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아이

즐거운 학교, 행복한 삶은 가능한가

by 은소

우리 몽이는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입니다.

사실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는 별로 없겠지요.


조카들 중에 영재반 수업을 듣는 아이, 미국에서 대학 진학을 꿈꾸며 유학 중인 아이, 대치동에서 치열하게 열공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공부 쪽으로 앞서 나가는 아이들이 가까운 곳에 분명히 있습니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가족들 안에서도 몽이에게 압박과 부담을 주지 않는 나름 용기 있는 엄마라고 스스로 기특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원어민 어서 오고


저는 고등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부탁하여 야간 자율 학습을 빠지고 영어 회화 학원을 10개월간 다니며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키웠습니다.

그 시간이 저에게는 아직도 소소한 행복을 누렸던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원어민을 만나면 말 걸어주기를 기대했지만 요즘은 원어민을 만나면 눈이 마주칠까 두렵습니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무작정 시작했고 집 근처에 유명한 영어 선생님 이름이 붙은 학원이 있었기에 고민 없이 수강 등록을 했습니다.

제가 신청한 수업은 직장인들이 90% 이상 참여하는 수업이었고, 고등학생은 저 하나에 대학생 한두 명 정도였습니다.

고등학생들은 거의 입시 학원이나 야간 자율 학습에 참여해야만 하는 황금시간대였기 때문이지요.

그 어린 시절 용기 있게 행동한 저에게, 그리고 패기 넘치는 당돌한 제자의 부탁을 흔쾌히 허락해 주신 담임 선생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대안학교를 선택하다


몽이는 초등 때는 집에서 학습용 패드로 영상 수업을 들으며 수학만 따로 공부를 하고 다른 과목은 시험대비 복습만 저와 함께 조금씩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그럭저럭 중상위권을 유지하는 듯했습니다.


몽이를 일반 학교에 보내지 않고 대안학교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몇 가지 있지만, 몽이가 공부에 대한 집중력과 인내심이 부족하고 습득하는 속도가 느린 편이라서 일반 학교의 교과 과정을 무난하게 따라가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몽이가 자신의 다소 느린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만의 길을 가겠다고 하거나 스스로 자존감과 자신감을 키워가는 것이 가능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아이라면 일반 학교에 보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아이들 있잖아요. 근자감이 충만한 아이들.

근거 있는 자신감도 스스로 겸손해지는 소심한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라면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공부는 좀 못해도 학교에서 나름 재미를 찾으며 학창 시절을 즐기던 학생이었기 때문에 몽이의 학교 생활도 역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부부가 선택한 학교는 일반 학교와는 많이 다릅니다. 비인가 기독교 대안학교이고 기숙형 학교입니다.

몽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학교를 빼놓을 수 없어서 앞으로도 자주 언급이 되겠지만 우리는 학교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그중에 가장 큰 부분은 선생님들에게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우선되지 않고 인격과 비전과 실력을 겸비한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이 교육 이념이기에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사랑하십니다.


요즘은 학생들과 부모들이 선생님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 것이 흔한 일이고, 선생님도 그런 학생들을 감당하기 힘든 험난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정말 많이 계시지만 그런 분들도 정해진 교과 과정 안에서 학생들 개인의 속도와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힘겹게 싸우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몽이가 다니는 학교는 개인의 속도와 개성을 무시하고 기간 안에 진도를 마치는 것이 참된 교육이 아님을 명확하게 실천하고, 자기주도학습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코칭을 해주십니다.

몽이처럼 느린 아이에게 꼭 필요한 학교임이 분명합니다.


우리 학교에도 초등 때 공부를 잘하던, 선행학습이 충분히 된 상태로 입학한 아이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우리 학교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오히려 역성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 학교는 통합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을 우선으로 합니다.

성적표에는 평어를 기록하여 아이의 특성과 교과별 수행 과정에 대해 부모에게 알려줍니다. 점수 따위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가 되면 내 점수, 내 성적으로 어느 대학, 어떤 학과를 지원할 것인가 엄청난 선택을 직면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대학에 지원할 때가 되어야 비로소 자신의 전공에 대한 고민을 갑작스럽게 마주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열심히 또는 적당히 공부를 하는 것에 집중하기에도 버거운 학생이라는 의무를 다해야만 하니까요. 하지만 결국 합격이 가능한 수준의 대학이나 전공을 선택하게 되겠지요.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고 전공에 대한 고민이 쉽고 만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몽이는 공부에 쩔쩔매느라 힘겨운 학창생활을 하는 대신 우리 학교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진로를 탐색하는 기회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공부가 인생에 있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인생의 전부가 되어버리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몽이가 공부를 싫어하니 그런 안타까운 부모가 될 일이 없어서 감사하다는 고백을 해봅니다.

우리 몽이가 공부 잘하는 아이가 아니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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