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낫저스트북클럽 12월의 책
시인과 소설가가 쓴 산문 읽기를 즐깁니다. 아름다운 문장과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심상이 책 읽는 즐거움을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시인의 에세이는 눈에 띄는 대로 쟁여두었다가 겨우내 알밤 까먹듯 한 권씩 꺼내 읽곤 하는데요, 별다를 것 없이 보통의 문장들 속에 소담히 자리한 낯설고 예쁜 단어들을 곱씹어보고 공책에도 써가며 말의 향연에 빠져듭니다.
유희경 시인은 약 일곱 해 전 종로구 혜화로터리에 위치한 동양서림 안, 2층에 오직 시집만 판매하는 시 전문 독립서점을 열었습니다. 서점 안 서점이라니, 게다가 시집만 판다니, 이미 여기서부터 앞뒤 이야기가 모두 궁금해지지요. 오래된 서점 깊이 자리한, 서점만큼 나이를 먹은 나선형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숨죽여 아- 하고 탄성을 뱉게 되는, 시집으로 빼곡한 서가가 있습니다. 시인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시인이 되었고, 그에 더해 이런 낯설고 예쁜 공간을 만들었고, 여태 운영해오고 있는 걸까요. 한 사람의 삶이 이토록 궁금점 투성이라니 그가 쓴 책이 재미없을 리가 없습니다.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은 시인이 쓴 산문의 힘을 잘 보여주는 책이기도 해서, 제가 글쓰기 교재로도 종종 활용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거나 구태여 덧붙일 필요가 없는 표현을 덜어내지 못하는 학인들이 군더더기 없이 짧은 문장의 힘을 스스로 알게 하는 데에 이 책만큼 좋은 교본이 없습니다. 또 필사하기 좋은 책으로도 즐겨 추천하는데요, 시인이 매일의 시간을 녹여 쓴 문장은 눈으로 한 번 손으로 한 번, 베껴 쓴 문장을 다시 또 눈으로 한 번 더 반복해 읽는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지요. 추워진 날씨 덕분에 머무는 공간은 더없이 따뜻한 요즘, 낯설고 예쁜 책과 함께 즐거운 연말 보내세요.
책 읽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3년 12월의 책
유희경 시인의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