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사장님 목소리가 카페 전체에 울렸다. 손님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포터필터를 놓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커피 찌꺼기를 싱크대에 버려? 물에 녹는다고 생각해?"
아, 맞다. 커피퍽은 물에 안 녹는다. 어떻게 이런 기본적인 걸 까먹었지? 바쁘다고 정신없이 하다가 그냥 쓸어서 싱크대에 흘려보냈다.
"지금 당장 뚫어와!"
결국 나는 뚫어뻥을 가져와서 막힌 배수구를 뚫어야 했다. 검은 물이 역류하면서 올라왔다. 커피 찌꺼기와 기름때가 덩어리져서 떠올랐다. 역겨웠다.
펌핑을 몇 번 하니까 겨우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장님은 계속 중얼거렸다.
"정말 어이가 없네. 이런 기본도 모르고..."
다른 직원들은 애써 모른 척했지만, 다들 들었을 거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정말 나는 정신이 없는 걸까? 요즘 실수가 너무 많다. 주문 받을 때 메뉴를 잘못 듣기도 하고, 냉장고 청소하고 다시 전원 키는 걸 깜빡하기도 하고. 오늘은 커피 찌꺼기까지.
왜 이럴까? 집중이 안 된다. 자꾸 딴 생각을 한다.
매니저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다른 알바생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혹시 내가 팀 분위기를 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과거의 실수들까지 덩달아 떠오른다. 대학교 때 팀프로젝트에서 자료를 못 가져온 일, 친구 약속을 깜빡한 일, 면접에서 버벅거린 일...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런 생각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싱크대 배수구가 막히는 걸 걱정하고 있었다. 커피 찌꺼기 때문에, 기름때 때문에.
하지만 정작 내 안의 배수로는 어떨까?
내 생각과 감정을 흘려보낼 수로는 얼마나 막혀 있을까?
자책, 걱정, 불안, 후회... 이런 감정들이 계속 고여 있다. 제때 흘려보내지 못하고 썩어가고 있다.
언제부터 나를 위한 글을 쓰지 않았지?
예전엔 일기라도 썼는데, 요즘엔 그것도 안 한다. 하루하루 버티기만 급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도 없었다.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을 켰다.
오랜만에 글을 써보자. 지금 이 복잡한 마음을 정리해보자.
하지만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뭘 써야 하지? 어떻게 써야 하지?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언젠가는 소설을 쓰고 싶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 그런데 이런 투덜거림을 써서 뭐하나?
"좀 더 의미 있는 글을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사소한 고민을 글로 쓰면 유치해 보이지 않을까?"
"작가라면 좀 더 깊이 있고, 완성도 높은 글을 써야지."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그래, 어차피 쓸 거면 제대로 쓰자. 한 번에 정제된 글을.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글을.
하지만 첫 문장부터 막힌다. 뭔가 거창하고 멋있게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생각이 안 난다.
"작가라면 이 정도는 써야지."
"이런 식으로 쓰면 안 되는데."
머릿속에서 계속 검열이 일어난다. 한 문장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노트북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이상하다. 예전엔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썼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작가의 꿈을 꾸면서부터인 것 같다.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이 생기면서부터.
하지만 그 기준이 오히려 나를 막고 있다.
커피 찌꺼기가 싱크대를 막듯이, 완벽주의와 목적 의식이 내 표현의 배수로를 막고 있는 거다.
그래서 감정들이 계속 고여 있는 거고.
글쓰기의 본질은 생각과 감정의 표현이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잘 써야 한다'는 목적을 두기 시작했다. 그게 찌꺼기가 되어 의식의 수로를 꽉 막아버렸다.
다시 책상에 앉았다. 이번엔 다르게 생각해보자.
작가의 꿈? 좋은 글? 일단 내려놓자.
지금은 그냥 내 마음속에 고여 있는 것들을 흘려보내는 게 먼저다.
"나는 오늘 사장님한테 혼났다."
첫 문장이 나왔다. 별로 멋있지 않다. 하지만 진짜다.
"커피 찌꺼기를 싱크대에 버려서. 정말 바보 같은 실수였다."
두 번째 문장.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장님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라고 했을 때, 정말 부끄러웠다. 손님들이 다 보는 앞에서."
감정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막혔던 배수구에서 물이 빠지는 것처럼.
"요즘 실수가 너무 많다. 집중이 안 된다. 자꾸 딴 생각을 한다. 나는 정말 정신이 없는 걸까?"
이건 완성된 글이 아니다. 그냥 내 마음의 토해내기다. 하지만 시원하다.
계속 썼다. 부끄러운 것도, 유치한 것도, 사소한 것도 다.
한 시간 후, 스크린에는 지저분한 감정들이 뒤범벅된 글이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아, 이게 글쓰기구나.
막힌 마음을 뚫는 일.
나는 마음의 배수로를 넓히기 시작했다. 적확한 언어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익히는 것.
책을 더 많이 읽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지 보려고.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수십 가지 방법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AI와도 대화를 나눴다. 내 마음을 대변하는 정확한 언어를 찾기 위해서.
"'배수'라는 표현을 쓰는 게 맞을까요? 水는 물 수 잔데, 흐름이라는 의식의 성질을 생각하면 오히려 적절한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언어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잡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내 마음을 더 정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단어의 선택이 곧 사고의 정밀도였다. 배수로가 넓어질수록, 더 다양한 감정들이 막히지 않고 흘러갈 수 있었다.
다음 날 출근길, 카페 싱크대를 보며 생각했다.
여기가 막히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뚫으면 되니까.
진짜 문제는 내 안의 배수로가 막히는 거다.
그래서 앞으로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써야겠다.
완벽하지 않아도, 멋있지 않아도, 그냥 흘려보내는 글을.
작가가 되려면 먼저 나 자신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막힌 배수로부터 뚫는 거다.
하루를 마감할 때마다, 나는 이제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내 마음의 배수로는 잘 흐르고 있는가?"
"어떤 감정들이 고여 있는가?"
"어떤 생각들이 찌꺼기가 되어 쌓이고 있는가?"
그리고 키보드 앞에 앉아서, 뚫어뻥을 드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때로는 하루의 소소한 실수들을, 때로는 깊은 철학적 고민들을, 때로는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중얼거림들을.
모든 것이 흘러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