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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솔 May 01. 2020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2020 낫저스트북클럽, 5월의 책

예컨대 ‘좋은 글’의 표본을 찾을 때 노력하지 않아도 떠올릴 수 있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신형철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중에 제가 가장 아끼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좋은 글인데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였거든요. 밑줄을 긋고 표시를 해두고 싶은 문장이 가득한 책이라, 예쁜 색감의 펜을 곁에 두고 읽어보세요.


2020 낫저스트북클럽, 5월의 책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


"인간에게 특정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결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p.27)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당시 저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어쩌면 태어나 처음으로 정확하게 마주했습니다. 특별히 불행한 삶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행복할 것도 없는 시간들 틈에 불쑥불쑥 솟아나고 했던 감정에 당혹스러웠는데, 바로 슬픔이었습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과 책에서 인용한 다른 책들을 연이어 읽고 생각했습니다. 슬픔은 피해야 하고 겪지 않을수록 좋은 감정이라는 건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편견이 아닐까 하고요.


"관념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언어로 대상을 포획하지 말고 대상을 대상 그 자체로 드러내자는 것." (p.109)


작가는 크게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주장이었지만 저는 이 문장에서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 슬픔에 빠진 자신과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우울감 등 슬픔을 둘러싼 상황과 결과에만 몰두한 스스로를 발견한 거죠. 슬픔이라는 나무를 마주했지만 몸통과 뿌리는 보려 하지 않고 곁가지들만 똑똑 부러뜨리며 있었달까요. 비단 슬픔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기쁨이나 행복, 혹은 분노 등 살면서 마주하는 많은 감정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대신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상황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짓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온몸을 통과해 지나가는 감정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보내주면 되는 것인데, 의미를 부여하고 포장하기에 바빴던 거죠.


책을 추천함에 앞서 잠정의 독자들이 저와 같이 슬픔에 빠져 있을 거라는 전제를 세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비슷한 사회를 겪어가며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진짜 감정을 마주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겠지요. 나를 더 잘 알기 위해서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그리고 너를 이해하기 위해 진짜 나를 들여다볼 용기. 그래요, 용기입니다. 슬픔을 마주할 용기를 내기 위해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p.28)


함께 읽는 즐거움을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0년 5월의 책

신형철 작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입니다.



https://notjust-books.com/shop_view/?idx=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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