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별
윤하는 눈을 비비며 망원경에서 고개를 들었다. 밤샘 관측은 언제나 고단했다. 목에는 뻣뻣한 통증이 자리 잡았고, 눈은 건조하고 따가웠다. 그래도 오늘 밤의 관측은 성공적이었다. 연구하는 '기억의 별'은 오늘 특히 밝게 빛났다.
창문을 열자 이국적인 새벽 공기가 실내로 밀려 들어왔다. 창밖으로는 어둠이 걷히며 별들이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었다. 지평선에서는 태양의 첫 빛이 대지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문득 지구 반대편, 지금쯤 해가 진 서울의 밤하늘이 떠올랐다. 하준도 이 순간 같은 하늘을 보고 있을까? 윤하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서울은 지금 밤 10시쯤 될 것이다. 하준은 아마도 연구실에 있을 테고, 어쩌면 그녀와 마찬가지로 별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윤하는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 화면은 여전히 마지막으로 나눈 메시지에 멈춰 있었다.
'도착했어.' '연구 잘 해.‘
6개월 전의 대화였다. 그 이후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처음 몇 주 동안 윤하는 매일 밤 하준에게 문자를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늘 망설였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손가락이 메시지 창을 맴돌았지만, 결국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하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자신이 떠나온 방식이 너무 갑작스러웠다는 것을 윤하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하준은 그녀에게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더 최악으로, 그녀를 잊었을지도 모른다.
윤하는 작은 수첩을 꺼내 오늘의 관측 기록을 남겼다. "별의 스펙트럼이 변화하고 있음.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화 중." 펜이 종이 위에서 춤을 췄다. "특히 푸른색 영역에서 이상한 패턴 발견. 마치 무언가 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
잠시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이면 꿈속에서 하준을 만났다. 꿈에서는 둘이 손을 잡으면 여전히 빛이 났다. 그 빛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강했다. 눈을 뜨면 언제나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감각.
"별은 나에게 말을 하는데, 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 윤하는 창밖으로 보이는 마지막 별들에게 속삭였다.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그것을 닦지 않았다. 때로는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필요했다. 그것은 그녀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
하준은 대학 옥상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의 찬 공기가 뺨을 스쳤다. 서울의 밤은 춥게 변해가고 있었다. 재킷의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망원경을 조정했다.
요즘 하준은 매일 밤 이곳에 올라왔다. 연구를 위해서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사실은 윤하가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별들을 보고 싶어서였다. 특히 카리나 성운의 그 특별한 별, 윤하가 연구하고 있는 '기억의 별'을.
휴대폰에는 보내지 않은 문자들이 가득했다. 모두 임시 보관함에 저장된 채로.
'오늘 꿈에서 널 봤어.', '카리나 성운이 보이는 날씨였으면 좋겠다.', '네가 없는 천문대는 이상하게 적막해.‘
그리고 마지막 문자. '돌아오면 말할 게 있어.'
하지만 어떤 것도 하준은 보내지 않았다. 윤하의 연구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이유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윤하가 답장하지 않을까 봐, 혹은 그녀의 마음이 변했을까 봐. 모든 가능성을 계산하고 가장 안전한 선택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천체 망원경을 수리했다. 윤하가 돌아오면 주려고. 렌즈에 약간 금이 가 있었지만, 하준은 그것을 완벽하게 복원했다. 이제 그것은 그녀의 책상 위에서, 그녀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망원경으로 하준은 매일 밤 카리나 성운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네가 바라보는 별을 나도 바라보고 있어." 그는 속삭였다.
자신의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추가했다. 윤하가 연구하는 별의 빛이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었다. 하준은 특별한 필터를 통해 그 별빛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놀라운 패턴을 발견했다.
가끔 윤하와 하준은 동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같은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꿈속에서 그들은 별이 되어 우주를 함께 떠돌았다. 꿈에서 그들은 서로의 핵심부를 볼 수 있었다. 거기서 그들은 서로가 닮아있음을 발견했다. 눈을 뜨면 서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두 사람의 가슴에는 같은 별의 먼지가 빛나고 있었다.
*
윤하는 1년간의 연구를 마치고 돌아왔다.
비가 내리는 대학 연구실 창가에 서서,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들을 바라보았다. 각각의 빗방울은 유리에 닿는 순간 분열되어 여러 갈래의 작은 시내를 이루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윤하는 문득 생각했다. '저 물방울들도 언젠가는 바다로 돌아갈 거야. 마치 우주의 모든 파편이 언젠가는 자신의 기원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처럼.'
책상 위에 놓인 자신의 연구 노트를 바라보았다. 1년간의 관측과 분석, 그리고 발견들이 담겨 있었다. '기억의 별'의 빛에 포함된 특정 주파수가 인간의 뇌파와 공명한다는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공명이 꿈과 기억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었다.
문이 열리고 하준이 들어왔다. 1년 전과 달랐다. 더 마른 얼굴, 더 깊어진 눈빛. 윤하는 순간 낯선 사람을 마주한 듯한 당혹감을 느꼈다. 하지만 하준이 미소를 지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알던 하준을 다시 보았다. 그 미소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한쪽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는, 수줍은 듯한 미소였다.
"네 연구 결과를 봤어." 하준이 말했다.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존경이 담겨 있었다. "정말 놀라웠어. 네 가설이 맞았군."
"나도 네 논문을 읽었어." 윤하가 답했다.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다. 1년 만에 처음 마주하는 하준의 눈은 여전히 따뜻했다. "우리가 같은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발견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 마치 운명 같아."
그들이 나란히 앉아 서로의 데이터를 살펴보는 동안, 손이 가끔 스치면 그 접촉점에서 미세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마치 1년 전의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것처럼. 이번에는 그 감각이 더 강했다. 손이 스칠 때마다 희미한 푸른빛이 그들 사이에서 깜박였다. 두 사람 모두 그것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하와 하준은 서로의 연구를 공유했다. 카리나 성운의 그 별은 오래 전에 폭발했고, 그 조각들이 우리 태양계를 만드는 데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 별의 일부가 지금 우리 몸 안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양자 얽힘 이상이야." 윤하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마치... 기억을 가진 별의 먼지 같은 거야. 우리 몸 안의 원자들이 자신이 별의 일부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
하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윤하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1년 동안 그녀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윤하의 피부는 태양에 그을려 있었지만 눈은 여전히 별을 담고 있었다. 하준은 문득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그리워했는지 깨달았다.
"그 가설이 맞다면," 하준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특정 별에서 온 물질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는 의미가 돼. 그리고 우리가 함께 꾸는 꿈은..."
"우리가 같은 별에서 왔다는 증거가 될 수 있어." 윤하가 그의 생각을 완성했다. 그녀의 눈이 하준의 눈을 찾았다.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윤하는 자신의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
몇 개월 후, 그들의 연구는 큰 주목을 받았다. 별의 기억이 인간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그들의 이론은 물리학과 심리학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러나 윤하와 하준에게 더 큰 도전은 그들 자신의 관계였다. 표현하지 않은 감정들은 때때로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어느 날 저녁, 연구실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표면적으로는 연구 방법론에 관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미해결된 감정이 원인이었다.
"네 방식은 너무 위험해." 하준이 데이터 시트를 내려놓았다. 그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우리가 이 실험을 계속하면, 학계에서 우리를 완전히 배제할 수도 있어. 모든 변수를 통제하고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한 후에 결론을 내려야 해."
"항상 안전한 길만 고르면, 큰 발견은 없어." 윤하가 팔짱을 꼈다. 그녀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가끔은 직감을 믿어야 할 때도 있어. 넌 왜 항상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해? 왜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야?"
하준의 얼굴이 굳었다. 천천히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난 두려워하는 게 아니야. 그냥 신중한 거지. 과학은 방법론이 중요해."
"신중함? 아니면 용기 부족?" 윤하의 말은 생각보다 날카로웠다. 말을 내뱉는 순간, 그녀는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하준의 눈에 상처가 스쳤다. 그는 손목시계의 유리면을 문지르며 잠시 멈췄다. 그의 맨 얼굴은 갑자기 취약해 보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내가 용기가 없다고?"
윤하는 즉시 자신의 말을 후회했다. 그녀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다른 것이었다. '왜 네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 왜 나에게 네 마음을 말하지 않아?' 하지만 윤하는 그 말을 삼켰다. "미안해. 그냥 이 연구가 중요해서 그래."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손가락으로 연구 노트의 가장자리를 접었다 폈다 반복했다.
하준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나도 알아. 이 연구가 중요하다는 걸." 그는 안경을 다시 썼다. 마치 방어막을 다시 두르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네가 더 중요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역시 그 말을 삼켰다.
그날 밤, 윤하는 잠들지 못했다. 그들은 우주의 깊은 비밀을 함께 연구하면서도, 자신들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조차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사람의 행동과 말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심리학 이론을 떠올렸다. 별도 비슷했다. 외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표면의 빛일 뿐, 내부에는 더 강렬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윤하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표면에는 연구에 대한 열정과 과학적 호기심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 성취감을 향한 갈망이 있었다. 더 깊이 들어가면, 하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그와의 연결을 두려워하면서도 갈구하는 모순된 감정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깊은 중심부에는, 윤하의 근본적인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로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라는 의문. '그가 나를 이해해줄까?'라는 불안감. 윤하는 밤새 별을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과 마주했다.
<우리가 별이었을 때> 작품 소개 - 한창 별과 우주에 꽂혀있던 2025년 3월 집필한 작품이다. 칼 세이건의 유명한 명언 “우리는 별의 재료로 만들어졌다.” 그 문장에서 출발한 상상력이 솟아올랐다. "내 몸에 있는 별의 조각이, 자신의 고향별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리고, 같은 별에서 온 조각들끼리 서로를 알아보고 끌리는 것이 사랑이라면 어떨까?" 부산청년잡성장카페 프로그램을 통해 다듬고 또 다듬어서 공동출판했다. 부끄럽지만 용기내어 세상에 내놓는 나의 첫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