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보는 법을 잊고 살았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사람. 한 번 본 모습으로 그 사람의 전부를 재단했다. 나 자신에게도 그랬다. 늘 밝게만 빛나야 한다고 강요했다.
그러다 별본을 발견했다. 늦은 퇴근길이었다. 평소 지나치던 문구점 안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가게 구석에 진열된 투명한 우주 모형. 그런데 뭔가 달랐다.
"이건 별본입니다." 주인이 말했다. "천체 모형 같은데요?" "네, 하지만 사람을 담는 별본이죠."
손으로 만져보라고 했다. 그러자 주인의 모습이 투명한 구 안에 담겼다. 마치 작은 별처럼 천천히 자전하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보세요, 별도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돌아요. 별마다 색깔과 밝기가 다르고, 내면에서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죠.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사람은 이런 별을 품고 있어요. 밝은 면도, 어두운 면도 모두 가진 채로요. 그리고 각자 고유의 빛깔과 온도를 가지고 있죠. 당신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들의 다른 면이 보이게 됩니다. 당신이 한쪽만 보고 있을 때에도 별은 계속 자전하며 다른 면을 드러내고 있죠."
다음 날부터 세상이 달라보였다. 늘 다정하기만 하던 팀장님이 신입의 실수에 차갑게 쏘아붙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제야 알았다. 내 시선이 그의 부드러운 빛만 보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그의 다른 빛깔이 보이기 시작한 것뿐이라는 걸.
매일 얼굴 붉히며 싸우던 두 과장님이 야근하는 후배 걱정에 서로 먼저 남겠다고 다투는 걸 보았다. 깨달았다. 내가 그들의 차가운 빛만 봤던 시간 다른 이들은 그들의 따뜻한 빛을 보고 있었다는 걸.
연애를 시작한 친구를 만났다. "남자친구랑 나는 운명이야.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없어." 일주일 전의 말이 "말이 안 통해. 끝까지 자기가 맞대. 최악이야." 로 바뀌었다가 한 달 뒤엔 "근데 걔가 먼저 미안하다고 하더라. 의외였어." 로 변했다.
이해했다. 그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 친구의 시선이 그의 다른 빛깔을 본 것뿐이라는 걸. 우리는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다른 빛을 보고 있을 뿐이라는 걸.
거울 속 내 모습도 보았다. 나도 천천히 자전하며 빛을 내고 있었다. 따뜻한 빛과 차가운 빛.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 다 나였다.
누군가 나를 싫어할 때면 생각했다. '아, 저 사람에게는 지금 나의 어두운 면이 보이는구나. 괜찮아, 조금만 기다리면 다른 빛도 보여줄 수 있어.'
더 이상 항상 밝게만 빛나려 애쓰지 않았다. 나도 여러 빛깔을 가진 작은 별일 뿐이니까.
주말에 다시 문구점을 찾았다. 천체 모형 코너에는 쪽지 한 장.
'우리는 모두 다양한 빛깔을 품은 작은 별입니다. 따뜻함과 차가움, 밝음과 어두움, 또는 그 사이 어디쯤의 빛깔을 모두 지닌 채로. 언제나 자전하며 저마다의 고유한 빛을 발합니다.
우리는 별의 재료로 이루어진 존재들. 서로에게 빛을 비추며 함께 은하를 이룹니다.
한 순간 보이는 빛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보이지 않는 면의 빛깔 또한 존중하세요. 그저 있는 그대로 자전하며 빛나고 서로의 모든 빛깔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서로의 우주가 됩니다.'
집에 돌아와 쪽지를 책상 위에 붙이며 생각했다.
'오늘부터는 모든 사람을,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리라. 우리는 모두 별의 재료로 이루어진 별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