음 놓고 읽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책입니다. 정답을 주는 책 보다 답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생각을 하고 더 많은 책을 찾아 읽게 하는 책이야말로 진짜 좋은 책이니까요.


책 읽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3년 11월의 책

미셸 쿠오의 <패트릭과 함께 읽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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