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괴물들>

2024 낫저스트북클럽 12월의 책

by 황은솔

지난 후에 남은 것들


책을 읽다 보면 더 읽어봐야 할지, 그만 덮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책이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100페이지는 읽어보고 판단하자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읽어나가는 편인데요, 클레어 데더러의 <괴물들>을 펼쳤을 때도 비슷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다 97페이지에서 이 문장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관점에 매여 있다.


사랑하는 작품을 만든 창작자, 혹은 그 존재 자체로 존망해 마지않던 인간이 윤리적, 도덕적, 인간적으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짓’을 저질렀을 때, 우리는 그와 그가 만든 창작물, 혹은 긴 시간 동의해 왔던 그의 철학과 관점 등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그저 천하의 나쁜 놈이라 욕하고 다신 그와 관련한 무엇도 소비하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문화 평론가이기도 한 작가 데더러는 스스로도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이 사태(?)에 명징함을 부여하고자 용기를 내어 나쁜 사람의 좋은 작품을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봅니다.


하나의 문장이 마치 비밀의 문처럼 저를 책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고, 완전히 빠져들어 읽었지만,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서도 이 책을 북클럽 도서로 선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도서 목록을 훑을 때마다, 서가를 둘러볼 때마다 이 책이 저를 멈춰 세웠습니다. 나조차도 이 책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는데 추천을 해도 될까. 그러다 좋은 책이란 하나의 정해진 답을 제시하기보다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는, 변함없는 사실이 떠올랐어요. 곁에서 숨죽이고 있는 악을 못 본 척하고 무지를 모든 것에 대한 무기로 내세우고 있진 않은지, 싫으면 지워버리는 소위 캔슬 컬처에 물들어있지는 않은지, 인간의 감정에는 몇 가지 질문에 답하는 것만으로 이쪽저쪽으로 결정할 수 없는 복잡함이 있다는 것을 알려고 조차 하지 않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길 바랐던 것입니다. 질문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면, 물어져야 마땅한 질문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책의 가치는 충분하니까요.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롤리타>와 나보코프를 다루는 장이었습니다. 오래전 원서로 더듬더듬 읽었던 책이라 그저 ‘조금 이상한 사랑 이야기’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던 이 소설에 대한 저의 관점을 뒤흔들었고, 왜 현대문학에서 나보코프가 그렇게 칭송받고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스스로 괴물이 됨으로써 괴물이란 우리의 상상보다 얼마나 더 보잘것없고 흔해 빠졌는지, 흉악범의 신상이 공개되었을 때 그의 평범한 외모에 경악하곤 했던 우리가 얼마나 순진하기 그지없는지 한 권의 책을 통해,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말하고 있는 겁니다.


모든 훌륭한 예술가는 명작이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아의 일부를 강탈당해야 한다. 먼저 자신 안에 들어가 둘러보다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무언가를 가지고 나와 글로 쓴다. 때로 흉악하더라도,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을지라도, 때로 본인을 괴물처럼 보이게 만들지라도 쓴다.
위대한 작가는 가장 흉악한 감정이 가장 특이한 감정이 아님을 믿고 있어서다.
위대한 작가는 가장 사악한 생각조차 평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추천의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 책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낫저스트북스의 큐레이션을 믿고 책을 집어들 독자들에게 풀기 어려운 숙제를 떠넘기는 기분마저 듭니다. 악이 지나간 후에도 사랑은 남는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어렵게 내린 저자의 결론이 마치 이 책을 설명하는 문장 같습니다. 혼란한 시간이 지나고 답이 아닌 질문이 남았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있는 질문은 무엇입니까?



책 읽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4년 12월의 책, 클레어 데더러의 <<괴물들>>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