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이유

졸라맨을 그리는 아이

by 은소
엄마는 미대생이 되고 싶었어


저는 어릴 때 그림 그리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스스로 그림을 꽤 잘 그린다고 생각했고 무언가 남들과는 다른 느낌의 개성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그림에 대한 로망을 잊은 채 살았습니다.

그러다 대학 입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을 무렵 미술에 대한 아쉬움이 문득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고등 1~2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니 고가의 미술 도구, 학원비, 화실 사용 등 재정적인 압박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시선을 돌린 분야가 사진이었습니다.

저에게는 한때 테리우스라 불리던 멋진 사촌오빠가 있습니다. 사진을 전공한 사촌 오빠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네가 사진이 재밌고 좋으면 전공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지만 막상 돈벌이가 되면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으니 신중하게 생각해’

현실과 낭만에는 차이가 있으니 나의 조언으로 너의 인생을 걸지 말라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미술, 사진 둘 다 멋지고 매력적이지만 내가 다른 일을 하면서 취미로 할 수 있는 관심사이니 전공에 대한 아쉬움은 한번 더 접어두자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테리우스 오빠 고마워!

나의 로망이었던 미술아, 사진아 이만 안녕!!


졸라맨을 그리는 아이


몽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자기가 그림을 못 그린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학교에 예술적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많다 보니 멋진 작품을 그리는 친구들과 비교하며 스스로 위축되는 듯합니다. 만화책을 제작하는 원데이 클래스에서 사람 그리는 것이 어려워 졸라맨을 그렸던 추억이 있는 몽이의 그림 실력이 대충 짐작되실 겁니다.

그림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이 가능한데 사실적인 표현의 사진 같은 그림이 잘 그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실적인 표현만 멋진 작품은 아닙니다.


소심하고 표현을 잘 못하는 아이에게 자기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방법 중에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좋은 도구가 된다고 합니다.

학교 도서관 사서 봉사를 하면서 친해진 선배 어머니가 추천해 주신 미술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 미술 선생님께서는 부모 면담을 먼저 하신 후에 수업을 시작할지 결정하신다고 했습니다.

부모 면담을 통해 부모의 성향과 가정의 분위기, 아이와의 관계, 아이의 성향 등을 파악하고 미술을 배우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선배 어머니께서 몽이 엄마는 아마 선생님께서 수업 거부하지 않으실 것 같으니 걱정 말고 면담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재밌는 미술을 가르치는 선생님


초등 1학년 꼬맹이 몽이의 손을 잡고 화실에 도착하여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몽이 또래 몇몇 아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무심한 듯 멋진 수염에 꽁지머리를 하신 예술가 느낌이 물씬 나는 외모를 하신 선생님께서 우리를 반겨주셨습니다.

이 친구가 몽이군요? 애정과 호기심을 담은 눈빛을 몽이에게 보내시는 선생님의 시선을 보며 그냥 여기가 좋아졌습니다.

몽이랑 수업을 먼저 해 보고 싶은데 어머니 괜찮으시면 한 시간 뒤에 데리러 오시겠어요? 하시길래 우리를 받아주시기로 했나 보다 하고 얼른 화실을

나왔습니다.


우리는 주 2회 수업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몽이는 미술 수업 가는 날을 아주 좋아했어요. 주 1회는 외할머니가 몽이와 화실에 동행하시고, 주 1회는 제가 몽이의 손을 잡고 화실에 갔습니다.

한 달에 한번 선생님과 대화하며 그동안 미술 수업에 대한 피드백을 듣고 몽이가 어떤 그림을 그린 이유에 대해 아는지 그것에 대한 공감과 칭찬, 격려를 해주면 좋겠다는 조언을 들으며 수업이 이어졌습니다.


섬세하고 예민한 몽이의 성격이 드러나는 그림들, 그것에서 좀 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선생님의 코칭으로 몽이는 그림이 정말 재밌고 즐거운 활동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술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그린 작품을 각자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내가 이 그림을 왜 그렸는지 어떤 생각을 표현한 것인지 소개를 하고 모든 아이들이 그 그림에 대해 한 마디씩 칭찬의 말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더 신나게 그림을 그리는 용기가 생기게 되기를 바라는 선생님의 철학이 담긴 귀한 시간입니다.


지금도 몽이의 작품을 보면 사랑스럽고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동네에서 미술 선생님을 마주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몽이 어머니시죠? 잘 지내세요? 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십니다.


선생님의 미술 수업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림 그리는 기술 향상이 목적인 수업을 희망하는 아이와 부모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아이가 그림을 좋아하고 재미를 느끼고 즐기는 수업을 희망하는 아이와 부모에게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주저함 없이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미술 심리, 미술 치료의 한 방법인데 우리 아이가 문제가 있어야만 미술 심리와 미술 치료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버리고 평소에 미술을 통해 아이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선생님과 부모가 주는 안정감이 아이에게 좋은 밑거름을 만들어주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캐나다에 있는 몽이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미술 선생님 이야기가 나와서 추억을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다가 연수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면 미술 선생님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다고 하더군요.

비타민 음료 사들고 가서 인사드리겠다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몽이를 보며 그 수업에 참여했던 소중한 시간이 다시금 떠올라서 그 시절 몽이의 작품들을 다시 꺼내보았습니다.

선생님 참 감사했습니다. 직접 표현하지 못했지만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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