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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 대하여>

2025 낫저스트북클럽 4월의 책

by 황은솔

질문에 대한 질문



매일 런던과 옥스퍼드를 오가는 꽉 막힌 출퇴근 길에서 베벌리 클락은 우연히 도로벽에 쓰인 낙서를 보게 됩니다. ‘나는 매일 왜 이 짓을 하며 살고 있을까?’ 별안간 충격을 받은 저자는 매일 이렇게 살고 있는 주변의 사람들, 똑같이 꽉 막힌 도로에서 자기처럼 한숨을 내쉬고 있는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다시 묻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살까?


<실패에 대하여>는 이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책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둥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둥 뻔한 소리를 할 것만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종교철학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한 저자는 비슷한 질문에 삶을 바친 지식인의 도움을 받고 본인의 연구 자료와 삶의 경험을 곁들여 한층 분석적이고 설득력 강한 목소리로 우리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왜’라고 묻는 순간, 고된 일상으로 달려가는 중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춘다. 그리고 당연하게 생각한 모든 것을 재고할 공간을 만든다.


오드리 로드부터 미셸 푸코, 한나 아렌트까지 삶이 철학이 된 현인들의 말을 전하는 중간중간, 그는 철학자로서의 무게를 내려두고 아주 개인적인 내면의 고통을 전합니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타인과 자신의 삶을 통해 깨달은 그는 고통을 극복하는 대상이 아닌 서로 보듬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동반자로 바라보기에 이릅니다. 비단 고통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많은 요소들이 그러합니다. 무엇을 좇고 무엇을 내쳐야 하는지 구분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매일 아침 출근길 지옥철에서, 허겁지겁 목구멍으로 밥알을 쑤셔 넣는 점심시간의 식당에서, 온 힘을 다해 가짜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까, 하고 말이죠.


돈이나 숫자든 다른 사람이든, 궁극적이지 않은 대상을 궁극적인 존재로 착각할 때,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결과 곧, ‘존재에 대한 실망’에 맞닥뜨리게 된다. 궁극적이지 않은 존재는 궁극적인 존재로 보이는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미리 밝혀두지만, 이 책에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가져보았을 삶에 대한 의구심을 학자라는 직업에 맞게, 우리가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연구한 결과를 보여줄 뿐입니다. 이를 읽어가는 과정에서 독자는 스스로 답을 찾게 될 겁니다. 그 답이 저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책 읽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5년 4월의 책,

베벌리 클락의 <실패에 대하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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