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쏟아지는 정원에서

해가 쨍쨍 맑은 날만 있다면 건조하고 메마른 삶이 될지도 모르거든..

by 은소

얼마 전 몽이는 학교 생활에 고비를 경험하며 힘든 시간을 지내왔습니다.

지금 다니는 학교를 선택하고 선발 캠프에 지원하고 결과를 기다렸던 2년 전 그날을 떠올려봅니다.

초등 6학년 시절 여름 선발 캠프에 지원했기 때문에 합격 통보 후 6개월 가까이 학교에 입학하는 날을 기대하며 기다렸습니다.

하루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몽이에게 초등 졸업과 중등 입학의 간격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정한 몽이는 매일 밤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엄마에게 수신자 부담 전화를 걸어옵니다.

어느 날 통화 목소리와 분위기가 평소와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장 몽이를 학교에서 탈출시켜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의무 외박이 아닌 주말을 앞두고 있었기에 당연히 외박을 나오지 않고 학교에서 주말을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던 몽이와 미리 상의하지 못한 채로 일반 외박 셔틀버스 예약을 우선 해버렸습니다.


학년장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서 몽이가 이번 주말에 외박 나올 준비를 하도록 연락을 취했습니다.

몽이가 주말 동안 학교 행사에 봉사를 신청해서 외박 나오는 것을 고민하고 있길래 생각해 보고 스스로 원하는 대로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잠시동안 고민하고 망설이더니 결국 몽이는 외박을 나오기로 결정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제안으로 외박을 나오게 된 몽이는 엄마의 불길한 촉이 적중한 사실을 인정하며 그동안 자기가 표현하지 못했던 고민들과 혼자만의 고통의 시간들을 성실하게 쏟아내주었습니다.

몽이가 경험했던 관계의 문제, 기숙사 생활에 대한 어려움.. 어느 것 하나도 만만하거나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좋아하던 학교를 포기하고 싶어 할 만큼 많이 버겁고 힘들어했습니다.

학교를 선택하고 몽이에게 적극 추천했던 저에게 몽이가 경험한 이런 상황들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미안한 일인지.. 엄청난 부담과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하늘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몽이의 고민에 대해서 학년장 선생님께 담백하게 팩트를 전달하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선생님은 엄마인 저보다 더 마음 아파하시며 몽이의 아픔에 공감하셨습니다.

내 아이의 고통의 시간들을 누군가에게 책임지라고, 내 아이는 피해자이고, 또 어떤 아이는 가해자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몽이가 힘들어하는 친구들의 특징을 담담하게 들여다보고 그 아이에게 어떤 아픔과 쓴 뿌리가 있는지, 몽이가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문제 행동에 대해 이해해보고 싶었습니다.

일부러 몽이를 괴롭히려고 어떤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행동의 이유에 대해 헤아려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다행히 몽이도 이 상황을 해결하려는 엄마의 반응과 방법에 동의해 주었고 같이 생각하고 대화하며 그 아이와 부딪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적절히 반응하거나 회피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차라리 치고받고 싸워서 부모들까지 만나서 화해시키고 풀어내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지만 몽이는 오히려 친구를 보호하고 싶어 하고 친구가 피해를 당할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몽이가 문제 상황을 공론화시키게 되면 가해자라는 프레임에 어떤 아이를 끼워 넣고 억지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결코 자연스럽지 못하고, 안정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몽이는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몽이가 원하는 것은 친구의 행동과 상황에 자기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는 당황스러운 경험들에 대해 엄마는 학교 생활에 대한 이해나 공감이 충분하지 않으니 생활관 선생님과 코치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자기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사춘기 소년에게는 하기 싫고 어려운 일이기에 제가 대신 선생님들께 몽이의 상황과 어려움을 감정을 배제한 상태로 심플하게 전달했습니다.

mbti 는 F 였지만 현실에서는 T 성향이 짙은 엄마의 방어력에 스스로 감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선배 어머니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몽이의 학년장 선생님처럼 학생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는 분을 만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지난 2년 동안 학년장님의 행적을 보면 굳이 다른 선배 어머니들의 경험을 듣지 않더라도 얼마나 대단히 뜨겁고 열정적인 분인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몽이를 각별히 이뻐해 주신다고 느꼈거든요.. 엄마만의 착각일지도요..

하지만 어쩐 일인지 몽이는 이번에는 학년장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코치 선생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힘들 때 사랑과 위로와 관심도 꼭 필요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객관적인 상황 판단으로 코칭을 받고 싶어 하는 듯했습니다.


차근차근 선생님들의 부드럽게 스며드는 듯한 코칭과 도움으로 몽이는 이제 조금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힘들었다가 괜찮았다가 좋았다가 나빴다가 자주 오락가락하지만 그래도 당장 학교를 그만두고 뛰쳐나오고 싶어 하는 지경에서는 조금 멀어진 듯합니다.

몽이가 아파하고 힘들어했던 시간들이 결국에 아이가 훌쩍 자라는 성장의 시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선생님들도 저와 같은 마음으로 몽이를 기다려주고 믿어주고 다독여주며 동행하는 시간들을 통해 진심이 담긴 배려를 느끼며 몽이가 건강하게 잘 이겨내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 또 힘든 일이, 힘든 시간이 있겠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단단하고 아름답게 성장할 사춘기 소년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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