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매일 지나는 골목길 안쪽에 비밀 서점이 있다면?

by 내면여행자 은쇼

열 걸음. 회사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는 데는 정확히 열 걸음이 걸린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일곱 걸음째를 떼는 순간, 눈에 익은 골목 풍경이 달라졌다. 회색 벽돌 사이로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누군가 이사를 왔나 싶었다. 하지만 이 좁은 골목 안쪽에는 공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호기심에 이끌려 발걸음을 멈추고 불빛을 따라가보니, 어느새 내 앞에는 낡은 나무문이 하나 있었다. '오늘의 책방'이라고 쓰인 작은 동판이 달려있었다.


문을 열자 은은한 종소리가 울렸다. 책방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천장까지 닿은 책장들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고, 오래된 책들의 향기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창문 하나 없는 공간인데도 따뜻한 불빛이 책장 사이사이를 비추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안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흰 머리의 할머니가 서 있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늘 당신에게 필요한 책을 찾으러 오셨군요."


이상했다. 내가 책을 찾으러 왔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며 할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이 책방은 필요한 사람에게만 보이거든요. 오늘 당신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가 있나 봅니다."


할머니는 책장 사이로 걸어가더니 오래된 양장본 한 권을 꺼내 건넸다. 표지에는 제목이 없었다. 책을 펼치자 첫 페이지에는 놀랍게도 내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 책은 일주일간만 빌려드릴 수 있어요. 다 읽으시면 다시 이 골목을 찾아오세요. 물론 책방이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어한다면요."


집으로 돌아와 책을 펼쳤다. 그리고 밤새도록 울었다. 그 책에는 내가 잊고 있었던, 아니 어쩌면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나의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일주일 후, 이 책방이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할까?


그날 이후 골목을 지날 때마다 일곱 걸음째에 심장이 조금 더 빠르게 뛴다. 오늘은 그 불빛이 보일까? 오늘은 내게 어떤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신의 가방엔 무엇이 들어있나요