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부터 텃밭에서 키우던 고구마를 이제야 수확했다. 몇 주 전부터 아내와 고구마 수확시기를 가지고 고민했다. 너무 늦으면 서리가 내려 고구마가 상한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너무 빨리 수확하면 여물지 않은 뿌리 덩어리만 가득 담을까 두려웠다. 아내와 나름 중무장을 하고 밭에 나갔다. 마천루 같은 도심지 빌딩이 보이는 곳에 있는 주말농장에서 고구마를 캐는 상상이란 많은 기대감을 심어 준다. 아내와 한껏 부푼 기대감을 참으며 우선 트레이더스에 일단 갔다. 고구마를 담을 튼튼한 상자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고구마가 잘 여물었다면 열상자는 나오지 않을까?라는 설렘이 있었지만 아내는 날 자제 시킨다. 사실 한 달쯤 전에 고구마 몇 뿌리 뽑아봤지만 엄지손가락 만한 크기의 잔챙이 3개를 수확했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 말자고 했었다. 견고한 박스 3개를 차에 담아 농장으로 향했다.
한창 여름 동안에는 어디서 몰려오는지 수많은 모기 때들의 공격으로 밭에 오는 게 꺼려졌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모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쾌적해진 날씨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삽을 들고 우리에게 할당된 밭고랑으로 갔다. 고구마 넝쿨이 밀림이 되어 있었다. 다른 집으로 덩굴이 넘어가 피해가 되지 않았으면 하여 항상 줄기를 당겨 안쪽으로 구겨 쌓았던 덩굴의 중량은 상당했다. 있는 힘껏 잡아당겨 덩굴을 제거하고 쩍쩍 갈라져 있는 땅을 보았다. 땅속에 그만큼 고구마가 많으니 땅이 벌어졌겠지. 머릿속에는 온통 고구마가 많이 나오면 진짜 박스 열개는 나오겠는데 박스를 못 가지고 오게 한 아내가 원망스러웠다.
가장 척박했던 곳에 삽을 깊게 넣었다. 지렛대의 원리로 땅을 퍼내었다. 자색의 고구마가 눈에 들어왔다. 어른 남자 주먹의 2개는 거뜬히 넘을 고구마가 쑥 하고 뽑혀 나왔다. 브라보를 외치면서 고구마를 꺼내 들어 아내 쪽으로 흔들어 보였다. 고구마를 좋아하는 아내는 화색이 돌았다. 비록 고구마의 일부는 굼벵이가 갉아먹은 흔적이 있었으나 이게 어딘가? 굼벵이와 같은 벌레가 싫었다면 애초에 유기농을 추구하는 농장에 터를 잡아서는 안되었다. 물론 올해 농사를 하면서 아내와 나는 무기농을 신봉하게 되었다는 여담은 덤이다.
두 고랑을 고구마로 채웠었기에 가슴이 웅장해졌다. 언제 고구마를 다 캘지, 어디에다가 숙성을 위해 고구마를 널어놓을지, 그리고 상하지 않게 올 겨울 동안 냠냠 먹을 방법들을 떠올렸다. 아하, 부질없는 상상이었다. 그 후로 한참 동안 고구마는 보이지 않고 잔챙이 뿌리만 나왔다. 아무리 깊게 파봐도 고구마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물론 중간중간에 한두 번 고구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몇몇 덩어리들이 나올 뿐, 처음의 감동은 더는 없었다. 아무래도 처음 고구마를 키워보느라 너무 빽빽이 고구마를 심은 영양도 있을 것이다. 줄기를 중간중간에 잔인하리 만치 쳐내는 고문을 가하지 않은 것도 잘못일 게다. 척박한 땅에서 오히려 잘 자란다는 고구마밭에 거름을 너무 많이 한 것도 실패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올해 고구마 농사는 망했다. 아내는 아쉬운 마음에 호미를 들고 혹시 놓친 고구마가 없는지 이 잡듯 뒤져봤지만 허탕이었다. 우스개로 만약 자급자족했다면 우린 내년 보릿고개에 굶어 죽었을 거라고 했다. 아내도 씁쓸하게 웃었다. 못내 아쉬웠던 아내는 고구마 줄기를 채집해서 가져온 박스를 하나 채웠다. 고구마 반박스와 고구마 줄기 한 박스, 물론 고구마 줄기를 깔 노동을 생각하여 적당히 챙기고 나머지는 폐기하기로 했다. 폐기가 오히려 일이었다. 삼발이 수레에 서너 번이 넘게 옮기며 폐기장으로 치웠다.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르는 노동을 했지만 결과물이 변변치 않았다. 처음 고구마를 심을 때 초록에 진심인 주변인들에게 혹, 풍년이 나면 고구마 한 박스씩 돌리겠다고 설레발을 쳤는데, 한 박스는커녕 수확물이라고 건네줄 튼실한 놈 하나가 없다.
농촌진흥원에 근무하셨던 아버지는 텃밭을 한다는 우리 부부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었다. "농산물은 아무리 비싸도 비싼 게 아니다" 농사를 직접 지어봐야 농산물 생산이 얼마나 품이 많이 들어가는지, 먹음직한 식재료를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일게다. 우리 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고구마는 실패지만 삐끔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몇몇 조선무와 제법 덩어리를 만들고 있는 배추는 올해 농사를 실패로만 기억하지 않게 하기를 기대한다.
삶이란 계절의 변화처럼 온도와 볕의 변화가 너울지는 연속된 파동이 아니던가. 비록 정성 들였던 고구마는 실패했지만 조선무는 성공할 듯하다. 혹, 조선무마저도 실패하더라도 겨울 동안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LG틔운에서 키우는 실내 사육 풀때기를 먹을 수는 있다. 선형으로 흘러가는 인생길에 한 번의 실패는 반드시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실패를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봄은 올 거라는 흔한 말들을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말이기에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올해 고구마 맛탕은 마트에서 사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