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해지고 싶다면 성향에 안 맞는 일을 하면 된다. 나는 카페 알바를 통해 이것을 몸소 체험했다. 내가 느낀 고통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눈치. 손님이 없을 때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멀뚱멀뚱 서 있게 된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바보가 된 것 같다. 앉을 수도 없고, 폰도 못보게 해서 몰래몰래 보고. 직원분들이 접근하면 미어캣마냥 눈치보며 왔다리 갔다리 한다. 남들은 다 바쁘게 움직이는데 나는 뭐 하는 건가 싶고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 것 같다. 하는 건 없고 에너지만 소모된다.
둘째는 자책. 손님을 응대하고 음료를 제조하고 청소하는 매 순간 뚝딱인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할 때는 내가 저능인가, ADHD인가, 정신적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오늘은 카라멜 마키야또 주문이 들어왔다. 시간도 충분히 있었는데 우유 대신 물을 넣는 황당한 실수를 했다. 들어올 때부터 표정이 썩어있던 손님은, 내가 실수하자 이게 카라멜 마키야또냐며 표정이 더 썩었다. 다시 만들고 있는데 빨리 좀 해달라며 짜증 내는데 기분이 정말 나빴다.
세 번째는 걱정. 어느날은 알바가는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냉장고 청소하고나서 전원을 다시 켰나..?' 만약 전원이 꺼져있다면 큰일이라는 상상이 머리를 스쳤다. '재료 다 상해서 폐기해야 하는 거 아냐?' '하는 것도 없는데 사고까지 치다니..' 걱정과 자책의 나래가 미친 듯이 펼쳐졌다. 가자마자 냉장고를 확인했더니 다행히 전원은 켜져 있었다.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미생의 1화가 내 상황과 겹쳐졌다. 극중 26살로 나와 동갑인 장그레. 그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방치되어 눈치만 보다가, 뭐라도 할려고 왔다갔다하다 정신사납다며 핀잔을 듣는다.
복사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 복사실이 어딘지, 리필할 복사용지가 어딨는지도 모른다. 무슨 복사하는데 한 세월이 걸리냐는 면박을 듣고. 그냥 자기가 하겠다는 대리의 말에 스스로 해보겠다고 실랑이 하다 복사용지는 바닥에 흩어진다. 하기는 커녕 일을 더 키우는 상황. 전화 받는 것도 못한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외국어로 온 전화는 알아듣지도 못한다. 자기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데, 남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 하는 모든 업무가 내 약점을 자극한다. 나는 사회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불특정 다수에게, 친절하게, 즉석에서 눈치껏, 응대해야하는 것을 못한다. 나는 동작지능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순발력있게 음료를 제조하고, 야무지게 청소하는 것을 못한다. 매 순간 나의 부족함만 자각하다보니 일하는 내내 주눅들고 기가 빨린다.
점장님은 나의 어떤 부분이 답답하게 느껴지는지, 자신이 왜 나에게 일일이 알려주기 힘든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눈치껏 하는지, 자기 객관화의 중요성.. 등등을 설파하셨다. 뼈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할 조언도 있었고, 현명하게 필터링 해야할 가스라이팅도 있었다.
점장님은 나와 소통이 안돼서 답답하다고 했다. 손님을 받았으면 이 분이 어떤 이유로 방문한 손님인지 말을 해줘야 한다고. 그래야 하는 거였나.. 손님과 자기가 하는 말을 안 듣고 손님한테 되물어서 답답하다고 한다. 내가 그랬나..?
남들은 얘기 안해줘도 안다며 여태 알바중에 내가 제일 못한다며 비교했다. 이 부분은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빠서 자세히 떠올리기 싫다. 눈치있게 빠릿빠릿하는 일은 안 맞다며 앞으로 하지 말라고 했다. 이건 인정한다. 서비스 영업 쪽은 정말 쳐다도 안 볼 거다.
계속 웃으라고 한다. 내가 광대냐고.. 나 평소땐 잘 웃거든. 위축되고 자신감 없어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웃냐고. 보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는데 본인이 어떤 쪽인 것 같냐는 말을 들었다. 나는 가스라이팅에 낚여서 후자인 것 같다고 답했다. 무표정하면 남들 보기에 좋진 않을 것 같다고. 이런 말들에 말려들면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다. 남 좋으라고 웃나? 내가 웃고 싶어야 웃는거지.
지적을 받으면 머리로는 담담하게 수용해야 겠다고 생각하는데, 애쓰다가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지고, 긴장해서 더 실수하고, 못하니까 더 주눅드는 무한 악순환 루프.. 성향에 안 맞는 일의 무서운 점이다. 노력해도 안 되니까 내가 정말 못하는구나라는 확신만 더 강해지는 거다.
내가 너무 남 탓을 할 줄 모르고 내 탓만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남 탓도 좀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가벼워지기 위해서. 아 저 손님 원래 성격이 더러운 거네,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돼있으니 내가 헤맬 수밖에, 이 일 자체가 나랑 안 맞는 거야, 내 문제가 아니라.
직장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을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그만두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동안 크게 힘든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보는 동료들만 만났고, 그들은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상사와는 다른 사무실을 써서 눈치 보지 않았다. 실수해도 아무도 모르게 수습 가능했다. 주로 혼자 모니터 보며 앉아서 행정업무를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했고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걸 다 알고 있었다. 불특정 다수를 만나거나 전화를 돌려야 할 때는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가끔가다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성향에 안 맞는 일이 주는 고통을 경험해보니 알겠다. 나는 쉽게 그만둘 수 있는 알바라 망정이지, 오랜 시간 공부해서 들어간 곳이 성향에 안 맞다면? 매몰비용 때문에 그만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걸 포기하면 지금까지 한 게 다 의미없어져'라는 생각에 갇혀서.
나는 지금 하고 싶은 것, 살고 싶은 삶의 방향이 확실한 상태다. 그래서 흔들려도 다시 돌아올 중심이 있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부족한 게 아니라, 특정 환경에 처했을 때 한정으로 부족한 것뿐이다. 점장님도 나를 무작정 깎아내리기보다는 성향이 안 맞는 거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나에게 맞는 환경에서, 나에게 맞는 활동을 할 때 만족스러운 내 모습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험도 결국 창작의 자양분이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는 이야기로 승화될 것임을 알고 있다.
이런 중심이 없었다면? 자신에게 안 맞는 일, 타인이 하는 말들이 자신 전체를 대변한다고 느낄 것이다. 나는 어딜 가도 이럴 것 같고, 앞으로 희망이 없다고 느낄 것 같다.
나를 깎아먹는 일은 도저히 못하겠어서 그만둔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고통을 느끼는지 알았으니, 그 쪽은 쳐다도 보지 않을 것이다. 카페 알바에서의 고통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더 명확하게 해준 것 같다. 대조적 경험이 오히려 도움이 된 거지. 대신 내가 살고 싶은 삶, 읽고 쓰고 움직이는 것에 더 부지런히 정진해야겠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아야겠다. 다음달은 알바 갈 시간에 영상편집 배워야지. 잘 만들어서 상도 받아야지. 나는 결과물로 인정받을 때 행복하다. 나만의 컨텐츠가 없으면 정말 평생 남이 요구하는 대로, 남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웃기 싫어도 웃으면서, 사회의 틀에 나를 맞추면서. 남의 기준에 맞춰서 평가받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세계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