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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Jul 02. 2023

잘 살고 싶어요. 근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불안일까, 강박일까.

일을 하다 보면 일이 나인지, 내가 일인지 도통 헷갈릴 때가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건 24시간. 수면시간 7시간, 일하는 시간 9시간, 출퇴근과 준비에 소요되는 시간 3~4시간. 그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4시간 남짓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머릿속에는 마법의 스위치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4시간이 온전이 나의 시간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내 인생도 풀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 그 생각에 짓눌리다 보면 4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원통하기까지 하다. 왜 나에게 주어진 건 24시간뿐일까.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잠시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그 마저도 일 생각밖에 못했는데. 그렇게 내 하루가 끝나는 모습을 보면 허무하다. 내 삶엔 그저 일 뿐인 걸까.


그래서였을까. 최근에는 4시간을 어떻게든 생산적으로 써야 한다는 생각에 쉼 없이 몸을 굴렸다. 맞다. 몸을 ‘굴렸다.‘ 몸이 축나는 것보다 어떻게든 4시간을 알차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는 뜻이다. 이력서를 다듬거나 인터뷰를 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했다. (그 와중에 스스로를 위해 책 읽는 시간까지 야무지게 챙긴 건 참 칭찬할 만하다.)  본업 외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특히나 그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삶이 있다면 그중 부업으로 이틀, 삼일은 써야 하니 남은 시간은 이틀뿐이었다.


불안이었을까, 강박이었을까. 그러기를 한 달. 결국 몸살에 걸렸다. 핸드폰을 들 힘도 없어 하루 그러고도 반나절을 꼬박 누워있었다. 일 년 전에 코로나에 걸렸을 당시 일주일이 끔찍할 정도로 아팠는데, 그 고통이 재연되는 느낌이었으니 꽤 아팠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사는 것이 맞을까, 하는 고민들이 계속되었다. 결국 친구들을 붙잡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넌 퇴근 후에 뭐 해?’, ‘너의 삶의 즐거움은 뭐야?‘


팀 선배에게 문득 이런 고민을 스쳐 지나가 듯 이야기했을 때, 그저 받아들인다고 했다. 예전에는 ‘왜 이렇게 혼란스러울까’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혼란스럽구나’ 한다고 했다. 2~30대에는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고민을 하는 과정이 발전하는 과정이니 혼란스러운 것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에너지를 쓴다고 했다. ‘공부할 때가 좋은 거야’하는 어른들의 말이 공감이 되지 않듯, 당장은 그 선배의 이야기가 공감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그저 내가 초연해지는 것밖에 답이 없는 건지.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어렵게 느껴질 때’ 교보문고에 가서 제목에 이끌려 손에 들게 된 책인데 딱 그 제목이 내 지금의 삶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잘 살고 싶은데, 그 마음이 너무 어렵다. 온전히 일하고 쉬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으며 쉴 새 없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난 분명 이십 대 초중반에도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준비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은데, 왜 아직까지 똑같을까. 잘 산다는 건 뭘까.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렇게 고민하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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