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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솔 Sep 02. 2020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2020 낫저스트북클럽 9월의 책

질문이 있습니다.


"동물은 무엇입니까?"


나름의 대답을 생각해보셨나요? 다음으로 이어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입니까?"



2020 낫저스트북클럽 9월의 책

조너선 사프란 포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민음사


2020년 6월의 책인 <What's Your Enemy?> 추천 글에서 저는 작가가 적이 누구냐고 묻지 않고 무엇이냐고 물은 것에 대해 울림을 받았다고 적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위의 질문을 바라봅니다. 동물이 누구인지, 인간이 누구인지, 지극히 현대 인간 사회적 기준에서 묻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정한 모든 위계와 가치체계를 내려놓고 인식의 무중력 상태에서 다시 한번 묻습니다.


"인간은 무엇입니까? 동물은 무엇인가요? 인간은 동물입니까?


먼저 밝혀두건대, 다 함께 비건이 되자고 외치며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현실보다는 논리적 극단, 논쟁의 테두리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우리가 꼭 읽었으면 하는 이야기책입니다.


두 달 전, 우연한 기회에 접한 어떤 영상을 보고 난 후 즉시 돼지고기를 먹지 않겠다 다짐했습니다. 저에게는 영상 속 그 어린 돼지가 제 반려견 순돌이와 다르지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대학원에서 환경에 대해 연구를 하며 3년 정도 소고기 먹지 않기 캠페인에 동참했었던 경험을 살려 이번 기회에 다시 소고기도 먹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채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비거니즘 관련 책을 여러 권 찾아보았습니다. 읽어 보니 비건이 된다는 건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만 먹는 것이 아니네요. 비건은 비단 내 식탁에 무엇을 올릴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넘어 무엇을 입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삶에서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각자의 삶에 점수를 매기고 순서대로 나열할 수가 있는 건지, 내가 당신보다 중요하거나 그렇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인간이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보다 우위에 서거나 그렇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인간은 산과 들과 바다와 하늘의 주인인 양 구는지에 대해 인문 과학 정치 예술 등 다학계적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조각을 이어 붙여 망가져버린 큰 그림을 다시 그려나가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이거 원, 너무 거창해서 그만두고 싶을 정도네요.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는 비건이 되기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치킨은 먹고 싶고, 고기는 둘째 치더라도 요거트나 버터는 어떻게 한담, 고민과 좌절의 시간 중 집어 든 책입니다. 작가의 네임밸류와 책 자체의 화제성으로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저는 숙성 소고기를 생산 및 판매하는 회사의 마케터로 일했기에 애써 외면하고 싶은 책이었죠. 또한 비건이 되고자 마음을 먹은 후 읽은 관련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인용한 책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읽어야 할 때였죠. 만만치 않은 두께와 부족한 기반 지식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가 수년간의 취재와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팩트를 단단하게 쌓아두고 소설가의 재능을 발휘해 술술 읽히는 문장으로 쓴 덕분입니다. 여기까지 읽고 채식을 권하는 책이라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제목 그대로 "동물을 먹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대부분의 인간이 매일 먹는 식재료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접시 위에 오르게 되는지 여과 없는 현실을 적은 책입니다. "사실은 중요하지만, 그 자체로 의미를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다른 비거니즘 책을 위한 좋은 자료가 되고 독자 스스로 먹는 것을 통해 인간의 의미에 대해 되짚어보게 하는 좋은 안내서입니다.


무엇을 "먹는 것을 정당화하는 근거와 먹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종종 동일"합니다. 평생 세상의 전부라 생각했던 안전지대의 문을 열고 나와 진짜 세상을 보고 난 후,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혹은 아무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책의 가치는 충분하니까요.


"우리가 우리의 삶을 바꾸건 아무것도 하지 않건, 이미 응답한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뭔가를 하는 것이다."


함께 읽는 즐거움을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0년 9월의 책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입니다.



https://notjust-books.com/shop_view/?idx=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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