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네 잘못이야

어른이 어른답지 못할 때

by 은소

몽이가 초등 저학년 때 있었던 작은 사건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몽이는 선생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는 여리고 섬세한 성품을 가진 아이입니다.

어느 금요일 저녁 즈음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 몽이 어머니, 저희 반에 영이라는 아이가 있는데요. 몽이가 영이에게 나쁜 말을 해서 영이 어머니께서 화가 많이 나셨고, 영이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한답니다.

영이 어머니를 한번 만나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몽이에게 아무 말도 듣지 못했어요. 무슨 일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

“ 오늘 수업시간에 단체 활동을 하는데 영이가 빨리 따라오지 못하니까 몽이가 영이에게 심한 말을 했거든요.

왜 그렇게 느리니? 도대체 언제 따라올 거야? 너 때문에 우리 조가 꼴찌할 거 같아. 이런 식으로 말을 해서 영이가 수업시간에 울었어요.

그래서 영이 어머니께서 속상해하시며 학교로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

“ 아.. 그랬군요. 선생님 제가 몽이와 아직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내일 전화드려도 괜찮을까요? ”

“ 네, 어머니. 몽이를 아주 호되게 야단치세요. ”


정말 그랬니


몽이가 정말 친구에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나쁜 말들을 그대로 했을까? 정말 그랬을까?

억울한 일을 당하면 눈물부터 보이는 여린 몽이가 반 친구에게 그렇게 심한 말과 행동을 보였다는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거실에서 외할머니와 보드게임을 하고 있던 몽이를 방으로 불러서 조용히 말을 꺼냈습니다.

“ 몽이야, 오늘 학교에서 영이랑 혹시 무슨 일 있었어? ”

“ 응? 엄마 왜요? ”

“ 영이가 학교에서 단체 활동 하다가 울었어? ”

“ 아, 응. 그랬던 것 같아.. 영이가 좀 느린 친구잖아. 그래서 우리 조가 꼴찌할 거 같다고 말한 거 같은데..

엄마 근데 영이가 나 때문에 울었대요? ”


몽이가 정말 영이에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너무 놀라고 당황했지만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표현하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차분하게 몽이와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몽이에게 상황 설명을 들었지만 영이가 그 정도로 힘들어했다는 사실을 몽이는 전혀 알지 못했고, 영이에게 어떻게 사과를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너무 놀라고 울먹이면서 걱정했습니다.


사과를 받아주세요


선생님께서 영이 어머니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셔서 우선 문자를 보냈습니다.

‘ 영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몽이 엄마입니다.

조금 전에 담임 선생님께서 영이가 몽이 때문에 울었다고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해 주셨어요.

어머니,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말씀 드리고 싶어요.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면 제가 전화드려도 될까요? ‘


얼마 후 영이 어머니께서 문자를 주셨습니다.

‘ 지금은 통화가 어려우니 내일 연락드릴게요. ‘

저는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다음날 아침 8시가 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아니 아침에 영이 어머니께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연락이 없는 영이 어머니께 문자를 다시 보냈습니다.


‘ 영이 어머니, 아직 연락이 없으셔서 문자 드려요.

몽이가 했던 말 때문에 영이가 많이 힘들어하고 학교에 가기 싫어한다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영이와 영이 어머니께서 얼마나 속상하고 화가 나셨을까요.. 너무너무 죄송한 마음을 제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몽이에게 영이를 만나서 직접 사과하라고 말해주었어요. 하지만 혹시 영이가 몽이와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기다리겠습니다.

영이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너무너무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운 마음이에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영이와 영이 어머니께 얼마나 죄송하고 미안한지 몽이의 부족하고 모자란 말과 행동 때문에 영이에게 상처를 준 것은 저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몽이를 잘못 가르친 탓이니 우선 저의 사과를 먼저 받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몽이에게 영이가 많이 힘들어하고 학교에 가기 싫어할 정도로 크게 상처받았다고 말했더니 몽이도 눈물을 보이며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영이 어머니, 괜찮으시다면 제가 직접 영이와 영이 어머니를 만나고 싶습니다. 언제 시간이 괜찮으실까요? ’


주말 출근길에 멈춰 서서 눈물, 콧물을 닦으며 영이 어머니가 답변을 주시기를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영이 어머니로부터 장문의 문자가 왔습니다.


사실은요


‘ 몽이 어머니, 오해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던 것은 몽이 때문에 그랬던 게 아니에요.

담임 선생님께서 평소에 영이에게 느리다고 자주 지적과 꾸중을 하셨어요.

처음 한두 번은 영이가 원래 조금 느린 아이라서 그러려니 했는데, 선생님께서 같은 반 친구들이 다 들을 만한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느리다는 지적을 자주 하셨고 그런 날에는 영이가 집에 와서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종종 했어요.

어제는 선생님께서 아이고 우리 영이 또 느리네, 너네 조가 꼴찌하겠다. 먼저 말씀하셨고 몽이는 그 말을 똑같이 따라서 했다고 들었어요.

어쨌든 그래서 영이가 울었고, 몽이는 그 상황을 잘 몰랐을 수도 있어요.

제가 담임 선생님께 느리다는 말씀을 하시고 그걸 몽이가 따라 해서 영이가 그동안 쌓였던 설움이 터져 나온 것 같다는 설명을 드렸고,

선생님께서 영이에게 그런 지적하는 말씀을 좀 자제해 주시면 좋겠다는 의미로 전화드렸던 건데 이렇게 몽이 어머니께 연락하실 줄은 몰랐어요.

제가 어제는 갑자기 집안에 일이 생겨서 바로 연락을 못 드렸는데, 몽이 어머니께서 많이 놀라고 걱정하셨을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에요. ‘


저는 휴대폰을 붙잡고 엉엉 울었습니다.

‘ 영이 어머니, 그러셨군요. 얼마나 속상하셨을까요? 제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납니다.

몽이가 선생님께서 영이에게 하신 말씀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바람에 영이에게 더 큰 상처를 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


‘ 몽이 어머니, 괜찮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인데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니 아무렇지 않게 따라 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괜히 몽이가 선생님께, 어머니께 많이 혼났을 것 같아서 제가 너무 미안하네요.

몽이 너무 야단치지 마시고, 주말 잘 보내세요. ‘


미안한 마음과 안도하는 마음이 뒤엉켜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몽이가 잘못한 말과 행동으로 친구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는 죄책감에 밤사이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경험했지만, 결과적으로 담임 선생님께서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신 탓에 모든 문제를 몽이에게 돌리셨던 어이없고 황당한 사건이 되었다는 사실이 허탈하기만 했습니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할 때


몽이에게 모든 잘못이 너에게 있고, 너로 인해 친구가 아프고 힘들어하고 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영이가 느린 친구라는 것은 반 친구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직접 말로 표현해서 친구가 기분이 나쁠 수 있다면 속으로 생각은 할 수 있겠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몽이가 달리기를 잘못하는 것이 속상하고 달리기를 잘하고 싶은데, 너는 왜 달리기를 그것밖에 못하니? 라고 친구가 말하면 속상하고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것을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몽이는 친구가 너무 속상했을 것 같다며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은 대부분 옳은 말씀, 좋은 말씀이지만 그걸 무조건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은 안된다고..

신체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만 폭력이 아니라 언어적인 폭력도 똑같은 폭력이라서 우리가 당연한 사실을 말하더라도 친구의 입장에서는 그 말로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면 좋겠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라도 친구가 싫어할 수 있는 말은 따라 하지 말자고 약속했습니다.


영이 어머니께서 직접 담임 선생님을 만나셔서 일이 잘 마무리 되었고, 며칠 뒤 학교 앞에서 영이 어머니를 우연히 만나서 잠시 대화를 나눴습니다.

영이가 반 친구들 중에 몽이와 성향이 잘 맞는 것 같다고 하시며 친구들과 키즈카페에 한번 같이 가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같은 반 어머니들께 종종 키즈카페 동행을 제안 받았던 몽이라서 기쁜 마음으로 일정을 알려주시면 시간을 맞춰서 꼭 같이 가겠다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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