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진흙이 발목을 움켜잡았다. 끈적하고 무거웠다. 발을 빼려 할 때마다 '쪽' 소리를 내며 더 깊이 빨아들였다. 썩은 식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달큰하면서도 역겨운, 고여 있던 물의 냄새였다.
늪 바닥 깊은 곳에서 목소리들이 올라왔다. 마치 아래에서 내 발목을 붙잡고 끌어당기며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때 왜 그랬을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내가 더 잘했다면..."
"이미 늦었어..."
"돌이킬 수 없어..."
"바보 같은 실수였어..."
목소리들이 발목을 더 강하게 잡아당겼다. 진흙이 옷에 달라붙어 무거웠다. 움직일 때마다 끈적한 소리가 났다. 과거의 장면들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사소한 실수들, 틀렸던 순간들, 완벽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
"맞아, 그때 정말 바보 같은 실수였어..."
내 입에서 나온 말과 함께 몸이 더 깊이 가라앉았다. 진흙이 무릎을 덮었다. 차가운 온도가 바지 사이로 스며들었다. 허우적댔다. 팔을 저으려 하니 진흙이 팔뚝에 달라붙었다. 끈적끈적한 감촉이 역겨웠다.
"이것도 제대로 못 했다니..."
"난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야..."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목소리들이 점점 빨라졌다. 아래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더 강해졌다. 내 목소리인지 다른 이의 목소리인지 구분이 안 됐다. 진흙이 가슴을 덮었다. 숨이 막혔다. 코로 들어오는 공기마저 끈적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목소리들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또 실수하면 어떡하지..."
"다음에도 제대로 못 할 거야..."
과거의 무게가 미래의 불안으로 변하면서, 늪의 진흙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진흙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다 점점 빨라졌다. 몸이 들려 올라갔다. 진흙에서 빠져나오는 줄 알았는데, 이번엔 공중에서 돌고 있었다. 바람이 귀를 때렸다. 아니, 바람이 아니었다. 목소리들이었다. 수많은 목소리들이 나를 중심으로 빙빙 돌며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또 실수하면 어떡하지?"
"이번에도 제대로 못 할 거야..."
"실수할까봐 무서워..."
"사람들이 나를 한심하게 생각할거야..."
"또 틀리면 어떡하지?"
"이번에는 더 큰 실수를 할지도..."
회전이 빨라졌다. 몸이 뒤틀렸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귀에 압박감이 밀려왔다. 원심력에 팔다리가 바깥쪽으로 당겨졌다. 마치 거대한 세탁기 안에 들어간 것 같았다. 어지러웠다. 위아래를 구분할 수 없었다. 하늘인지 땅인지, 어디가 어디인지...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귀가 먹먹했다. 압박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속이 메스꺼웠다. 토할 것 같았다. 회전 속도가 더 빨라졌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목소리들이 하나의 큰 웅성거림이 되었다. 의식이 흐려졌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언제 멈출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고 있었다. 소용돌이가 나를 위로, 더 위로 밀어올리고 있었다. 더 높이, 더 높이. 아래의 목소리들이 점점 작아져 갔다. 자책도, 걱정도, 모든 소음들이 멀어져 갔다.
...
완전한 무음이었다.
귀에서 나던 웅성거림이 사라졌다. 어지러움도 멈췄다. 몸이 더 이상 돌지 않았다.
떠 있었다.
무중력이었다. 몸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깃털처럼 가벼웠다.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가 맑았다. 끈적함도, 습기도, 냄새도 없었다. 순수한 공기였다.
눈을 떴다.
투명했다. 사방이 투명한 공간이었다. 벽도, 바닥도, 경계도 없었다. 무한히 뻗어나가는 투명함.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저 멀리 아래, 까만 점처럼 자책의 늪이 보였다. 그 옆으로 회오리치는 소용돌이도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완전한 정적이었다.
심지어 내 심장소리도,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소음이 사라진 공간이었다.
이상하게도 이곳이 익숙했다.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어깨가 내려갔다. 주먹을 쥐고 있던 손이 저절로 펴졌다.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우...
내쉬었다. 하아아...
호흡이 편안했다.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봤다.
자책의 늪에서는 여전히 거품들이 터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허우적대는 존재들이 까만 점처럼 보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거품이 터지는 게 보였다.
걱정의 소용돌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끊임없이 회전하는 회오리 속에서 맴도는 존재들이 있었다.
역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돌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보니 그 모든 것들이 그냥...
구름 같았다.
멀리서 보는 구름처럼, 떠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 같았다.
나는 깨달았다.
그 목소리들은 내가 아니었다.
진짜 나는 여기, 이 투명한 공간에 있었다.
언제나 여기 있었다.
고요한 하늘에서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아래의 자책과 걱정들이 파도처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들이 나를 정의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는 존재였다.
바라보는 눈 자체였다.
투명한 의식 그 자체였다.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 투명함, 이 고요함이 전부였다.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우...
내쉬었다. 하아아...
완벽한 평온이었다.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슴이 따뜻해졌다.
자책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존재들도, 걱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존재들도 모두 나와 같았다.
단지 자신이 그 감정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도 언젠가는 이 투명한 하늘에 올라올 것이다. 소용돌이를 타고, 상승을 경험하며, 자신의 본래 자리를 찾을 것이다.
모든 여정이 필요했다. 늪도, 소용돌이도, 그 모든 혼란도.
그래야 이 투명함의 소중함을 알 수 있으니까.
나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입가에 따뜻함이 번졌다.
그때 아래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보였다.
또 다른 존재가 자책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거품들이 터지면서 그를 더 깊이 끌어당겼다.
그도 곧 걱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하늘에 도달할 것이다.
나는 투명한 공간 사이로 부드러운 따뜻함을 내려 보냈다.
빛이라기보다는... 온기였다.
직접적인 개입이 아니라, 그저 따뜻한 마음으로 그의 여정을 지켜봤다.
모든 길이 결국 여기로 통한다는 걸 언젠가 그도 알게 될 것이다.
고요한 하늘에서 나는 계속 지켜보았다.
...
평온하게, 따뜻하게, 모든 존재들의 여정을 바라보며.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우...
내쉬었다. 하아아...
여기가 내 자리였다.
언제나 여기 있었던, 내가 돌아와야 할 투명한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