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NOT JUST BOOKS

나는 가겟집을 꾸리기로 했다.

by 황은솔

마이너스가 쌓이고, 보증금을 까먹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작은 일감들을 받아 서둘러 해치워 늦은 월세를 내고 신용카드 사용 정지를 막을 수 있었으나, 이번 달은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독촉과 협박이 난무했다. 15개월 내내 다달이 꼬박꼬박 밀리지 않고 월세를 냈건만, 딱 한 달을 거르자 한 번도 본 적 없는 집주인은 부동산 아저씨를 올려 보내 월세를 언제 받을 수 있냐고 물어왔다. 이만하면 됐다 싶었다. 이러다가 그나마 있는 목돈인 보증금도 다 날릴까 봐 겁도 났다. 나는 가겟집을 꾸리기로 했다.


물론 처음부터 가겟집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서른이 넘었고 여자인 데다 강아지도 딸려있는데 앞뒤로 통유리가 시원하게 달린 1층 가게에 커튼을 둘러치고 생활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메리카노 먹을까 카페라테 먹을까 고민하다 민트 초코 프라푸치노를 주문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집을 알아보고, 월세를 조정하고 기본 옵션을 받기 위해 아마도 미래의 집주인이 될지 모를 사람과 신경전을 벌이고, 명절도 반납하고 가게 문도 닫고 집 보러 다니다가, '급 빡'이 온 것이다. 이미 월세로 까먹고 알량하게 남아있는 보증금을 손에 쥐고 깎을 수 있는 월세는 한정적이었고, 줄어들 월세에 비해 삶의 질은 너무 많이 떨어질 것이었다. 무엇보다, 내어주고 포기하고 다 감수하고 이사를 했는데 형편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월세를 또 밀리지 않고 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온라인 부동산 사이트도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어 노트북을 덮어버리고 읽고 있던 책을 펼쳤다. 어차피 명절이고 가게엔 손님도 없으니 책이나 읽으며 마음을 달래볼 심산이었다. 그리고, 한숨과 웃픈 페이지들 사이에 그 단어가 있었다. '가겟집.'


나는 헌책방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헌 책만 보는 건 아니고 새 책도 많이 구매해 읽는다. 헌 책을 팔러 오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나라도 책을 사서 읽는 족족 헌책방 재고로 내어놓는데, 가겟집 이야기가 나온 책은 내어놓자마자 팔렸다.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 선언하듯 적어 놓은 그 문장에 마음이 흔들린 세입자가 나뿐만은 아니었겠지. 아무튼 이 책의 작가 박윤선은 태어나 지금까지 열다섯 번의 이사, 열여섯 개의 집 혹은 방을 거치며 겪어온 세입자의 서러움과 황당무계한 에피소드를 공감 가는 문장으로 전하며 세상의 모든 세입자에게 위로를 건넨다. 처음엔 '무슨 이사를 열다섯 번이나 했대?'하고 생각했지만, 찬찬히 세어보니 나도 열여덟 번의 이사를 했더라. 다시 곱씹어 생각해봐도, 지금 사는 집이 열아홉 번째 집이었다. 고생 많았네, 내 인생. 이 사람도 못지않게 고생 많았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처음 몇 꼭지의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은 위로보다는 좌절이 컸다. 하지만 마지막 꼭지까지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엔 용기와 희망이 눈치 없이 생겨났다. 어떻게든 살면 되는 거지 뭐, 배낭여행할 때엔 노숙이나 다름없는 숙소에서도 잘만 잤는데 뭐, 잠깐 여행하는 거라 생각하지 뭐, 하는 마음으로, 나는 가겟집을 꾸리기로 했다.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사를 가고 싶었던 건 아니었기에 집을 알아보면서도 지금 사는 집주인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책을 통해서도, 그리고 계약서에 볼드체로 명시되어 있듯이 사정이 어찌 되었든 어차피 복비는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었으니 서둘러 이야기해야겠다는 필요도 못 느꼈다. 가겟집을 꾸리기로 결심하고 바로 다음 날 아침, 집주인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인자한 목소리의 아주머니가 반가워하며 전화를 받았다. 처음 듣는 목소리고, 그저 집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쩐지 조금 미워했던 사람인데, 왜 그런지 학창 시절 수련회 가서 둘째 날 밤에 공중전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처럼 서러움과 눈물이 복받쳐 올랐다. 아주머니는 미안하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잘 되어야 하는데, 자식 두 명 다 나가서 자취하고 있는 와중에 본인도 월세로 수입을 내고 있고, 젊은 직장인들이 이 돈을 다달이 남한테 줘가며 돈을 모으기는 힘들거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깎아줄 수도 없고, 아무튼 서로 사정이 그러하니 참 안타깝다고 했다. 월세 밀리는 건 기다려줄 수 있으니 조금 더 살라고도 했다. 부동산 아저씨를 올려 보냈던 건, 다달이 하루도 안 밀리고 송금해주던 아가씨가 연락도 없이 월세도 안 보내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겁이 나서 아저씨 보고 빨리 올라가 보라고 했던 거라 했다. 물론 부동산 아저씨는 월세 얘기만 전달하고 가셨으니 이런 연유를 내가 알 턱이 없었지만. 나는 그제야 그녀의 세심한 배려들이 생각났다. 뭔가 하나 고장 나면 당일, 늦어도 다음날이면 새 걸로 바꿔주거나 말끔하게 고쳐주었다. 3층이라 길가 소음이 잘 들린다고 이중창도 달아주었다. 월세집인데도 사는 사람 편하게 벽에 못 박는 것도 허락해주었다. 집주인이라고 덮어놓고 미워했던 게 죄송해졌다. 언제 나가고 싶냐고 물어보시길래, 나가는 날까지 월세를 드리기는 힘들 것 같고 보증금에서 떼어 드려야 하는데 괜찮으시냐고 되물었다. 아유 보증금을 자꾸 까먹으면 아가씨 나중에 어떡할라고 그래. 그럼 2주 안에 사람을 한 번 찾아봅시다. 나도 아가씨도 최선을 다해보자고요.


그 길로 내려가 부동산 아저씨께 이 소식을 전했다. 아저씨는 변화 없는 미소로 - 참 이상한 표정인데, 계속 웃고는 계신데 표정에 변화가 없다. - 그러면 중개수수료는 세입자분께서 내야겠네요,라고 했다. 음. 알고는 있었는데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만기 다 채우고 나가도 제가 내야 해요?"하고,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을 했다. 그런데 "임대차 보호법이... (이하 생략)"로 시작하는 긴 설명을 듣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거지 같네요."라고 해버렸다. 놀랄 틈도 없이 아저씨는 더 놀라운 대답을 하셨다. "원래 법이 그래요."


그렇다. 원래 그런 거다. 법이란 게 원래 다 그런 거고, 억울하면 돈 있고 백 있으면 되는 거다. 나는 오기가 생겼다. 몇 개월 가겟집 산다고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모이겠냐 싶었지만, 그래도 해 볼 만큼은 해보았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을 때까지 뭔가를 해보기로 했다. 앞으로의 고군분투 용쟁호투 각개전투 투쟁기는 이곳 브런치를 통해 연재할 계획이다. 읽는 이가 있건 없건, 어쨌든 기록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스무 번째 집, <가겟집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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