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의 만남

by 내면여행자 은쇼

리윤은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겨울의 공기가 안개처럼 차갑고 맑았다. 손끝에 닿는 찬기운이 기계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이미 몇 년 전, '감정 이식'을 받은 후로는 온도에 감흥하지 않았다. 세상은 아름답지만 낯설었고, 그는 그 낯섦에 익숙했다.


모든 감정은 백업되어 있었다. 분노, 불안, 슬픔, 기쁨, 사랑까지. 모두 정서복제체로 분리되어 다른 신체에 주입된 채 보관되었다. 리윤은 그 덕분에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울컥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지나치게 들뜨거나 상처받지도 않았다. 독자들은 그의 글이 '냉정한 통찰'로 가득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통찰이 아니라 결핍임을.


그날 아침, 그는 평소처럼 작업실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하얀 문서창에 아무 글자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이 깨끗했고, 마음은 고요했으며, 손끝은 무감각했다. 바로 그때였다.


"좋은 아침이네, 윤."

리윤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작업실 한가운데, 어떤 인물이 서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니, 너무 익숙해서 소름이 돋았다.

그는 리윤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빛은 달랐다. 오래된 책갈피처럼 바랜 듯하면서도, 따뜻한 햇살을 머금은 듯한 눈빛이었다.


"누구지?" 리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인물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나? 너지. 정확히 말하면, 네가 버린 외로움."

리윤은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낯설면서도 가슴 깊은 곳이 뻐근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자장가처럼, 마음속 어딘가를 간질였다.


"왜... 이제 나타난 거지? 넌, 오래전에 사라진 줄 알았어."

"사라진 게 아니라, 잊힌 거지. 넌 나를 조용히 봉인했어.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 안아달라고 속삭이던 감정들. 다 쓸모없다고 느꼈잖아."

그 말에 리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억나? 그 어두운 방. 커튼은 항상 닫혀 있었고, 너는 침대 가장자리에서 소리를 내지 않고 울곤 했어. 누군가 네 등을 토닥이기만 했어도, 세상은 달라졌을지도 몰라.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지."

리윤은 눈을 감았다. 장면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와 감정, 그 축축하고 조용한 기운만은 뚜렷했다. 뭔가 아주 오래된 빛이 닿지 않던 구석이, 스스로 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 넌 결심했지. 이런 감정은 무용하다고. 약해진다고. 그래서 날 잘라냈어. 날 이식센터로 보낸 것도, 너야."

리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외로움 윤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나를 버리고 난 네 글, 참 고요하긴 했어. 단정하고 차분했지. 하지만 따뜻하지 않았어. 그건 독자들도 알았을 거야. 네 이야기에 햇살이 없다는 걸."


그는 다가와서 리윤의 책상 위에 손을 올렸다. 손등이 닿은 순간, 이상하게도 리윤의 눈가가 시큰해졌다.

"나는 널 원망하지 않아. 나도 네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알거든. 다만 이제, 네가 나를 다시 봐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야. 넌 아직 나를 품을 수 있어.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해. 그래야 진짜 이야기가 나올 테니까."

그 순간, 리윤은 문득 깨달았다. 지금 이 대화조차도—말을 주고받는 이 순간조차도—그가 잊고 있던 ‘감정’의 귀환이었다.


작업실의 창문 너머로 아침 햇살이 번져들었다. 빛은 천천히 방 안을 가로질러, 리윤의 손끝과 외로움 윤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리윤은 노트북을 다시 바라보았다. 여전히 하얀 문서창.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보였다.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 첫 문장을 타이핑했다.


어느 날, 잊힌 감정이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멈췄다.


외로움 윤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리윤은 다시 그를 바라봤다. 질문이 떠올랐다. 이 감정을 다시 받아들인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한 번 타자를 쳤다.

나는 아직 나를 다 쓰지 못했다.


창밖의 빛이 더 밝아졌다. 그리고 리윤의 작업실 안에는, 잠시 말없는 평화가 흘렀다.

그 평화 속에서, 다음 감정이 찾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감정을 제거하고 살아가던 작가 리윤은, 어느 날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외로움’과 마주한다.
감정이 복제되고 이식되는 시대.
리윤은 잊었다고 생각했던 감정과의 대화를 통해 ‘진짜 나’의 자취를 다시 따라가기 시작한다.


감정은 때로 너무 커서 감당하기 힘들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잘라내고’, ‘잊고’, ‘제어하는 법’을 배웁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일부였다는 사실까지 지워지는 건 아닙니다.《섬들의 연대기》는 감정을 복제해 이식할 수 있는 미래 사회에서, 감정을 제거한 채 살아가는 한 인물이 잊힌 외로움과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외로움은 고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존재의 증거이고 우리가 세상과 이어져 있음을 증명하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가 당신 안에 조용히 잠들어 있던 감정 하나를 다시 부드럽게 깨워주기를 바랍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싱크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