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낫저스트북클럽 10월의 책
수년 전, 책방을 처음 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숨 막혀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속 안에 쌓이고 뭉개지는 감정들을 스스로 정의하지 못하고 책에 의존해 어딘가에 있을 답을 찾아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분노인지 우울함인지 짜증인지 알 수 없던 마음 위에 한 권 한 권 책을 올려놓으며 깨달은 건, 그 모든 감정들의 끝에 슬픔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화가 나거나 우울한 사람이기 전에 슬픈 사람이었던 겁니다.
나의 슬픔을 인지하고 나서는 슬픔에 관한 책들을 다시 읽어나가기 시작했어요. 슬픔은 필연적으로 무언가의 부재, 있다가 없게 된 것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았고, 슬픔에 대해 쓴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참고하고 인용했던 책이 바로 조앤 디디온의 ≪상실≫이었습니다. 조앤 디디온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다고 생각했는데, 인상 깊게 읽었던 책 ≪푸른 밤≫의 저자 존 디디온과 같은 인물이더군요. 흥미가 생겨 찾아보니 조앤 디디온은 이미 그 이름이 브랜드가 된 저널리스트로,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에세이스트였습니다. 그런 그의 대표작이니 ≪상실≫을 펴기 전 엄청난 기대를 했음은 당연하지요.
많은 기대를 품고 페이지를 넘겼는데, 단숨에 끝까지 읽어나갔습니다. 내용을 떠나서 흔히 말하는 ‘잘 읽히는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글이 잘 읽히기 위해서는 작가의 원문이 좋아야 하는 것과 더불어 번역과 편집의 힘도 매우 큽니다. 하지만 조앤 디디온이 쓴 날것의 생생한 감정의 묘사가 더없이 훌륭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잘 쓰인 에세이가 탄생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곁에 있던 이의 죽음을 이해하려는 절절한 노력은 종이라는 물성을 통과해 피부 속으로 침투해 들어와 슬픔이라는 감정을 이해해 보고자 노력했던 저의 마음을 툭툭 건드렸습니다.
번외로, 책방에서 이따금 글쓰기 워크숍을 할 때면 자기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쓰도록 격려하곤 하는데요, 이를 위해 특별한 고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인들이 종종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쓰느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쓰는가가 글쓰기의 정의일 것입니다. 그 ‘어떻게’의 정석을 보여주는 에세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글 잘 쓰고 싶은 분들의 교보재로도 추천합니다.
책 읽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5년 10월의 책,
조앤 디디온의 ≪상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