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공포 게임보다 자녀의 방학이 더 무섭답니다..
몽이네 시골학교는 12월 중순경 일반 학교 보다 약 2주 빠른 종강식을 하고 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몽이가 기숙사 짐을 모조리 챙겨서 커다란 택배 박스 2개와 여행용 캐리어 2개를 싣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택배 박스 1개는 아직 포장을 뜯을 엄두도 못 내고 구석에 처박아 두었습니다.
몽이가 가져온 짐의 대부분이 빨래거리를 쑤셔 담은 것이라서 매일같이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고 또 돌려도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지나고 있습니다.
워킹맘이라는 핸디캡을 핑계로 하루에 한 번 빨래를 돌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우기는 중입니다.
몽이는 방학에 하고 싶은 게 참 많습니다.
베이스 기타 배우기, 수학 보충하기, 빵빵이 팝업 스토어 가기, 농구 연습하기, 밤새고 놀기 등
집에 있으면 게임과 유튜브에 몰입하는, 변성기로 아저씨 목소리를 장착한 사춘기 소년을 봐줘야 하기에 일단 밖에 나가자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방학 동안 베이스 기타를 배우고 싶다 하기에 기타 알못인 엄마 아빠는 당근마켓을 검색하며 헤매고 있었습니다.
마침 미국 대학에 진학한 조카가 단기 방학 중에 한국에 나와 있어서 초보자에게 적당한 기타와 앰프를 추천받았습니다. 이 친구는 몽이가 시골학교를 선택할 때부터 학교 생활 초반에 큰 도움을 주었던 몽이의 학교 선배이자 사촌형입니다.
엄마에게 방학이 두려운 이유 중에 가장 큰 지분은 게임과 유튜브에 몰입하는 시간을 통제하는 것으로 인해 사춘기 아들과 마찰이 생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집에 있으면 자꾸 게임을 하게 되니 일부러 뭐라도 하러 밖으로 나가자고 해봅니다.
함께 영화 '노량' 보러 외출하자고 제안하니 영화시간이 길다며 안 보면 안 되냐고 반문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쇼츠에 익숙해져서 영화관에 앉아서 2~3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것을 싫어하고, 영화를 소개하는 유튜버의 요약본을 대신 본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노량'을 보는 동안 몽이는 소곤소곤 몇 가지 역사적인 질문을 하며 매우 흥미롭게 감상을 했습니다.
나온 김에 백팩을 하나 사자고 나이키 매장에 들렀습니다.
몽이가 좋아할 만한 백팩을 발견해서 빠르게 구매를 하고 같은 매장에서 집업 조끼를 하나 구입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포장했습니다.
쇼핑한 김에 이제 중딩의 상징인 후드티를 골라보라고 했더니 이미 갖고 있는 후드티가 많으니 그만두자고 하더군요. 사실은 쇼핑이 귀찮고 피팅은 더 귀찮으니 핑계를 댄 것이겠지요.
몽이가 기타도 선물 받고 가방이랑 옷도 선물 받았으니 엄마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어떤 걸 받고 싶냐고 묻기에 '하루동안 화내지 않기'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춘기 소년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엄마가 화낼 상황을 안 만들면 된다고 하더군요..
하.. 그래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화낼 일이 아니다 싶은 일도 종종 버럭 하는 경우가 있으니 하루만이라도 스스로 감정을 한 템포 조절해 보기를 기대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몽이 아빠는 자전거를 타러 로라방에 가고 (동절기에 야외 라이딩이 어려우니 실내 체육관에서 롤러 위에 자전거를 올려두고 타는 방식으로 운영) 우리 둘은 한강 라면을 간식으로 먹고 카페에서 각자 할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한강 공원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적당한 자리에서 타이밍을 엿보다가 얼른 눈치껏 자리를 잡아야 했습니다.
사소한 일정이라도 만들어서 일부러 외부 활동을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몽이가 요즘 빵빵이를 애정하는 중입니다.
아들의 방학 중 소확행을 위해 성수동에서 열리는 빵빵이 크리스마스 팝업스토어 사전 예약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본 기사에 더현대에서 빵빵이 생일기념행사를 했는데 새벽부터 대기줄을 서서 입장했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사실 그때는 빵빵이가 뭔지도 몰랐고 몽이가 가보고 싶다고 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학기 중 기숙사 생활을 하던 몽이에게 얼렁뚱땅 설득해서 포기시켰던 터라 보상으로 사전 예약에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다행히 극적으로 사전예약에 성공했고 몽이와 둘이 손잡고 다녀왔습니다.
아니 이게 뭐라고.. 빵빵이의 인기는 정말 엄청나더군요?!
팝업스토어 예약 시간 30분 전부터 입장 대기를 할 수 있는데 우리는 15분 전쯤 행사장에 도착했고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섰는데 그곳에는 20대 MZ들 3백여 명이 있었습니다. 저는 중2 아들과 둘이 대기줄 뒤에 이어 서고, 우리처럼 엄마와 아들이 함께 온 친구들이 몇 보였습니다.
직장 후배에게 부탁받은 굿즈를 포함해서 몽이가 원하는 굿즈들 중에 소소하게 몇 개 구매하고 인증사진도 찍고 깨알 같은 디테일을 뽐내는 행사장을 돌아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덩달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약 두 달간의 방학이 여전히 막막하지만 그래도 사이좋게, 알차게 보내려고 매일 다짐합니다.
몽이야, 엄마는 네가 무서운 게 아니고 방학이 무서운 거야~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