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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Oct 28. 2023

희망퇴직을 했다.

희망퇴직을 했다. 내가 아니라, 우리 회사가.


작년부터 열을 올리던 상장 준비가 불발되면서 더 이상의 투자금 확보가 어려웠던 우리 회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희망퇴직, 권고사직, 서비스 종료, 경기 불황에 꽤나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단어였다. 특히나 비즈니스보다는 사람들의 필요에 근간을 둔 IT 스타트업들이 경기 불황으로 하나둘 몸집을 줄여나가기 시작했고, 우리 회사도 그 흐름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희망퇴직에 원하는 규모로 인원을 감축할 수 없다면 권고사직을 진행한다고 했고, 권고사직의 우선 대상자는 비즈니스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직군부터였다. 나는 그 조건 덕분에 우선순위 대상자에 오르진 않았다. (사실 비즈니스 직군은 희망퇴직 반려 대상이었고, 그 말은 즉, 나에게는 자발적 퇴사 외에는 머무르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반 이상 인원을 절감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꽤 충격으로 다가왔다. 회사의 성장을 지켜본 장기 근속자였기 때문에? 아니었다. 나는 회사보다는 팀에 대한 애착이 훨씬 컸다. 하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마음이 좋지 않았다. 슬픔에 목이 막혀오듯, 감정이 물밀듯 올라왔다. 이 충격은 어디서 오는 걸까. 하루빨리 답을 내려야 했다.


꽤 복잡한 듯 보였지만 결론을 내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지난 몇 개월간 나의 삶에 ‘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흔히 말해 워라밸, 워크와 밸런스로 누군가의 삶을 구분한다면 나에게 라이프 즉, 내 삶은 없었다. 회사는 끊임없이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부여했고, 근무 시간은 점점 초과하며 야근은 일상이 되어갔다. 그리고 잠시 이직 시장에 몸을 담그며 일이 끝나면 포트폴리오를 정비하기에 바빴고, 병행 중인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있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와 눈앞의 일을 해치웠다. 그야말로 ‘해치웠다 ‘. 천천히 생각하며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몰두했던 일이 흔들리며 나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필라테스로 최소한의 운동은 소홀히 하지 않으며 건강만은 지키고 있다고 굳게 믿었지만, 결국 산부인과에 들락날락하기에 이르렀다. 여성분들은 공감할지 모르겠지만, 면역력 저하는 여성 건강과 직결된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고, 감기처럼 하루아침에 차도가 좋아지지 않는 산부인과 질환들은 그야말로 엄청난 스트레스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어야 하는 의자는 그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질환들이 태반인데, 그런 증상들을 안고 있다는 것이 또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악순환의 시작이랄까.



인간관계도 포기해 가며 공부에 몰두하던 오빠에게 의도적인 쉼이 필요하다고 입 아프게 주장해 왔거늘. 지난 6개월간 부단히도 노력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남은 2023년은 스스로를 위한 시간들로 채워나가기로 했다. 물론 절반의 인원만이 남은 회사를 안정적으로 영위하기 위해 회사는 끊임없이 목표를 쥐어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나를 위한 시간들로 삶을 부지런히 채워나갈 것이다. 아니, 채워 나가야 한다. 이건 스스로를 위한 약속에 가깝다. 또, 스스로를 많이 다독여줄 것이다. 멘탈이 흔들리는 시기에는 강한 채찍질보다는 작은 노력에도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무너지지 않고 버텨냄에 감사해야 한다.  그렇게 작은 성취로 스스로를 단단하게 채우고 또 세상에 맞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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